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로넬라를 매혹한 풍광 중 하나인 폭포와 호수

미숀비치(Mission Beach)에서 맞는 첫 아침이다. 숙소 건너편에 있는 해변에 나가 바다 냄새를 온몸으로 맡는다. 파도 한 점 없는 바다에 아침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모래사장을 걸으며 하루를 시작한 지 오래다. 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은 신선함을 더해준다.

오늘은 파로넬라 정원(Paronella Park)이라는 곳에 가기로 했다. 관광안내 책자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으로 추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륙으로 40km 정도 떨어진 공원을 찾아 나선다. 가는 길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멀리 보이는 수많은 산봉우리에는 두꺼운 구름이 쉬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호주 광야에 익숙해서일까? 산이 가까이 있고 구릉이 많은 도로를 만나니 한국 시골길을 운전하는 기분이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한적한 시골길이 사라지고 뜻하지 않게 붐비는 동네가 나온다. 많은 캠핑차가 주차한 야영장도 있다. 목적지 파로넬라에 공원에 도착한 것이다. 주차장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인다. 사진과 함께 공원을 소개하는 큼지막한 안내판이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대나무로 울창한 오솔길

매표소가 있는 건물에 들어선다. 생각보다 비싼 입장료다. 정원 내부는 직원이 안내한다고 한다. 매표원은 이곳에 한국 직원도 근무한다며 소개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전화를 해보더니 오늘은 한국 직원이 근무하지 않는다며 미안함을 표시한다. 이러한 오지에도 한국 사람이 근무한다는 것이 놀랍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안으로 들어가니 공터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조금 있으니 안내원이 다가와 공원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중국어로도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호주 젊은이가 중국어로 하고 있다. 인솔자는 중국 사람이지만 호주 젊은이가 가벼운 물음에 답하며 중국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다. 요즈음 관광지를 가면 중국 사람으로 넘쳐난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정원을 돌아본다. 스페인 출신 파로넬라는 자신만의 궁전을 지으려고 1929년에 대지를 사들인다. 그리고 공연장을 비롯한 많은 시설을 건축하고 7,000주 이상의 나무도 심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이곳을 위한 수력발전소까지 건축하였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볼품없는 건물들이지만 화려했던 옛 모습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하다.

안내원을 따라다니며 많은 건축물 앞에서 설명을 듣는다. 건축물마다 얽힌 사연이 많다. 테니스장을 비롯해 넓은 잔디밭을 조성해 쉴 수 있는 공간도 조성했다. 일자로 길게 늘어선 분수에서는 지금도 물줄기를 뿜으며 오래전의 화려함을 연상시킨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하려고 웅장한 궁전을 건축한 파로넬라가 대단하게 보인다. 
1935년 개장한 파로넬라 정원은 퀸즐랜드와 호주 보존유산 목록에 등재됐고
국립트러스트(National Trust)에도 등록된 문화 자산이라고 한다.  

안내원의 설명이 끝난 후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울창한 대나무 숲에서는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 눈을 감고 들으면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것으로 착각할 소리다. 오래전에 줄지어 심은 나무들은 고목이 되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우람한 나무들이 사열하듯이 줄지어 있는 오솔길을 걷는다. 흔히 보기 힘든 풍경 속의 주인공이 되어 본다.   

이곳저곳을 걷다가 호젓한 곳에서 규모는 작지만, 분위기 있는 폭포를 만났다. 울창한 숲을 지나온 맑은 물이 주변의 초목을 적시며 떨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좋을 장소다. 공원을 조성한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바로 옆에는 사랑의 터널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냇물이 되어 흐르고 있다. 흐르는 물을 따라 오솔길을 내려간다. 가는 길에 큼지막한 장어를 만났다. 얕은 물에서 한가하게 노닐고 있다. 입장하면서 받았던 물고기 먹이를 던져주니 열심히 받아먹는다. 사람을 전혀 꺼리지 않는 민물장어다. 잠시 쭈그리고 앉아 민물장어와 시간을 보낸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이 동네의 대표적인 볼거리인 폭포로 발걸음을 옮긴다. 많은 양의 물이 높은 낙차를 자랑하며 떨어지고 있다. 폭포 아래 큰 호수에는 물고기 떼가 사람을 따라다닌다.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는데 익숙한 물고기들이다. 큼지막한 자라들은 물가까지 나와 먹이를 구걸한다. 

폭포 위에 설치된 구름다리를 걸어본다. 흔들거리는 다리가 조금 무서울 것 같았으나 막상 걸으니 견딜만하다. 폭포 바로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내려 보는 재미를 즐긴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공원의 오랜 건물들은 유적지가 되어 있다. 

정원에 조성한 분수. 규모가 크다.

폭포와 호수가 보이는 공원에 앉아 파로넬라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자연에 매료되어 자신만의 궁전을 건설한 사람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에 전 재산을 투자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똑똑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현대인의 눈에는 세상을 잘못 사는 사람으로 치부될 인물이다. 스페인 사람에게는 돈키호테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 당시에도 파로넬라를 돈키호테처럼 취급한 사람이 많았다. 많은 돈을 투자해 고생하며 궁전을 짓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심지어는 미친 사람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러한 시선에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고 한다.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는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추천하는 삶은 거들떠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고집한 파로넬라를 생각한다. 질문이 문득 떠오른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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