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도시에서의 동역자 모임을 마치고 시드니 공항으로 날라 들어왔다. 도착했음에도 적지 않은 시간동안 기내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불순해지는 날씨를 피해, 떠나야 할 비행기들을 먼저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기다림이 많이 힘들지 않았다. 몇 주전의 경험 때문이었다. 
우박 광풍으로 인해 시드니 공항이 폐쇄 되었기에, 예정된 시간에 멜버른 공항을 떠날 수가 없었다. 살벌한 시큐리티의 고함소리와 승객들의 자기 방어용 셀카가 난무하는 가운데 결국 비행기는 취소되었다. 
천재지변에 의한 결항은 숙소를 제공할 수 없다는 비행사의 감정 없는 통보에 쫓겨나듯 공항을 나왔다. 급하게 구한 쪽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그 다음 날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집이 있는 도시에는 이미 도착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비행기 창문을 통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드디어 내렸다. 픽업 걱정에 종종걸음 치며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 가다가, 벽에 붙은 한 포스터의 문구에 사로잡혀 멈춰 섰다. “Rely on Relay : Enjoy your journey”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했다. “당신의 여행을 가능케 해 주는 이 공항 혹은 비행사를 믿으세요. 즐거운 여행이 될거예요”

2. 
현실은 그 반대다. 공항을 이용할 때마다 편안치가 않다. 지난 주 누굴 픽업하러 공항에 나갔다가 주차비 19달러 40센트를 물었다. 맥커피 한 잔 사고, 도착한 사람을 만나 바로 나왔을 뿐인데 너무 많이 나왔다 싶어 보니, 31분이 찍혀 있었다. 30분이면 $9.70인데, 단 1분 차이로 10달러를 더 물어야 했다. 은근히 화가 났다. 

투자은행이 공항을 인수한 후, 공항 드나드는 사람들이 다 돈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당위성을,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는 이런 상황에 조금 화가 난다. 마치 부모 장례식에 볼모로 잡힌 유가족 꼴이다. 그래도 항의할 수 없다. 상대는 비인격화 된 조직이다. 물론 그 끝에는 사람이 도사리고 있지만, 회사 조직과 최첨단 기계 뒤에 숨어서, 그들이 내리는 모든 비정한 조치들을 정당화시킨다. 

그래서 내가 경험하는 공항에는 ‘인간적’이란 말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분주한 월요일 아침, 공항 컴퓨터라도 다운되면, 그 날은 정말 아비규환이다. 거기에 비행기 문제까지 겹쳐지면 즐거워야 할 여행은 악몽이 된다. 티켓을 값싸게 샀다고 좋아했는데, 그 기쁨은 잠시다. 비행 스케줄은 마구 바뀌고 심지어는 아예 결항시켜 버린다. 무사히 잘 올라탔다고 해도 승무원 명령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면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른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들의 ‘잘 연결해 줄 테니, 우리를 믿고 여행을 즐기라’란 문구는 상업적인 가짜 구호에 불과하다.

3.
요새 한국에서는 ‘가짜 뉴스’에 대한 공방이 치열하다. 여당과 야당, 여자와 남자, 검찰과 사법부, 정부와 국민 간에 진실게임이 난무한다. 특히 유튜브를 통한 폭로영상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올린 지 하루 만에 수만명이 보았다고 즐거워하며 혹은 견제하며, 각각 댓글을 달아 놓는데, 이 또한 격돌의 현장이다. 
양쪽 진영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둘 다 그럴듯하다. 그래서 각각의 편을 드는 사람들은, ‘죽기까지…”란 말을 서슴없이 쓴다. 상대에 대한 배려나 자신에 대한 검증은 사라져 버린 듯 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말 정신차려야 한다. 사람은 사건을 만들 뿐이지, 신뢰의 주체는 못된다. 사람이 공교한 방법으로 민심을 사로잡아 정론을 만들고 여론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이 신뢰의 근간이 되는 진리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 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직들 역시 역부족이다. 사건의 진위를 판단하는 검찰의 제 2인자가 포승줄을 차고 감옥으로 직행하며, 사법부의 총수였던 분까지도 실형을 선고 받는 상황이다. 누가 누굴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수퍼컴퓨터가 만들어내는 빅데이터다. 병 진단과 수술은 물론, 미래예측과 주식투자, 심지어는 재판까지도 다 이 첨단과학으로 해결하려 한다. 정말 아찔한 상황이다. 전기 한번 나가면 모든 것이 끝난다. 바이러스 하나 들어가면 모든 것이 스톱이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사람에게는 그런 기계들을  끝까지 도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 인터넷 신문 열고, 한 인터뷰 기사를 봤다. 2년 전 대통령 선거 당시 현 집권당의 당대표였던 분의 대화였다. 기자의 질문과 그 분의 답이 이렇다. “과거 인터뷰를 보면 문 대통령이 정직하고 솔직해 보였다고 하셨지요? – 그 때는 그렇게 봤습니다. /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나요? - 지금 보니 솔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잘못 봤던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변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4.
정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논할 뿐이다.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나 그 사람이나 다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잠시 잊었을 뿐이다. 다시 말한다. 사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못된다. 
물론 갓난 아기는 엄마 아빠를 믿고 의지해야 산다. 그러나 계속 유아적 삶을 살 수는 없다. 요새 한국의 최고 인기 드라마인 ‘SKY 캐슬’을 보셨는가? 그 첫 회는, 대학입시 학원들의 메카인 대치동 사거리에서, 모든 차들이나 교통신호를 무시한 채 자기 딸을 태우기 위해 급정거하는 한 엄마로부터 시작한다. 자기 딸을 최고의 명문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는, 그 엄마는 살인까지도 할 수 있다. 결국 자녀들은 그 부모가 이루지 못했던 야망의 성취 도구가 된다. 그런 삶이 어찌 정상이겠으며, 또한 그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인생은 고귀한 여행이다. 오늘을 즐기며, 내일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이 여행에는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나는 연약하고, 공항과 비행기는 흠집 투성이지만, 동행하는 친구가 좋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나는 그를 찾아냈다. 그래서 오늘도 난 떠난다. 먼지 같이 헛되고 사라지는 사람이나 기계가 아니라, 영원한 진리를 소유한 그 분을 친구삼아. “Rely on Re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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