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물에 서슴없이 들어가 수영을 즐기는 젊은이.

오늘은 예푼(Yeppoon)에 장이 선다고 한다. 동네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시골장을 지나칠 수 없다. 장을 찾아 나선다. 시골장은 바닷가 근처 공터에서 열리고 있다.
 
비슷한 규모의 텐트가 줄지어 있는 가게에서는 각종 물품을 팔고 있다. 화려한 꽃과 과일나무를 파는 텐트가 있다. 장신구와 옷가지 그리고 동네 특산품 등을 전시해 놓고 손님을 유혹하는 가게도 있다. 규모가 작은 장터다. 그러나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동네 가수의 노래가 장마당의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예푼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케펠 아일랜드(Keppel Island)와 바이 필드 국립공원(Byfield National Park)이다. 바다를 좋아하지만, 오늘은 섬보다 숲속에 있는 국립공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잘 포장된 도로를 운전한다. 바다를 뒤로하고 산이 가까워질수록 숲이 울창하다. 전형적인 호주 산길이다. 사람이 살 곳 같지 않은 외딴곳에 있는 작은 동네를 지나친다. 도로변에서 제법 큰 카페를 만났다. 카페 주차장에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붐빈다. 생각 외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오지를 즐기는 여행객일 것이다.
 

시골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꽃가게. 캠핑차를 가지고 장을 찾는 사람도 있다

지도에 표시된 레드락(Red Rock)이라는 곳을 먼저 찾아간다.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난 작은 비포장도로에 접어든다. 조금 들어가니 길이 막혀있다. 레드락 야영장에 도착한 것이다. 잠깐 차에서 내려 주위를 걸으며 텐트에 있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텐트 주위에는 산악용 오토바이들이 많다. 서너 대의 오토바이를 실은 소형 트럭도 있다. 오토바이로 산을 누비는 사람들이 캠핑하는 장소다. 빨간 바위(Red Rock)는 보이지 않는다.
 
야영장을 나와 스토니 크릭(Stony Creek)이라는 곳으로 향한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운전하니 전나무 숲이 나온다. 전나무를 묘목하는 곳이다. 자그마한 동산 전체가 줄지어 심은 전나무로 들어차 있다. 멋진 풍경이다. 그러나 성탄절이 되면 잘려나가 도시의 요란한 불빛 속에 있을 것이다. 식물이지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전나무 숲을 지나 비포장도로를 더 들어가니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온다. 흐르는 물은 시멘트 도로 위를 넘쳐 흐르고 있다. 물보라를 뿌리며 물을 건너니 자그마한 공원이 있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잡은 아늑한 공원이다.

공원에는 점심 준비하느라 고기 굽는 냄새가 요란하다. 아이들은 너른 잔디밭을 뛰어다니고 있다. 통나무로 만든 널찍한 식탁 위에는 접시들로 그득하다. 
 
이곳에는 등산로를 비롯해 산책길이 많다. 그러나 가랑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날씨를 핑계로 짧은 숲길을 택해 걷는다. 산 냄새가 가랑비와 섞여 싱그러운 맛을 자아낸다. 쓰러진 고목에서는 이름 모를 버섯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호주에서 산행하다 보면 버섯을 많이 본다. 그러나 버섯은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에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버섯에 대해 아는 사람과 동행하면 채집할 버섯도 많을 것이다.
 
물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를 찾아 공원 끝자락에 있는 계곡에 가본다. 제법 많은 양의 물이 천천히 흐른다. 물이 맑다. 속삭이듯 작은 소음을 내며 흐르는 시냇물이 주위 풍광에 어울린다. 한 폭의 그림이다. 손에 물을 적셔본다. 깊은 계곡물답게 차가우면서도 상쾌하다.
 
깊은 산속 풍경에 빠져들어 서성이고 있는데 수영복 차림의 젊은 남녀가 다가오더니 여자가 서슴없이 물에 들어간다. 수영하는 모습을 남자 친구가 사진에 담는다. 차가운 물에 거리낌 없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추운 북유럽 지방에서 온 관광객일 것이다.
 
돌아갈 시간이다. 주차장으로 향한다. 주차장에 방금 도착한 작은 캠핑차에서 청년들이 내린다. 캠핑차 구조가 궁금해 기웃거렸더닌 흔쾌히 내부를 보여준다. 좁은 공간이지만 4명이 숙식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남녀들이 자유로이 여행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삭막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자유롭게 현재를 즐기는 삶이 부럽다.  
 
오늘 저녁은 숙소를 운영하는 주인과 함께하기로 했다. 주인은 뜻밖에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냉장고에 김치도 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다른 부부도 합석했다.
 
달이 떠오르는 동해를 배경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낸다. 주인은 예전에 한국 사람을 남자 친구로 사귄 적이 있다며 사진까지 보여준다. 아직도 생각하는 모양이다. 

늦게 합석한 부부는 지방을 다니며 중고차를 사다가 고쳐 판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저곳 다닌 이야기가 끝이 없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삶을 즐기고 있다.

가진 것이 많아 보이지 않지만 자유롭게 지내는 삶, 보기에 좋다. 부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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