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no one is above the law).”

조지 펠 추기경의 아동성추행 유죄 판결 후 스콧 모리슨 총리가 인용한 표현이다.

호주 최고위 가톨릭 성직자였던 조지 펠 추기경이 '유죄 판결을 받은 아동성범죄자(convicted paedophile)'란 낙인이 찍힌채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호주 사회 전반에 충격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그의 나이(77세)와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할 때 가석방이 예상됐지만 아동대상 성범죄라는 죄질과 유죄 판결 불구 후회한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자 보석마저 불허됐다. 그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를 했기에 최종 판결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종교 지도자로서 그의 역할은 사실상 끝난 셈이다. 이미 교황청도 내부 조사를 시작했다. 앞서 바티칸은 교황 자문 추기경단에서 그를 배제했고 미사 금지, 아동접촉 금지를 발표했다. 

이번 판결은 여러 가지에서 충격을 준다. 첫째, 두달 전 유죄 평결이 나왔지만 법원의 보도금지 명령(a suppression order)으로 범죄 내용이 철저하게 보도 통제됐다는 점이다. 배심원은 지난해 12월 11일 유죄를 평결했다. 그러나 빅토리아법원은 다른 혐의의 재판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보도금지를 명령했다. 2월 26일 검찰이 펠 추기경의 다른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를 취하하자 법원이 보도통제를 해제했고 펠 추기경의 유죄 평결이 세상에 공개됐다. 둘째, 범죄 내용도 가히 충격적이다. 

유일한 생존 피해자(1996년 성가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펠 추기경은 22년 전(1996년) 멜번의 세인트 패트릭성당(St Patrick's Cathedral)에서 주일 미사 후 사제의 성물보관소에서 당시 13살이던 성가대원 소년 2명을 강간(구강성교)과 성추행을 저질렀다. 12명의 시민들 중에서 선정된 배심원단(남성 8명, 여성 4명)은 5주 동안의 재판을 지켜본 뒤 사흘 반 동안의 논의 후 만장일치로 펠 추기경의 유죄를 평결했다. 배심원의 평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일반인들이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입에 담기 어려운 추행이 저질러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가지 의문은 펠 추기경이 직접 증언으로 혐의를 반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직자의 모든 명예가 좌우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재판)에서 펠 추기경이 직접 증언으로 “나는 억울하다”, “모든 혐의 주장이 허구다”라는 점이 입증될 수 있도록, 배심원들이 혐의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도록 설득(호소)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변호인을 통해 부인 성명을 발표했고 빅토리아경찰 수사대의 심문 비디오 일부를 배심원들에게 공개했을 뿐이다.존 엘리스(John Ellis) 변호사가 시드니모닝헤럴드지와 디 에이지에 28일 ‘역사가 조지 펠을 판단할 것’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기고했다. 엘리스 변호사는 12년 동안 가톨릭 사제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였지만 위기를 극복하며 변호사가 된 입지전적인 생존자다. 그는 자신의 패해 상황을 펠 추기경에게 알리며 가해자들의 처벌과 범죄 방지를 요구했지만 펠 추기경으로부터 싸늘한 경멸을 받았다. 교회는 문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진실을 외면, 묵살했고 결국 호주 정부(줄리아 길러드 총리 시절)가 의회 특검이란 수단을 동원해 문제의 진상을 파헤치며 해결안을 제시했다. 호주는 사제 성추행과 관련해 막대한 예산으로 의회 특검을 했고 아동성추행 혐의로 추기경에게 유죄를 판결하고 구속 수감했다. 종교조차 투명성이 없으면 존립하지 못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러니 어느 누구가 법 위에 군림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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