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일에 개봉한 화제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관람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화의 제목이자,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퀸(Queen)’ 을 일약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노래다. 이 영화는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1991)의 전기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퀸과 프레디 머큐리는 몰랐지만, 노래를 들으니까, ‘아, 이 노래 들어 봤는데 이것도 퀸의 프레디가 부른 거야’ 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미처 내가 들어보지 못한 노래가 흘러나와도 프레디 머큐리의 놀라운 가창력과 확신에 찬 독특한 무대 퍼포먼스, 그리고 기타리스트, 드러머, 베이스기타 멤버들의 수준 높은 연주에 흠뻑 마음을 빼앗겼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20분 공연을 영화 후반부에 재연한 부분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짧게 자른 머리와 강렬한 콧수염에, 비록 청바지와 메리야스 러닝만 입었어도, 화려한 보컬과, 스탠딩 마이크를 휘둘러 가며 관객과 소통하는 폭발적인 무대매너로 스타디움을 열광시키는 모습은 여기가 영화관인지 아니면 록 콘서트장인지 구별이 안 되었다.

영화는 끝났고 음악은 황홀하였지만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AIDS)로 45세의 젊은 나이에 타고난 음악에 대한 천재성과 열정을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움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HIV)에 감염되었을 당시에는 에이즈라는 병이 세상에 알려진 지(1981년 의학계에 처음 보고됨)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왜 양성애자, 게이가 되었을까?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그가 작곡, 작사한 노래들을 들어보았다.

프레디는 영국령인 아프리카 잔지바르(Zanzibar, 현재 탄자니아 지역) 스톤타운에서 태어나 18세에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쫓겨난 파키스탄계 파시족의 후손이다. 그는 이민자로서 인종차별을 받으며 음악의 꿈을 키우던 아웃사이더였다. ‘퀸의 어떤 점이 록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다른 이들과 구분 짓나?’ 라는 질문에, 프레디는 “우린 세상의 모든 아웃사이더들을 위해 노래하죠. 마음이 쉴 곳 없는 세상에서, 외면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퀸은 존재합니다”라고 말했다. ‘엘튼 존(Elton John)은 “만약 프레디 머큐리가 영국에서 태어난 유럽인이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디는 튀어나온 뻐드렁니에 대한 상당한 콤플렉스도 갖고 있어서 웃을 때도 입을 가리고, 콧수염을 기른 것도 뻐드렁니를 가리기 위한 일환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튀어나온 치아의 구조가 4옥타브나 넘나드는 고음을 내는데 최상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프레디의 부모는 그를 8세에 인도에 유학을 보내 기숙사에서 지내게 했는데 그는 가족과 떨어져 공부하는 것을 무척 괴로워했고 그 때문에 수줍음과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으로 자란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무대 위에서는 남성적이고 다이나믹한 쾌활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일상 속에서는 내성적이며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이 주위의 이야기다.
프레디는 아버지의 엄격한 가정교육에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링 예술대학(Ealing Art College)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그 특유의 파격적인 무대의상과 연주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제약에 대한 반항 의식의 산물일 수도 있다. 그 결과 가슴 속에 감추었던 억압이 성 정체성의 확립을 방해하여, 사회적 금기를 깨는 탈출구(양성애자, bisexual)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가 29세에 작사, 작곡한 전설적인 보헤미안 랩소디의 노래 가사를 보아도 프레디의 억눌렸던 인종차별, 외모에 대한 열등감, 외로움, 아버지에 대한 분노 등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노래가사는 자신의 알쏭달쏭한 고백이다. 한국에서는 이 노래가 1975~89년까지 무려 14년간 금지곡이었다.

엄마… 사람을 죽였어요 
그의 머리를 향해 총을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겼어요. 그는 죽었어요.

엄마… 삶이 이제야 시작됐었는데 
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내 던져버렸어요.

엄마… 우우우우
당신을 울리고 싶었던게 아니었는데
내가 내일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살아가세요 살아가세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무 늦었어 
내 차례가 와 버렸는 걸
등골이 오싹해 
몸이 계속해서 아려와..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작가(Biographer)는 이 가사를, 자신을 억압한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자신의 남성성(성 정체성)을 죽였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음악 장르도 아카펠라-발라드-오페라-하드록-발라드로 6분 동안 이어진다. 오페라 대목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희한한 가사(스카라무슈, 갈릴레오 피가로 마그니피코, 비스밀라)는 그 당시로써는 시대를 앞서가는 대곡이었다. 그렇지만 이 노래가사는 안타깝게도 본인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다.

‘마마… 나의 정체성을 죽였어요, 그래서 에이즈로 죽게 되었어요. 나를 놓아주세요, 여기서 벗어나야만 해, 나 살고 싶어요, 어느 것도 상관없어 내게는, 어찌됐건 바람은 불어’ 
프레디 머큐리의 전 매니저이며 연인사이였던 폴 프렌터(Paul Prenter), 마지막 연인 짐 허튼(Jim Hutton)도 모두 에이즈로 사망한다. 밴드 4명 모두가 작곡과 작사에 능한 보컬리스트들이었으며 대졸 이상의 고학력인 록밴드 퀸(Queen)을 이끈 프레디 머큐리는 스타가 아니라 전설이 됐다. (I won’t be a rock star. I will be a legend)

몇 년 전 동성애 문화의 아이콘인 시드니 마디그라(Mardi Gras) 축제에 가봤다. 무지개 깃발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는 퍼레이드의 목적은 성 소수자(LGBTIQ) 커뮤니티를 올바로 알리는데 있었으며 자부심과 수용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요즘에 와서 ‘동성애는 에이즈다’ 라는 공식은 의학의 발전으로 점점 무너지고 있다. 혈우병을 앓고 있던 미국의 10대 소년,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 1971-1990)가 잘못된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걸리게 된 이후부터이다. 이 사건은 ‘HIV 감염과 AIDS(후천성 면역 결핍증)는 동성 간의 성행위에 의해서만 전파되는 것은 아니다’는 점에서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데 큰 기여를 했다.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국가들은 미국을 비롯하여 20여 개국(호주는 2018년 말)이 된다. 한국은 아직 법제화하지 못했다. 동성결혼(Same-Sex Marriage)을 법적으로 허용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성 소수자로서의 부정적 견해, 낙인, 차별, 비난을 받지 않고, 그들의 인권과 사랑, 양육권을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 통계를 보면 성 소수자 청소년의 자살사례가 법제화 후 
확연히 감소됐다고 한다. 그러나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 소수자
간의 결혼은 비정상적인 것이며 가정과 사회질서를 무너지게 하고, 종교적 이유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를 더욱 증가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성 소수자가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와 학설이 있겠지만 대부분이 염려하는 것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위험한 성관계에서 올 수 있는 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 감염과 AIDS의 확산인 것이다.

그러면 HIV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는 어떻게 감염되나? 
성접촉(정액, 질 분비액)과 혈액접촉 그리고 임신부와 태아사이의 수직감염등에 의
해서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구강성교, 항문성교를 하거나, 피부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면도날을 함께 사용하거나, 정기적인 검진을 하지 않는 경우 위험하다.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에이즈 환자가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한 것은 통계적으로 인정되고 있어, 유엔 에이즈(UNAIDS)는 “주사기를 공동사용하는 마약 사용자, 성 노동자, 트렌스젠더, 남성 동성애자를 HIV 감염의 주요대상 집단(18세-29세)”으로 보고 있다. 동성결혼이 사회적으로 합법화된 관계라 해서 HIV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그러므로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예방관리대책을 위한 다양한 교육과 캠페인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성애=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에이즈’라는 사회 인식을 끊어내고 성 소수자의 건강 권리를 위해 함께 고민할 때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콘돔을 사용한 안전한 성관계 (100% 보장은 아니지만)를 가졌더라면 현존하는 다른 3명의 멤버들과 함께, 퀸의 멋지고 아름다운 곡들을 지금도 들려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Freddie, we still love you & your music.

이 글은 Family Therapy에 대한 책을 번역하고 한국의 의료계통(정신과 간호학)에서 일했던 필자가, 프레디 머큐리를 통해 동성애자를 이해해 보려는 심리적 접근이다.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려는 목적으로써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하는 것도 아닌, 오직 에이즈 확산을 염려하는 보건 차원에서만 이야기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 필자 주(註)

필자: 김정인 박사(전 전남대 교수, 전 서울대 및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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