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가을 하늘은 푸르름으로 가득했다.

필자는 한 달 동안 고국 방문길에 올라 서울, 제주, 순천에 투숙하면서 고국의 향기와 추억을 만끽했다.

해외에 사는 동포들은 가끔 고국을 방문하여 현지 해외 생활과 모국의 변화를 대조하여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는 미명하에 여행을 떠난 것.

그동안 한국에 대한 미세먼지 공습경보(?) 뉴스를 많이 접해서 내심 염려했는데 막상 서울 청와대 뒷산 북악산에 산행을 가보니 맑은 공기, 푸른 하늘, 따스한 햇볕 아래 누워 있는 서울의 모습은 시드니 시가지를 연상케 했다.
특히 서울 근교 산 숲길에 설치되어 있는 보조 기구는 안전한 산행에 도움을 주도록 배치되어 있어 선진국의 모범이 되기에 손색이 없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필자를 포함한 30여 년 전에 이민 온 교포들의 사고방식은 이민 왔던 당시의 시선으로 고국을 평가하다 보니 과잉 염려와 예단을 하는 고정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하루에도 수십 번 날아오는 카카오톡을 비롯한 SNS에 실린 기사는 사실 확인(fact check)이 거의 불가능해서 해외의 순진한 교포들의 판단에 큰 혼란을 주고 있다.

서울 광화문을 지나다 보니 'ㅇㅇ 단체' 명의의 깃발 아래 20여명이 "문재인을 체포하라"는 플랭카드를 들고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며 정복 경찰관 앞을 당당히 행진하고 있어서 경악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시간 덕수궁 앞에는 ‘xx 단체'가 무슨 영정 사진을 걸어 놓은 초상 천막이 늘어서 있어서 어리둥절했다.

이민 오기 전 일사불란한 군사 정부 아래에서 사회생활을 한 필자의 눈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연 시위와 집회가 자유로운 민주주의가 만발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를 보는 서울 시민들은 이들 시위꾼들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왕래하는 모습이 더욱 기이했다. 그러니까 그들만의 시위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할까?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 말 충신 야은 길재가 백의의 몸으로 영화로웠던 옛 수도 송도(개성)에 와서 인재들은 사라지고 폐허가 된 산천을 돌아보고 느껴서 읊은 시조가 생각났다.

서울의 발전상을 보고 느낀 소감은 "산천은 의구(예와 다름없다)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가 아니라 "인걸은 의구하되 산천은 간데없다"로 바꿔 불러야 할 지경이다.
왜냐하면 옛 산천은 개발을 하고 빌딩을 세워 간 곳이 없는 반면 인걸은 장수하는 바람에 예와 다름이 없으니까…

북악산은 숲길을 개방하여 청와대를 기습하려 했던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과 
총격전을 벌였던 총탄 흔적이 선명한 바위가 통제에서 풀려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모국의 발전상은 실로 놀라움과 함께 긍지를 느끼기도 했다.
한국인의 호주 이민이 처음으로 개방되던 당시인 1971년 한국의 1년간 총 10억 달러 수출을 위해 대통령부터 서울 구로 공단 여공에 이르기까지 총력을 기울여 겨우 달성했다.
그런데 현재는 지난달 월간 수출액이 500억 달러를 돌파했으니 하루 수출 금액이 16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10위권의 수출 강국이 되었다.
당시의 1년 치 수출 총액을 단 반나절 만에 넘어섰으니까.

또한 서울 시가를 연결하고 있는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청결하고 강약 냉난방이 잘 갖추어진 전철이라 평할 수 있겠다.
서울 시내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어느 곳이나 편리하게 왕래할 수 있으며 65세 이상 노년층은 무료 탑승 카드를 발부받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
특이한 광경은 각 지하철 탑승 입구 스크린에 ‘시(詩)’가 전시되어 있어 서울 시민의 문학 사랑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시민들의 표정은 한국인 전통의 무표정에서 벗어나 밝은 표정으로 변화하는 것이 엿보였는데 이는 남북 화해 무드로 인해 전쟁의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난 점도 일조를 했으리라.

사람을 움직이는 힘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포심이고 둘째는 이기심이며 셋째는 사랑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임은 말할 것 없지만 또한 사랑의 실천이 가장 어렵기도 하여 기독교가 지향하는 기도 제목이기도 하다.
남한과 북한 관계에서 공포심과 이기심을 접고 사랑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시발 된 평양의 봄이 2018 서울의 가을에서 결실 맺기를 소망한다.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라지 않는가?

남과 북이 자유로운 교류가 이루어지면 꽁꽁 얼었던 북녘의 동토가 녹아 한반도에 정의와 자유가 넘실대는 강물을 이루리라는 믿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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