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선 아닌 곡선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를 우연치 않게 인터넷에서 만났다. 1928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난 화가, 건축가, 환경운동가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며 미술과 건축을 하며 곡선으로 걸작품을 만들어냈다. 그가 손을 대면 심지어는, 서울시장도 일부러 찾아갔다는, 쓰레기 소각장도 곡선의 예술이 되었다. 그래서 그를 비엔나의 ‘가우디’라 부른다.  

그의 어머니는 유태인이었기에 나치 독일에 의해 가족 70명이 몰살당했다. 그런 시대에 태어났음에 항거하고 싶었는지 4번이나 이름을 바꿨고, 마지막 30년은 뉴질랜드 시민이 되어 살았다. 직선을 혐오할 정도로 싫어했던 이유가,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와 맞물려 있었던 히틀러 때문일 수 있다. 히틀러는 직선에 열광했던 사람이다. 팔과 다리를 직선으로 내 뻗는 경례와 사열자세를 좋아했고, 정치와 전쟁도 그렇게 했다. 사실 히틀러 뿐만이 아니다. 사람은 태성적으로 직선적이다. 무엇인가에 꽂혀 직시할 때, 그 눈빛은 레이저광선처럼 직선으로 날라가 한 점에 꽂힌다. 반면 두 눈의 초점을 풀고, 이곳 저곳에 초점을 맞춰 보려는 사람은 멍청하다고 놀림 받는다. 곡선을 좋아했던 그가 죽은 곳도 곡선의 세계였다. 고향인 유럽도 아니요, 신천지 뉴질랜드도 아닌 곳. 배를 타고 있다가 태평양 바다에서 죽었다. 바다는 직선을 거부하는 자연의 대표선수다. 파도와 구름은 물론 직선처럼 보이는 수평선도 사실은 곡선이다. 그 곳은 다니는 배 역시 곡선의 유선형이다.

2. 신의 부재

그렇게 곡선과 함께 살았던 그의 말이 마음 깊이 울림으로 남는다. ‘직선은 신의 부재’. 이 구절을 읽으며 난 깊이 공감했다. 그의 어려웠던 젊은 시절, 유대인인 그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신의 도움이다. 그런데 그 신은 그가 바라던 식으로 오시지 않았다. 피눈물 흘리는 두 눈으로 뚫어지게 직시했던 그런 길로는 오시지 않았다. 그 눈으로 봐야만 했던 것은, 신의 부재로 인한 가족 70명의 주검 뿐이었다. 

사실 그의 경험은 우리들의 경험이다. 신은 우리가 바라는 길로는 오지 않으신다. 나 모르게 뒤에서 은밀하게 다가오시든지, 전혀 예상치 못하게 하늘로서 오신다. 그 신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얼마전 나는 비행장에 있었다. 비가 오고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래도 비행기는 상관치 않았다. 그런데 비행기는 땅과는 다른 세계를 믿고 있었다. 정말 그게 맞았다. 전혀 요동치 않을 것 같은 그 육중한 비행기의 앞바퀴가 땅에서 들리는데 단 30초, 구름을 박차고 태양의 하늘로 진입하는데 단 2분이 걸렸을 뿐이다. 하늘의 하나님은 그 이상으로 가깝게 계신다. 이 땅은 비와 구름으로 잔뜩 눌려 있지만, 하늘의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보시고, 내 신음 소리를 들으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나를 위해 일하신다. 그 신을 믿으라. 직선 밖에 못 보는 내 눈에 신이 안 보인다고, 어찌 낙심만 하고 살겠는가?

3. 가족

가족 관계도 마찬가지다. 직선적 관찰은 오해를 낳는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대개 진실이 아니다. 오래 전에 나온 영화 ‘Road to perdition’을 다시 봤다. 특이하게도 ‘톰 행크스’가 갱스터로 나오는 영화다. 시카고의 알카포네 시절,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동료 갱이 아내와 둘째 아들을 살해했다. 주인공은 오직 하나 남은 큰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건다. 도망 다니던 중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는 동생을 더 좋아했지요? 날 볼 때와 동생 볼 때와는 달랐어요.” 잠시의 침묵이 지난 후, 아버지는 머뭇대며 말해준다. “아니야. 네가 못 마땅해서 그런 것 아냐. 넌 날 그대로 닮았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처럼 갱으로 살게 될 것이 두려웠어…”

자연이 곡선이라 사람도 곡선적인 삶을 산다. 해야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시간만 간다. 그 동안 오해된 현실은 삶의 환경을 천국대신 지옥으로 바꾼다. 그래서 이제는 말해 줘야 한다. 속 마음을 털어놓고 고백해야 한다. “내가 그 동안 너를 그런 얼굴로 바라봤던 것, 정말 미안해.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어. 사실은 네 속에 나를 봤기 때문이지. ‘나처럼 되면 어떻게 하지’ 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야. 난 정말 너를 사랑해, 부디 못난 나를 닮지 말고, 멋있는 사람이 되기를 정말 바래… 난 정말 너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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