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먼저 와서 기다리던 한국 입양아 부모들이 반기며 서로 얼싸안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한국 속담이 거짓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랄까. 늘어난 주름살과 듬성듬성 드러난 하얀 머리카락으로 인해서 조금은 낯설어 보이는 얼굴로 변해있었다. 2008년 ‘한인의 날’ 행사에서 다 같이 손을 잡고 ‘만남’이라는 한국노래를 열심히 불렀던 호주인 양부모들과 아이들을 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초반의 나이였던 꼬마들이 하이스쿨 학생이 되었고, 대학생으로 변해있었다. 바라만 보아도 흐뭇하고 소식을 듣기만 해도 가슴이 찡해오는 우리 한국 아이들.  
오랜만에 만나는 그들이 모두 정겹고 내 자식처럼 느껴졌다. 양부모들과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입니다”라는 말을 수십 번 반복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재결합 모임에 참석했다. 그런 자리에 특별 초대 손님으로 불러준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고마웠다. 

‘한인의 날’ 행사 때 무대 위에 온 가족이 출연해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던 리키씨는 자녀가 모두 일곱 명이다. 자신의 친자녀가 다섯 명이며 두 명의 한국 아이들을 입양했는데 지금도 한 집에서 대가족으로 살고 있다며 최근 소식을 들려주었다.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는 셀리는 주말이면 딸 픽업 때문에 너무 바빠서 우버 운전사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 딸 엘리는 바이올린, 피아노, 네트볼 등 많은 과외활동을 하면서 엄마, 아빠를 바쁘게 만들지만 예쁜 딸로 잘 성장하고 있다.  

훤칠하게 잘 생긴 데이빗은 어느 새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데이빗의 아버지 이안은 식탁에 앉자마자 건축학을 공부하는 아들 자랑에 열을 올렸다.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 아빠가 된 이안에게 “참, 고맙다. 고마운 분이구나” 하는 인사를 맘 속으로 전했다. 자신이 입양한 한국 아이들을 사랑과 깊은 애정으로 키워주는 호주인 양부모들을 만나면 왠지 빚진 듯한 기분이 든다. 한국문화를 사랑하며 자신들이 입양한 한국 아이들에게 모국을 알려주기 위해서 한국으로 여행을 가는 양부모들도 많이 있다. 

나는 오래전 그들에게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글학교에 특별반을 만들어서 한국말과 문화를 5년 정도 입양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색동 클럽’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서 양부모들과 아이들이 한 달에 한 번 씩 만나서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었다. 그때 만났던 양부모들과는 지금도 집안 대소사에 서로 초대하며 긴 시간을 함께하는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입양아 가족들과의 첫 만남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인회 모임 날이 되면 얼마 되지 않는 숫자의 한국 교민들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참석하며 한국인들과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양부모들은 대체로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혀서 데려왔는데, 키가 자란 아이들에게 어릴 때 가져온 한복 크기가 잘 맞지 않았다. 그리고 한복 입히는 것을 잘 몰라서 저고리 위에 치마를 덧입혀서 데려온 여자애들도 있었다. 나는 한복을 고쳐 입히면서 그들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입양아협회 회장이었던 리오 씨와 미팅을 하면서 내 생각을 밝히니 대찬성을 하며 자기도 돕겠다는 제안을 했다. 퀸스랜드 입양아 부모들은 호주와 한국 우정 그룹(AKFG)을 만들어서 한국문화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나는 짧지 않은 그 시간 동안에 그들로 인해서 기쁨과 아픔을 나누는 많은 일을 함께 해왔다. 어린아이로 입양 와서 십 대 청소년기를 맞으며 겪어야 하는 정체성의 갈등, 친부모에 대한 궁금증,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괴로움을 겪는 아이들도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며 한국 엄마의 역할을 다 채워줄 수는 없었지만 토닥여주며 작은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것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의 핏줄을 나누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친부모와의 상봉이 이루어졌을 때는 한국에 나가서 그들을 지켜보며 같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아갔을 때는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 들어서 크게 감동하기도 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호주 땅에서 내 마음의 자녀가 되어버린 입양아들. 내가 믿고 존경하는 양부모 친구들은 정겹고 반가운 사람들이 되었다. 한국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면 서로 식사비를 내겠다고 몸을 밀치는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정이 물씬 풍긴다. 정말 오랜만에 만났지만, 이번 재회를 통해서 우리는 늘 함께 시간을 지나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남반부와 북반부의 먼 거리를 연결해서 엄마, 아빠, 아들, 딸의 인연으로 맺어졌지만, 결코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만남의 노랫말처럼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사랑해~~, 사랑해~~ , 너를, 너를 사랑해 ~~.”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란 서로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인연의 실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믿고 싶다. 사람들은 점차 냉혹해지는 이 사회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양부모들의 한국 자식 사랑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나는 그들과 오랜 시간 동안 우정을 쌓으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오랜 만남을 통해서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는 일이 우리의 삶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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