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문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단어로 지나간 일 년을 돌아보지만 올해야말로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던 ‘무술년 개띠의 해’였다.

무엇보다도 남북 관계의 해빙을 들 수 있다.

70여 년 동안 꽁꽁 묶였던 휴전선 부근의 남북군 감시초소(GP)의 일부 철거를 비롯해서 임진강 하류의 해로 측정, 북한 철도조사단 파견, 산림 병충해 방제를 위한 남북 산림협력단 구성, 개성 만월대 공동 조사사업과 유물 발굴 사업 등.. 남북 화해와 협력의 움직임이 싹트는 뜻 있는 해였다.

한반도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같은 동포끼리 상호 비방 방송으로 증오감을 증폭시켰던 냉전 시대를 마감했다. 특히 남북 군대가 공동으로 최전선 육로를 개통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냉전이라는 혈전으로 틀어 막혔던 한반도의 혈맥을 시원하게 뚫은 쾌거라 아니 할 수 없다.

회고 하건데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ideology)도 정확히 알지도 못한채 숨져간 6.25 전쟁의 희생자가 얼마나 많았던가?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6.25 전쟁에 참전했거나 참관했던 세대들은 의식과 무의식 세계에서 전쟁의 
참상이 떠오르며 원한에 사무친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이나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6.25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는 세대라 당시의 참상을 겪은 세대에서 자유로움에 필자는 기대하고 있다.

민족이란 물줄기와 같은 것이다. 바위를 만나면 갈라지기도 하고 무른 땅을 만나면 스미기도 하지만 끝내는 합해서 하나로 흐르는 강물과 같다고 어디선가 읽어본 글이 떠오른다.

이는 확고한 역사의 신뢰이기도 하다. 형편이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반드시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희망이 있다는 것을 우리의 역사가 알려 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자라는 나무에 나이테가 있듯이 국가나 개인에게도 해가 가면 매듭이 지워진다.

세월은 국가나 개인에게 평등하게 지워진 자본금이다. 이 자본금을 잘 이용한 국가나 개인에게 승리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영국의 속담에도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Time and tide wait for no man.)’이라고 속삭인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겸손과 용서를 실천하자.
원래 인간, 겸손, 흙은 같은 라틴어 어원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겸손을 배우면 영광이 뒤따른다."고 성경에서 권고하는 것을 보면 2천 년 전부터 내려온 진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겸손은 미덕중에서 가장 실행하기가 어렵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욕망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다.
우선 인사를 잘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습관을 갖도록 노력하자.
또한 용서는 과거를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용서받는 사람보다 용서하는 사람에게 훨씬 이로운 삶이 전개된다.

그러나 마음은 내 것이지만 평생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선현은 토로한다. 그래서 그런지 ‘회개하다’를 ‘반성하다’가 아닌 헬라어로 마음의 방향을 틀다인 ‘회심(Metanoia)’으로 표기한다.

필자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전철에서 만났던 세일즈맨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아마 허가되지 않는 세일즈 장소인 듯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피며 등장한 젊은 세일즈맨은 상투어가 된 "수출 길이 막혀 부도로 인해 파격적인
가격"임을 강조하며 열변을 토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는데도 시종 미소를 
띄면서 "저는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칸이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흔히 과거를 회상하면서 내가 만약 당시 그렇게 했었으면 좋았는데라며 ‘만약(if)’이라는 단어를 남발한다. 새해에는 만약 대신 ‘다음에는(next time)'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해. 2019년은 기해년(己亥年)으로 돼지띠이다.
새해에는 한민족이 깊은 명상과 기도로 견디어 더욱 큰 기운과 에너지로 풍성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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