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은 교육선교회 로뎀나무아래 김석원 목사의 강의로 시드니 영락교회에서 열렸던 ‘21세기 기독교 가정의 신앙교육 방향’ 세미나 내용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격변하는 문화 속에서 자녀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독교 가정을 대상으로 한 강의였지만, 논의의 배경은 최근 일반 교육계의 전반적인 고민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비기독교인 가정에도, 현대교육 문제, 특히 가치관 교육의 방향에 대한 건전한 논의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무엇이 문제인가 (2)
지난주에 예를 든 세 개의 이야기는 현대 사회가 씨름하는 교육 문제의 핵심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교육하면 떠 오르는 사람들의 가장 일반적인 고민은,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할까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해서는, 다들 어느 정도 정답도 알고 있다. 좋은 성적표를 가져오면 싫어할 부모는 없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성적이 나빴어도 성공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성적과 상관없이 부모들이 꼭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우리 아이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혹은 더 유익한 기본, 기술과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예를 들어 기본정보 독해 능력이 여기에 속한다. 현대사회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숫자들을 다룰 수 있는 수학 능력도 중요하다. 정부마다 이 두 가지에 목을 매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 외에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자세나 태도들이 있다. 어떤 문제가 주어지면 이를 풀어내는 집중력, 약속한 것을 지켜내는 성실함,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맞춰가는는 사회성도 그렇다. 그리고 너무 기본적이면서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인, 남들과의 대화 능력 같은 것도 여기에 속한다. 현대사회에서 살아남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자질은, 사회의 엄청난 변화속도에 맞춰 새로운 것을 배우는 학습능력도 포함된다.

세 가지 이야기에 대한 반응
이 점에서 캔 로빈슨 비판은 매우 심각하다. 좋은 학교든 보통 학교든, 성적이 좋든 안 좋든, 지금의 학교체제 자체가 아이들의 미래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잘 보내고 성적 잘 받아온다고 아이들이 잘 준비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니, 정치인들을 통해 학교개혁을 더 압박하든지, 집에서 따로 챙기라는 뜻이다. 그러나 로빈슨이 강조하는 창조적 사고 능력, 능동적인 삶의 자세, 관계를 잘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일은, 비싼 학교에 보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능력이 있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것도 아니다. 실제로 엄청난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도 정신적으로 고통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는 실리콘 벨리지역의 정신건강 문제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주민의 30%가 우울증을 앓고 있고, 79%가 자기나 자기 주변에 정신질환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이곳 기업가들은 일반인들보타 70%나 더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는 결론으로 별로 긍정적인 소식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새 시대에 적응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모인 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 점에서 세 번째 이야기가 던지는 ‘가치관’ 질문은 앞의 두 가지 문제를 푸는 키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능력과 부가 있어도, 이것을 감당하는 자신을 보는 눈, 물질을 대하는 자세 같은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별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치관 질문은 생각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호주의 한국인들은 더 그런 것 같다. 서구가 한국과 비교해 당연히 더 건강하고 기독교적일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러나 현실은 별로 그렇지 않다. 실제로 아이들은 사회에 더 많은 접촉을 하는 그 순간부터, 가정에서 접해온 가치관과 다른 것들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기독교인 가정의 경우, 더 하다. 공립학교에서 배우는 진화론 앞에서, 돈과 물질이 세상의 전부처럼 대하는 세상 앞에서,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에게서 교회에서 들어온 것들을 하나둘씩 포기한다. 최근 동성애 결혼 합법화 결정은, 그 사안에 대한 찬반을 떠나, 적어도 우리가 얼마나 ‘전통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문화’속에 살고 있으며, 깨어있지 않으면 기독교적 가치 전파는 고사하고, 내 것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2절의 메시지
생각하면 머리 아프니까 그냥 무조건 남들 하는 데로 열심히 공부만 시키면 될까? 아니면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이라도 해야 할까? 돈을 들여서라도 기독교 학교에 보내면 될까? 사실 여기에는 간단하고 쉬운 답은 없다. 나 역시 이런 고민 끝에 자녀들을 기독교 학교에 보내봤지만, 거기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는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이야기와 관련된 문제는 잠시 미뤄두고 세 번째에 집중할 것이다. 로마서 12장 2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 그 이유를 공감할 것 같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서 로마서의 저자, 바울은 당시 ‘세대’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말라고 말한다. 바울이 살았던 시대는 우리 시대와 비슷했다. 로마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기술과 웅장한 건물들이 즐비한 당시 최고의 문명이었다. 동시에 본질적으로 잔인하고, 착취적이고 쾌락주의적이고, 인간 황제를 숭배하던 사회였다. 이런 상황 앞에서 기독교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두 가지였다. 포기하고 그냥 맞춰 살거나, 아니면 도망가서 마음 맞는 사람끼리만 숨어 사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조언은 이와는 달랐다. 도리어 ‘분별’, 다시 말해 취사 선택을 잘해서 골라 먹으라는 뜻이다. 분별을 위해, 바울은 두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둘째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 세대’, 다시 말해 유행은 따라하기는 쉽다. 그러나 다수가 선택했다고 해서 항상 정답은 아니다. 때문에 대세 앞에서도 ‘여기에는 문제가 없는가’란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둘째는 문제가 아무리 심각해 보여도, 환경 탓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을 ‘새롭게 함’ 다시말해, 우리의 내면, 사고방식, 생각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포기도, 도망도 있을 자리가 없다. 
이렇게 할 때 무엇을 분별해 낼 수 있다고 말하는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다. 창조자가 원래 의도하셨던 창조세계의 질서와 평안, 행복에 가장 맞는 지혜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다음 시간에  ‘무엇이 문제인가(3)’가 이어집니다.

김석원 목사
- 로뎀나무아래 디렉터, 
- 전 호주동아 논설주간, 
- 한호일보 편집 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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