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어 두 아들과 함께 아버지 산소엘 가려고 차에 타려는데 갑자기 쾅하고 폭탄이 터지 듯 큰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야 하며 놀라 모두 서로를 쳐다 보는데, 둘째 아들이 용수철 처럼 튀어나가 대문을 빠져나가더니 와악!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큰 아들이 쏜살 같이 그 뒤를 따라 나가고 아내도 밀치듯 쫒아 나가더니 문을 나서자 마자 아~! 하고 아내가 비명에 가까운 탄식소리를 내 뱉는다.

놀래서 집 앞에 나오니, 행길 도로 한 가운데 양 쪽에서 두 차가 정면으로 부딪쳐 차 앞 부분은 찌그러져 형체가 거의 없어지고 종이짝처럼 구겨진 보네트는 깨진 앞 유리에 아예 밀착된 형색이다. 부딪친 차는 양쪽 길에 제 멋대로 서 있고 차 밑으로는 깨어진 엔진과 라디에터에서 기름과 물이 흘러 도로를 적신다.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던 차에 타고 있던 젊은 중동계 남녀는 에어백이 터진 앞자리에서 간신히 문을 열고 비틀거리며 돕는 호주 남성의 부축을 받으며 보도 위 잔디에 덩그러니 누워 비명에 가까운 신음 소리를 낸다. 여성의 몸에는 이쪽 저쪽 피가 뭍어있고 떨리는 팔에서는 아직도 피가 흘렀다. 

이 쪽 차선에 있던 차에는 인도계로 보이는 젊은 가족이 타고 있었다. 양쪽으로 열려진 문 사이로 아직 뒷 좌석 캡슐에 들어있는 두 살 정도된 여자 아이가 놀라 자지러지게 울고있고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그 옆에 상체가 폴더 접히 듯 좌석 밑으로 숙힌 채 미동이 없다. 큰 아이가 달려가 캡슐에서 우는 아이를 꺼내고 꼬나박힌 듯 숙여진 여성의 상체를 끌어 올리니 오른쪽 얼굴 광대 뼈 전체가 보일 정도로 깊이 패인 상처에서는 넘치 듯 붉은 피가 솟아 나왔다. 일으켜진 그녀의 눈엔 초점이 없다. 

몇 분이 지나자 사이렌을 울리며 여러 대의 경찰 차와 십 여대의 앰블런스가 도착했다. 경위 파악을 하는라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조사를 위해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모두 들것에 실려 앰블런스로 옮겨졌다. 앰블란스가 떠나고 경찰이 도로를 차단하고 주위를 통제하기 까지 이미 몇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와 한 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물을 한잔 마시더니, 작은 아이가 윗쪽에서 속력을 내며 내려오던 중동계 남성이 아마도 핸드폰으로 무엇을 하다가 집 앞의 커브 길에서 상대 차선으로 들어간 것 같다며 혀를 찼다. 아내는 쓰러져 있는 아이의 엄마가 벨트를 하지 않아 부상을 크게 입은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마지막으로 여자 아이를 안고 있던 큰 아이가, 자기 가슴에 손을 대고 젖꼭기를 만지며 고개를 기대며 간신히 진정하던 아이는 또 다시 앰블런스 요원의 품에 안길 때 울음을 쏟아냈다며 한숨을 쉬었다. 

중동계 여성이 옆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을 때 파트너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은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며 옆으로 눕지도 못했다. 여자 아이의 아빠는 사고가 나자 피흘리며 차 안에서 움직일 수 조차 없는 아내와,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보며 울부짓는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 차 안에 집 키와 지갑과 중요한 물건이 있어도 하나도 챙길 수 없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그대로 놔 둔 채 앰블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떠났다. 

새해에 집 앞의 사고는 인간의 무능을 눈으로 기억하게 했다. 미련이 있어도 인생은 모든 것을 놔둔 채  떠나야 하는 진리를 생각하게 한다. 후회가 남지 않는 매일이 되어야 하겠다.

며칠 후, 들린 아버지 산소에서, 사진처럼 마음에 찍힌 새해 장면을 다시금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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