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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기획 특집] 한인 전용 양로원 필요하다(3)[인터뷰] 카스(CASS) 창립자 헨리 판
전소현 기자 | 승인 2019.01.31 16:59
‘나의 오랜 봉사 활동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호주 사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는 헨리 판 카스 창립자.

호주 한인사회 역사가 반 세기가 넘었다. 호주 사회에 적응하며 한인 커뮤니티의 토대를 형성하는데 주력한 초기 이민 1세대의 평균 연령이 70세를 넘기면서 이 분들의 은퇴와 한국식 양로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오래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한호일보는 <한인 전용 양로원 필요하다>라는 제하의 기획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는 다문화 커뮤니티의 사회복지기관인 CASS 창업자 헨리 판과의 만남을 통해 ‘한 사람의 소박한 헌신’이 가져온 결실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註)

 “카스는 주류 사회에 없는 
‘문화적 가치’ 담긴 서비스 계속 제공할 것” 

지역사회 필요한 일이  최우선 인식 필요 
 “나의 봉사 활동은 호주사회 고마움 표시” 
“2006년 공격 받고 실명.. 그래도  봉사는  멈추지 않아”

“헨리 판의 뛰어난 리더십과 커뮤니티를 위한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카스’를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2006년 끔찍한 공격으로 두 눈 모두 시력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정신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역경을 이겨냈다. 핸리 판의 커뮤니티에 대한 헌신은 놀랍고도 감동적이다.”

카스 창립자인 헨리 판(Henry Pan , 67)에 대한 중국인들의 평가는 대단했다.  

NSW대 공학부의 뉴스레터 ‘인 프로파일(In Profile)’은 지난 해 NSW대 동문상을 수상한 헨리 판에 대해 ‘시력은 잃었지만 선견지명으로 가득한 사람(Without sight yet full of vision)’으로 소개했다.  

호주 이민사회의 성공 모델로 꼽히는 ‘카스’ 창립자인 헨리 판 인터뷰는 지난 연말 이루어졌다. 

1981년부터 카스를 위해 활동해 온 그는 현재 카스의 명예 대표이사(The honorary executive director)로서 무보수 봉사직을 수행하며 카스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적은 규모의 차일드 케어로 시작된 카스는 38년이 지나면서 현재 양로원 1개, 차일드 케어센터 1개, 노인복지 센터 7개로, 또  유급 직원 약 3백명, 자원봉사자 약 350여명 그리고 2,600여명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성공적인 사회복지기관으로 성장했다. 지난 회계년도 수입만 해도 1천970만 달러다.

또 이제는 중국 커뮤니티를 넘어 베트남, 인도네시아, 한인 커뮤니티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한인 대상 서비스는  한국어 웹사이트 핫라인을 포함, 한인 코디네이터 등 50여 명의 한인들이 일하고 있다.  

싱가포르 출신인 헨리 판은 부인 성 목(Seung Mok)과 2명의 딸이 있다. 

1970년 유학생으로 호주에 온 판은 NSW 기계공학과 졸업과 함께 티칭 펠로우십으로 일했다. 이후 2004년까지 컨설팅 회사를 운영한 뒤 카스를 시작했다.

Q. 카스가 시작된 배경을 듣고 싶다.
“1979년 연방 정부가 다문화 정책을 표방하면서 이민자를 위한 서비스 정책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비영어권 소수민족에게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파악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이탈리아, 터키 등 커뮤니티에 있는 차일드 케어와 노인 복지 시설이 중국 커뮤니티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중국 커뮤니티에서 젊은 부모들의 어린 자녀를 위한 탁아 시설은 절실한 문제였다. 

나도 어린 딸이 있어 탁아시설 관련 초기 모임에 참여했는데 내가 미팅 때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자 일을 좀 맡아서 해달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래서 정부와의 협력, 시설 마련 등 초기 작업부터 관여했고 그런 인연이 평생의 일이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정부 펀드 의존않고  지역사회 위해 할 수 있는 일 끊임없이 연구”  

 Q. 어떻게 시력을 잃게 되었는지...
“2006년 자녀 양육권 문제로 갈등을 겪던 한 부부를 돕다가 남편으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그 후 실명이 됐다. 실명은 분명 불행한 일이지만 내 생활방식을 가능한 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나, 억울하다 등 이런 생각은 별 의미가 없었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불편함은 있지만 이 시련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일하는 것을 결코 멈추게하지는 못했다. “

(실명 후에도 그는 엔지니어답게 컴퓨터 작업 등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면서 일반인과 다름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Q. 카스의 성공 요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할 때마다 운 좋게도 뛰어나고 재능있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일할 수 있었다. 또 우리는 정부가 지원해주기를 그냥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다. 정부 펀드에 의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 도움 없이도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찾았다. 즉 지역사회가 필요로하는 일이 먼저였다. 또 이익단체가 아니지만 사업을 하는 것처럼 조직을 운영하고 이익이 있으면 반드시 카스에 재투자한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지난 해 NSW 대학 동창회에서 준 동문상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졸업 때 유학 기회를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나의 오랜 봉사 활동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호주 사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졸업 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나는 이 약속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Q 큰 조직 운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카스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한다. 따라서 세운 원칙을 지켜나가는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그러다보니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없고 그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어떤 일에 대한 비난이 있으면 그  비난을 들을 각오를 했다.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Q. 향후 카스의 계획은?
“앞으로 노인 복지나 양로원의 수요는 증가한다. 특히 호주 사회에서 아시안 커뮤니티에 대한 요구가 클 것이다. 우리는  아시안이기에 언어, 차별, 문화적 차이 등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카스는 수십 년 지역사회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그 문제들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다. 주류 사회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문화적 가치가 담긴 서비스를 계속해서 제공할 것이다.” 

Q. 한인 커뮤니티에 하고 싶은 말은?
“최근 한인 사회에도 카스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 피부 색깔은 바꿀 수 없지만 우리는 호주에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 사회에 잘 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대를 통해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지혜와 힘을 모으면 좋겠다.”

그는 “무엇보다 이런 사회복지 업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타인의 필요를 알고 도움을 주는 일과 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일하는 기쁨이 훨씬 더 크다”고 덧붙였다.

전소현 기자  rainjsh@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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