북한 정권 수립70주년 경축 공연 참관기

평안남도 서부 평야 지대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협동벌 논이 연두색으로 물들어 있다.

편집자 주: 필자 고직만은 한국일보사 계열 영자신문 코리아 타임스 기자를 역임했으며, 2000년 호주 이민 이후 시드니 한국신문 취재부장과 호주동아 편집인으로 재직한 바 있다. 한호일보는 최근 북한을 다녀온 고직만 언론인의 북한 방문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북한 현지 사정으로 공연 관련 사진을 게재할 수 없음을 양해바랍니다.

중국 심양을 떠나 평양으로 향하는 고려항공에서 내려다 본 북녘 산하는 연두색으로 자수를 놓은 듯 말로만 듣던 금수강산이 눈 앞에 화폭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신의주부터 평양까지 서해에 가까운 평야 지대는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협동벌 논밭이 눈에 뜨였다. 아직 초록색이 가시지 않은 채 조만간 황금빛으로 익어갈 벼 이삭은 풍년을 알리는 듯 연두색 물결을 이루며 환희의 합창을 보내는 듯 출렁거렸다.

우리 일행 17명은 북한 정권수립 70주년 경축 행사 참관을 위해 9월 5일부터 11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다. 시드니에서 인천공항을 경유해 심양까지는 대한항공으로, 그리고 심양에서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는 고려항공 비행기를 이용했다. 돌아 오는 길은 평양에서 신의주를 거쳐 단동으로 가는 ‘국제직통’ 기차를 탔다. 단동에서 하루 자고 심양에서 다시 인천에서 시드니행 비행기를 탔다.

고려항공 비행기가 조중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말과 영어로 기내 안내방송이 나왔다. “우리 비행기는 이제 조국 영해에 들어왔습니다. 아래 보이는 강이 압록강입니다.” 비행기가 압록강을 넘어서자 나는 휴대폰에 저장해 놓은 조선국립교향악단 연주의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틀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조선국립교향악단의 부수석 지휘자 채주혁이 당차고 힘있게 지휘하는 가운데 울려 퍼진 교향곡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는 우리의 전통운율과 서양 악기가 조화를 이룬 명곡이다. 

평양역 앞.

우리 일행은 9월 6일 모란봉극장에서 열린 조선국립교향악단의 경축 공연, 7일 평안북도 묘향산에 위치한 국제친선전람관 방문, 8일 평양체육관에서 있었던 경축 전야제 공연과 9일 김일성 광장에서 펼쳐진 무려 120만명으로 추산되는 평양 시민이 참가한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시위’, 9일 밤 ‘5월 1일 경기장’에서 15만명의 관중들과 함께 관람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 그리고 10일 밤 평양시 고등 학생과 대학생 등 약 50만명이 김일성 광장에서 펼친 ‘청년전위들의 횃불야회’를 관람하였다. 우리 일행은 모든 행사가 끝날 때마다 해산하여 귀가하는 수 많은 평양 시민 남녀노소와 어깨를 마주하며 코를 맞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무장 항일 독립 투쟁의 역사를 나라의 근간 통치 이념으로 교육을 받아온 이들에게는 어떤 외세의 압박도 이겨내어 희망찬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조국의 평화 통일을 갈망하는 북녘 동포들의 뜨거운 마음이 전달되면서 감동을 느꼈다.

전철 내부 모습.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

조선국립교향악단의 부수석 지휘자이며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의 작곡학부 교수로 재직중인 채주혁과 인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성악가 황은미는 모두 30대 초중반의 ‘연두색 세대’로 공화국의 음악예술을 이끌어갈 차세대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채주혁은 국비유학생으로 뽑혀 18세에 오스트리아 빈 음악원에서 수학하며 유럽에서 열렸던 교향악단 지휘 경연 대회에서 여러 번 수상한 바 있다. 
황은미는 김원균 명칭 음악종합대학 출신으로 조수미가 유학했던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을 졸업했으며, 역시 조수미가 받은 바 있는 주세페 디 스테파노 국제성악 콩쿠르(Guiseppe Di Stefano International Vocal Concours)에서 2006년 심사위원 전원 일치로 단독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9월 8일 국무위원회 주최로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경축 음악무용종합공연’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참가한 가운데 황은미는 독창으로 무려 3곡을 열창했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 문화행사로 참가한 북측의 대표 지휘자 장룡식의 지휘로 삼지연 관현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이 연주가 울려 퍼지고 연두색 한복으로 곱게 치장한 황은미는 시작 곡으로 ‘조국과 나’를 불렀으며, 아름다운 흰색 한복으로 갈아 입고 이날 공연의 마지막 곡인 ‘인민은 일편단심’을 열창했다.

또한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에게 친숙한 청송악단의 가수들이 율동과 함께 흥겨운 노래로 관중들을 뜨겁게 달구었으며, 남녀혼성 무용 팀이 기백이 넘친 강렬한 집단무로 조선 전통무용 춤사위와 발레가 가미된 북녘의 현대무용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이날 공연을 보며 나는 채주혁이 정명훈과 교대로 남북합동 관현악단을 지휘하며 남과 북이 음악을 통해 하나로 화합하는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리고 남북합동 관현악의 반주에 맞추어 극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dramatic coloratura soprano) 황은미와 서정적인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lyric coloratura soprano)조수미가 2중창으로 세계의 명곡과 더불어 남과 북의 대표 성악곡을 발표하는 날이 꿈으로 끝나지않고 현실로 다가오기를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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