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은 교육선교회 로뎀나무 아래 김석원 목사의 강의로 시드니 영락교회에서 열렸던 ‘21세기 기독교가정의 신앙교육방향’ 세미나 내용이다. 최근 일반 교육계의 전반적인 고민을 바탕으로 기독교인 가정에 필요한 신앙교육 방향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호주의 역사적 상황과 보편적 교육문제를 같이 참고했다는 점에서 비기독교인가정에도 가치관 교육의 방향에 대한 건전한 논의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세속화 •개인주의• 상업주의에 대해 ‘기독교적 답’ 절실

2.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1)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문제 파악에 집중했다. 현대사회는 시험 중심의 경쟁, 학교 제도 자체의 후진성, 그리고 가치관 전쟁으로 인한 전에 없는 고민에 빠져있다. 아이들이 시험을 잘 치르고, 학교에 잘 가고, 겉으로는 멀쩡하게 크고 있다고 해서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특히 사회에서 어떤 자격과 성공의 자질을 가지고 있더라도 내면과 영혼의 중심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특히 세 번째 문제, 즉 가치관 성립의 문제에 대해 더 긴장할 필요가 있는 상황을 발견한다.

우리 아이들의 가치관 교육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을 몇 가지만 꼽아본다면 사회 전체의 세속화 경향과 그 뒤에 있는 개인주의, 상업주의라고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세속화 경향은 단순히 교회 기관이 힘이 없거나 학교에서 종교 교육시간이 사라지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기독교적 가치를 말하면 왕따를 당하는 현실을 말한다. 
상업주의란 돈의 논리가 세상을 더 지배하면서, 상업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사람들의 근본 뿌리부터 흔드는 분위기를 말한다. 

이러한 세속화와 상업주의는 ‘미디어’와 ‘인터넷’에 의해 더 강화되어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주체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미디어와 인터넷을 무조건 피해 다닌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도리어 미디어에 숨겨진 잘못된 논리들을 잘 분별해 낼 수 있어야 아이들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다. 우리가 이 작업을 제대로 못 하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고 교회를 다니고는 있지만, 생각과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아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화와 음악, 광고, 게임이 어떤 메시지를 주입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2003-8년 동안 13-17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미국에서 이뤄진’전국 청소년과 종교 관계 연구’조사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들의 대부분이 ‘문제해결형 윤리주의적 이신론’을 신앙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치유 중심이란 하나님이 삶의 실제 문제를 풀어주는 분으로, 윤리주의적이란 기독교를 어떤 윤리적 행동을 하는 것으로, 이신론이란 하나님이 원리만 만드셨을 뿐 그후에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관여하신다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을 가르치는데 비교적 열심이었던 미국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러한 기독교는 세속적 가치관,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들의 반영이다. 세계관적 통찰력 없이 그저 열심으로 교회만 만들다 보니 결국 기독교가 성경하고 별 상관없는 신앙을 가진 아이들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세상을 접할 때마다 우리 모두는 세계관적 분별력이 필요하다. 내가 그냥 즐기는 이 영화가, 이 음악이, 이 광고가, 이 게임이 삶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주입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비판은 근거가 필요하다. 또 이를 위해 복음을 가지고 ‘기독교적 답’을 잘 정리해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심각한 세속화와 상업주의와 미디어 홍수 속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최선의 것으로 가르치고 최선의 삶으로 인도하길 원한다면, 기독교 세계관을 잘 확립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 속에 숨겨진 다른 세계관들을 잘 비교 분석, 걸러서 받아들이는 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전쟁은 낯설지 않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성경본문 로마서 12장 2절은 이천 년 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복음은 최신 유행으로 받아들여지거나 모두가 환영할만한 소식은 아니었다. 이것을 고린도전서 1:23은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여기서 유대인이란 하나님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대표한다. 그러나 막상 이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지켜온 전통에 매여 십자가를 단순히 저주받은 자들이 달리는 기둥으로만 보았다. 이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아들까지 주신 사랑’이란 메시지를 ‘ 듣기 꺼려’ 했다. 여기서 이방인 이란 세상 유행의 첨단을 걷던 사람을 대표한다. 당시 지성인들의 최신 유행이었던 헬라 사상에서 보면 신이 저질스런 인간의 몸을 가진다는 ‘성육신’도 웃기는 소리였다. 더구나 이들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신이 인간의 죄를 위해 죽는 생각도 상식에 맞지 않는 ‘미련한’ 생각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김석원 목사
- 로뎀나무아래 디렉터, 
- 전 호주동아 논설주간, 
- 한호일보 편집 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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