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하퍼(Stephen Harper) 전 캐나다 총리가 19일 시드니의 멘지스연구소(Menzies Research Centre)에서 2018 존 하워드 강연을 했다. 이 연구소는 호주의 대표적인 보수당 싱트탱크인데 매년 보수 성향의 국내외 거물 정치인들이나 정치학자, 작가들 중에서 한 명을 초청해 강연회를 갖는다. 강연 명칭은 ‘존 하워드 강연(John Howard Lecture)’이다. 로버트 멘지스 전 총리(호주 최장수 총리)가 보수 정치인들에게 호주의 국부격인데 존 하워드 전 총리는 그 다음으로 존경을 받는다. 

7번째인 올해 강연에서 하퍼 전 총리는 “서구 여러 나라에서 정당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점(political dysfunction)은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이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선진국 국민들은 이민, 시장, 교역, 글로벌리즘(globalism)의 4가지 문제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이 해결될 때까지 이른바 ‘인기영합적인 움직임(populist movements)’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다수를 만족시키는 해결책이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영국 가디언은 21일(현지시간) 정치학자 30여명과 함께 지난 20년간 31개국에서 치러진 선거를 조사한 끝에 유럽인 4명 중 1명은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98년 7%에 불과했던 포퓰리즘 정당에 대한 지지가 꾸준히 증가했고, 20년 새 3배 이상 늘어났다.
포퓰리즘은 정치를 “선량하고 평범한 대중”과 “사악하고 부패한 기득권”과의 투쟁으로 규정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호주에서는 폴린 핸슨 원내이션 당대표가 대표적인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다.  

하퍼 총리는 “여러 나라에서 정치가 기능장애(dysfunctional)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제 구실을 못한다. 정치 지도자들이 인기영합주의적 견해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존 하워드 전 호주 총리처럼 유권자들의 가치관을 굳게 신봉하면서 과감하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강연의 화두는 리더십과 용기로 요약할 수 있다. 보수와 진보 구분 없이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메시지였다. 하퍼 전 총리는 거의 10년 동안(2006년 2월 ~ 2015년 11월) 총리로 재직한 충분한 국정 경험 소유자다. 하워드 전 총리는 약 12년(1996년~2007년) 총리로 재임(4연속 총선 승리, 호주 두 번째 최장수 총리)했다. 정치 현장과 국정 경험을 토대로 한 중요한 분석이었다.  

스콧 모리슨 총리가 19일 시드니의 한 문화 행사의 연설을 통해 이민자 유입 감축을 공식 발표했다. 그동안 예상은 됐지만 총리의 공식 확인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략 3만명 선이 거론된다. 모리슨 총리는 감축 명분을 설명하며 시드니와 멜번 등 대도시 인구 밀집으로 인한 교통난, 주택난을 거론했다. “이런 정체 현상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지긋지긋하다(enough, enough, enough)’는 반응을 보인다고 강조했다. 
 
모리슨 총리는 연초(2월) 재무장관 시절 토니 애봇 전 총리 등 일부 자유당 의원들(주로 보수 강경파)의 이민 감축 요구에 예산 타격 등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며 분명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8월말 총리가 됐고 11월 연설에서는 종전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었다.
  
호주소수민족그룹연합체인 FECCA(Federation of Ethnic Communities’ Councils of Australia)의 메리 파테트소스(Mary Patetsos) 의장은 20일 성명을 통해 “리더십이 요구될 때, 모리슨 총리는 분열적인 아젠다(divisive agenda)로 대응했다”면서 “그의 갑작스런 이민 감축 결정은 리더십의 부재와 지지율 부진을 만회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파테트소스 의장은 “이른바 호주의 ‘이민 논쟁(immigration debate)’에서 실제 이슈는 이민자 숫자가 아니라 부적절한 인프라스트럭쳐다. 호주에는 인구 정책에서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정부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호주에서는 장기 인구정책이 사실상 없었다. 

스티븐 하퍼 전 캐나다 총리가 존 하워드 강연에서 강조한 메시지가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 발휘와 용기였는데 같은 날 같은 도시(시드니)에서 호주의 현직 총리는 리더십보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단기 대응책이 먼저였다. 준/준주 정부들과 국책사업 수준의 인프라스트럭쳐 투자를 촉진해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총선을 염두에 둔 포퓰리스트적인 대안을 제시해 실망스럽다. 하퍼, 모리슨 두 리더들의 연설을 비교하며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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