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부터 2월 9일까지 한호일보 사옥에서 <제3회 문예창작교실>이 한호일보와 시드니 창작교실 후원회 공동 주관으로 열렸다. 문학강좌는 박덕규 소설가/시인(단국대 교수)과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이 담당했다. 이 지면을 통해 시 4편과 수필 1편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호주 교민 문단의 저력이 만만치 않아.. 문제는 지속성”
 
[시 부문] 우수한 작품이 다수 합평작으로 제출되었다. 이론수업은 [이승하 교수의 시 쓰기 교실](문학사상사)에 대한 설명으로 진행되었고, 부교재 [백 년 후에 읽고 싶은 백 편의 시(2)]를 통해 기성 시인들의 시를 감상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 각자가 써온 시를 합평하였다. 처음에는 서로 눈치를 보는지 고작 서너 명이 시를 제출하여 즉석 백일장을 실시하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열 명이 넘는 이들의 시를 다루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수업을 진행했다. 10회 강의 전체를 통해 최우수작을 고르라면 김인옥의 「마지막 패」를 꼽을 수 있겠다. 
 
다 저녁 때, 구들장에 깔린 군용담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그렇게 꽉 쥐고 계시면 안 되잖아요
뭐가 그리 억울한지 
납작 엎어진 표정들 붉으락푸르락
지상에서 사라진 나의 온 생애로 파고듭니다 
 
그래요 나는 유언 없이 죽었습니다 
고향 땅 팔아야 하는 건 이를테면
요양병원의 아내를 둘러싼 간병이라든지 
화투장에 충혈된 제사 전야
 
시골집 빼돌린 둘째와 개평 뜯는 셋째의 낯짝 
송두리째 흔들고 싹 쓸고
수그린 채 뒷장만 문지르는 첫째는 
독박에 피박 광박 
지금은 설사 중
 
다시는 모이지 않을 것처럼 짜고 
치고, 고쳐 앉을 생각들 없습니다 
나도 어금니 꽉 깨물고
쓰리 고 쓰리 고
못 먹어도 그래요 
잠자코 바라만 봅니다
 
군용담요에 쫙 달라붙는 마지막 패 
나 가리
                                     ―「마지막 패」 전문 
 
[시평]
 
각자 마지막 패를 내려치는 모습.. ‘우리들의 초상이다’
 
예전에는 명절에 시골집에 형제들이 모이면 대개들 ‘고스톱’이라는 화투놀이를 하였다. 이때 군용담요는 화투를 치는 데 딱 좋은 소도구다. 시에는 독박, 피박, 광박, 짜고 치기, 쓰리 고, 흔들다, 싹 쓸다, 설사, 나가리 등 재미있는 화투 용어가 줄줄이 나오는데 실은 형제들의 동상이몽과 신산한 현실과 교묘하게 겹쳐지고 있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는 바람도 많이 불고 감도 많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모여 앉아 화투를 치고 있지만 각자 딴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 마지막 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며 화투장을 내려치는 모습이 눈앞에 선히 그려지는 이 시는 지나간 시대, 우리들의 초상이다. 한심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정답기도 한. 
 
한 입 덜어야 하는 일은
엄마 가계부의 첫 덕목
방학 때마다 시외버스에 태워져 
할머니 댁으로 밀려왔다
 
여름방학은 지루하고 막막한 섬이었다 
어느 해 여름, 할머니 댁 앞 바다에   
바다가 떠내려가는 게 보였다 
양은냄비, 옷가지, 장롱까지 
 
마을 아이들은 저마다 신이 났다
나는 엄마의 신을 찾았다 
그 해 여름은 너무 까맸다. 
                                     ―「장마」 전문
 
[시평]
 
시인의 자질이 ‘둑을 넘칠 듯 넘실거린다’
 
5분 백일장의 장원 작품은 유금란의 「장마」다. [시드니에 바람을 걸다] 같은 수필집도 간행한 바 있는 1급 수필가인데 즉석에서 써낸 시가 장원을 차지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가난했던 지난 날, 아이들을 시골 할머니 댁에 보내는 이유가 있었다. ‘입을 덜기’ 위해서였다. 어느 해 여름에 장마가 졌다. 온갖 것이 다 떠내려 와 마을 아이들은 신이 나서 구경하는데 이 시의 화자는 하나도 즐겁지 않다. 엄마와 방학 내내 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를 데려가려고 오는 날만 기다리는 아이에게 그 해 여름은 암담하기가 먹장구름보다도 더 까맸다. “여름방학은 지루하고 막막한 섬이었다”, “바다에/ 바다가 떠내려가는 게 보였다”, “그해 여름은 너무 까맸다” 같은 놀라운 발명을 5분 안에 이룩했으니 이제는 시 쓰기에 매진하기를 권유한다. 시인의 자질이 둑을 넘칠 듯 넘실거린다. 
 
창밖 유칼립투스 나무 사이로
달빛이 나를 찾아 기웃거린다 
짓궂은 바람이 나무를 춤추게 하니 
흩어진 달빛이 나를 찾아 헤맨다
나도 달빛을 따라 길을 떠난다
 
어릴 적 할머니는 
흩어진 달빛을 치마폭에 담고 싶다고…
 
그때 나는 그 말의 뜻을 몰라
할머니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였나요?
  
할머니는 달빛을 안고 말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그 때의 할머니보다 더 늙은 내가
흩어진 달빛을 치마폭에 담으려 한다  
                                     ―「할머니의 치마폭」 전문
 
 
[시평]
 
달빛을 치마폭에 담고 싶다
“할머니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였나요?”
 
윤교정 씨가 제출한 시도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여든이 넘은 나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유년시절의 어느 날 밤을 회상하고 있다. 그 어린 날 할머니에게 했던 질문, “할머니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였나요?”는 얼마나 귀여운 질문인가. 그런데 그때의 할머니보다 더 늙은 화자가 할머니가 했던 말을 또한 기억하고 있다. 저기 흩어져 있는 달빛을 치마폭에 담고 싶다던. 할머니가 시인이었으니 그 할머니의 손녀인 윤교정 씨가 시인이 된다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일본에는 100세 할머니도 시집을 내지 않았는가. 
 
  대학입학시험을 준비하는 아들  
 
  목표치를 뚫어보겠다면서  
  시간을 구멍 내고 있었다 
 
  점수 발표하는 날
  귀에 구멍은 뚫었다
                                     ―「뚫다」 전문
 
[시평] 
 
‘시간을 구멍 내고 있는 아들… 귀에 구멍을 뚫었다’ 
 
  짧지만 촌철살인과 정문일침과 일목요연의 미학을 훌륭하게 획득한 송운석의 시도 있다. 
우리말 동사인 ‘뚫다’가 제목이다. 구멍을 내어 한 쪽과 다른 쪽을 통하게 하는 것도 ‘뚫다’지만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이겨내는 것도 ‘뚫다’이다. 시적 화자의 자식은 목표치를 뚫어보겠다면서 호언장담했지만 화자가 보건대 “시간을 구멍 내고 있어” 영 마뜩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목표한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하필이면 점수가 발표되던 그 날, 귀를 뚫고 오는 것이 아닌가. 귀만 뚫었을까 귀걸이도 했을 것이다. 마음은 그냥 귀싸대기라도 한 대 올려 붙이고 싶었을 텐데 그럴 수도 없고, 속만 부글부글 끓였을 화자의 심정이 이 짧은 시 안에 잘 응축되어 있다. 
 
 
이상 살펴본 4편의 시는 이번에 수확한 풍성한 수확물 가운데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 나는 호주 교민 문단의 저력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하였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모두 꾸준히 시를 써 고국의 문예지를 통해 등단도 하고 시집도 내어 호주의 교민 문단이 유칼립투스 나무처럼 쑥쑥 자랐으면 좋겠다. 
 
시평/ 이승하
 
 
[수필]
 
묘사력을 키워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훈련 지속을!
•수필/소설 부문: 수필/소설 부문 이론수업은 단편소설 모음집 [낯설고 정려운 그림자 놀이](청동거울)에 실린 여섯 명의 기성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읽고 분석하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또 이번 강의에서는 기성 시를 수필 또는 짧은 소설 형식으로 쓰는 것, 사진이나 그림을 묘사적인 산문으로 옮기는 것 등의 과제를 시험했다. 무엇보다 묘사력을 키워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훈련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 중 미국 동포 강남옥 시인의 「승부」를 수필 형식으로 쓴 글이 있어 시 원문과 그 과제를 소개한다. -박덕규
 
< 청국장 > 한나 안
코를 잡고 고개를 숙인 채 나를 흘겨보던 딸이 안 보인다. 조금 전까지 티비에 눈을 박고 드라마 ‘신과의 약속’을 빨려 들어갈 듯 보고 있더니 어느새 사라졌다. 티비도 안 끄고, 거실 창문이며 부엌문, 문이란 문은 다 열어 젖혀두고 말이다. 외투는 거실 옷 기둥에 걸쳐 둔 채 이 추운 엄동설한에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돼지목살을 먹기 좋게 썰어 참기름에 달달 볶는 동안이었다. 청국장을 끓일 때면, 미국에서 태어난 딸은 썩는 냄새가 난다며 얼굴을 찡그리고 어떻게 그런 것을 음식이라고 먹을 수 있느냐며 따지듯 대들고는 했다. 오늘도 딸은 부엌에서 나는 썩는 냄새가 견딜 수 없어 밖으로 나가 버린 게 틀림없다.
 
식구 중 청국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쾌쾌한 냄새와는 달리 뚝배기에 멸치 다시물과 쌀 뜨물을 붇고 양파, 애호박, 김치, 두부를 네모로 썰고 청국장을 넣어 바글바글 끓여 먹으면 눈 깜짝할 사이 밥 한 공기는 게눈 감추 듯 뚝딱이다.
어릴 적, 친정어머니는 가마솥에 불린 메주콩을 종일 불을 때가며 삶았다. 손으로 살짝만 눌러도 뭉개질 정도로 푹 삶은 콩을 짚을 섞어  옹기 항아리에 담은 후 온돌방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띄웠다. 청국장이 거의 띄워질 때면 쾌쾌한 냄새가 집안에 진동했고 청국장 항아리를 묻어둔 그 방으로 들어가려면 코를 잡고, 숨을 멈추고 들어가서는 볼 일을 후다닥 보고는 나와야 했다. 어머니는 천일염과 청량고추를 넣고섞어 칼칼한 맛이 나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요즈음은 냄새 안 나는 청국장도 만든단다. 콩을 15시간 불려서 전기밥솥에 넣고 잡곡 취사 모드로 40분여 분 푹 삶는다. 그걸 꺼내 채반에 담아 전기매트나 전기방석 위에 놓고 온도를 36.5도에 맞춘 후 그 위에 담요를 덮는다. 간간이 콩 삶은 물을 부으며 하루를 두었다가 나무주걱으로 휘저어보고 끈적끈적한 것이 실 모양으로 이어지면 그게 청국장인 것이다. 맛은 그대로이고 냄새는 없다는데, 나는 아직 시도할 여력이 없다.
‘데일리 라이프’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세계 10대 악취 음식 중 우리나라 청국장이 중국의 취두부 다음으로 2위란다. 취두부는 두부를 삭혀 만든 것으로 역한 쓰레기 냄새가 악명 높다. 3위가 우리나라 홍어, 4위가 중국의 피단이다. 피단은 새알을 점토, 소금, 겨와 함께 섞어 두 달간 발효시킨 음식이다. 내가 독일에 살 때 독일인들이 고릿한 발 냄새가 나는 벨기에의 린버그(Linburg) 치즈 표면에 맥주를 끼얹어 발효시킨 영국의 뷰 블로뉴 치즈를 즐겨 먹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인도의 카레는 어떤가. 어릴 때 한약 냄새가 나는 듯도 한 노란 음식을 어머니가 접시에 밥과 곁들여 내왔을 때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로 식구들 눈치를 봤던 기억이 있다. 우리 아파트 같은 층 엘리베이터 앞에 인도 사람이 산다. 끼니 때면 카레냄새가 복도에 고여 있다. 그 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면 새벽안개처럼 카레 냄새가 스멀스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와 공복인 속을 거북하게 한다. 싫어도 내색을 하지 않아 속을 알 수 없는 백인들은 직설적인 말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 여기는지 카레 냄새가 사방에 진동해도 어깨를 들썩이며 냄새 좋다 하며 인사한다. 고릿한 발 냄새와 같은 린버거 치즈를 끼워 넣어 만든 샌드위치를 억지로 먹으며 내가 맛있다고 한 것처럼. 그 중 한 백인 집이 지난 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카레 냄새가 싫어 이사하는 백인이 될 수 없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청국장 생각이 간절히 났다. 어릴 때 쾌쾌한 냄새가 싫었지만 나중에 즐겨 먹게 된 것처럼 내 딸아이에게도 청국장을 먹게 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런데 딸이 밖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딸이 돌아오면 뱀눈으로 흘기며 쌀쌀맞게 쏘아붙여야지 하고 잔뜩 벼르고 있었는데 날씨가 추웠던지,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들어와서는 부엌문 사이로 얼굴을 빠끔 내밀고 있다.
“엄마, 나 청국장 쬐끔만 맛볼게요.”
딸의 뜬금없는 태도에 놀랐지만 나는 침착한 척했다. 막 끓인 청국장 한술을 얼른 떠서 후후 불어 뜨거운 김을 식힌 후 건넸다.
“으흠, 된장국보다 더 맛있구나.”
청국장 냄새도 싫어 코를 쥐고 나를 흘겨보던 딸이다. 무슨 생각에서인지는 모르겠다. 딸은 청국장 뚝배기에 밥을 넣어 섞더니 후후 불어가며 한 숟갈씩 퍼 먹기 시작한다.
내가 나이 들어서야 구수하고 오묘한 청국장의 깊은 맛을 알게 되었듯이, 먼 훗날 내 딸도 청국장의 깊은 맛을 알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내 가고 없는 어느 날, 묵은지를 넣고 푸짐하게 청국장 한 냄비 끓여 햇볕 드는 창가의 식탁에 앉은 딸을 생각해 본다.
(이 글을 쓴 한나 안(70)씨는 독일을 거쳐 호주에 정착한 한인 동포로 이번에 처음 문학강좌를 수강했다)
 
** 시 「승부」(강남옥) 원문
엘리베이터 앞집에는 인도사람이 산다
끼니 때 풍기는 카레냄새 복도에 고여 있다
 
가면같이 한결같은 표정, 속을 알 수 없는 백인
어깨 들썩이며 냄새 좋다, 인사하더니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
 
감정 표현 풍부한 한국인 나는 코를 벌름대며 찡그리고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딸아이는 고개 숙인 채 날 흘겨본다
 
향기로운 식탁이 어떤 겐지 내 한 수 가르쳐주마
사도의 긍지 각오 결연해지며
지그시 물린 어금니 사이 침 고인다
 
비닐에 싸인 청국장 만지작거리다가
돼지목살 먹기 좋게 썰어 참기름에 따글따글
묵은지 넣고 푸지게 한 냄비 끓일 동안
딸아이가 엄동에 문이란 문 활짝 다 연다
조만간 누군가 흔적없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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