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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원목사칼럼] 21세기의 도전과 기독교가정
한호일보 | 승인 2019.03.07 13:53

다음 내용은 교육선교회 로뎀나무아래 김석원 목사의 강의로 시드니 영락교회에서 열렸던 ‘21세기 기독교가정의 신앙교육방향’ 세미나 내용이다. 최근 일반 교육계의 전반적인 고민을 바탕으로, 기독교인 가정에 필요한 신앙교육 방향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호주의 역사적 상황과 보편적 교육문제를 같이 참고했다는 점에서, 비기독교인가정에도 가치관 교육의 방향에 대한 건전한 논의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2.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3)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역사: 세계, 한국, 호주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세계관 전쟁은 갑자기 새롭게 발생한 문제는 아니다. 이 점은 실제로 이 문제앞에서 당황해 하는 많은 부모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에서 말세를 떠올리며 절망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사실 너희가 씨름하는 문제는 복음이 들어온 이래 계속되어 온 영적 전쟁의 일부다. 너희 선배들도 그 과정을 거쳤고, 어쨌든 지금까지 이른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은 그리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세상 것들이 설쳐도 창조자께서는 이 땅의 주인으로 남아계신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걱정 안하고 허리띠 풀고 그냥 있으면 될까? 역사의 전체 흐름은 하나님과 복음의 승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다고 해서 세부 상황 속에서 겪는 수 많은 아픔이나 고통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실제 상황 속에서 불필요한 실수나 과거에도 있었던 실패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더 나가서 선조들보다 더 나은 기회를 누릴 기회를 포기할 필요도 없다.

이 점에서 교회사는 많은 도움이 된다. 원래 기독교 문명이었던 서구에서는 ‘세속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7세기 이후부터, 세계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세속화란 기독교나 종교가 사회의 기준, 상식이 되어왔던 자리에서 밀려나는 현상을 가르킨다. 

실제로 유럽의 이성주의는 기독교안에서 그 싹이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곧 기독교를 부정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19세기 이르러는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사조가 유럽과 미국의 대학과 신학교까지 모두 지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교회를 향했지만, 머리는 신을 부정하는 논리로 무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 기독교에도 큰 도전이 되었지만, 막상 이성주의 자체도 기존 기독교의 대안이 되기에는 힘이 부쳤다. 때문에 이후 낭만주의, 허무주의, 실존주의 같은 다양한 현실부정적 반동들이 등장한다. 

한편, 기성 기독교 안에서는 이러한 흐름에 대항하기 위해 다양한 반응이 등장했다. 그 중 하나인 네덜란드에서는 이성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의 세계관에 대항해,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특히 이러한 교육의 중심인 학교, 대학과 신학교 등을 기독교 세계관 관점에서 바로 세워 선택할 수 있게 하고, 더 나가서는 신앙이 기존의 교회 내부 뿐만 아니라 이성주의가 지배하는 정치와 문화까지도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한다는 운동이 일어났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브라함 카이퍼라는 사람이다. 그는 칼빈이 강조한대로 ‘이 세상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다면 우리가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표현하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세속화를 통해 교회와 완전히 분리된, 교육, 문화, 과학, 정치, 경제 같은 각 영역에서도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보여주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하나님의 ‘영역 주권’의 회복이라고 불렀다. 특히 이를 위해 하나님이 원래 창조 때의 선함을 남기신 모습를 찾아, 죄 이전의 선한 모습, 선한 기능을 회복하는 사명을 강조했다. 

그의 주장에 공감한 많은 사람들이 이후에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치고, 세속적 세계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이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로 기독교 세계관으로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는 일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한동안 이 운동은 주로 화란계 이민자들을 통해서 세계로 퍼져갔다. 미국에서도 중서부를 중심으로 정착한 화란 이민자들이 이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나 미국 기독교는 이성주의에 대항하여 주로 ‘세상으로부터 도망가는’ 근본주의 방식으로 움직였다. 덕분에 세상 안으로 들어가는 개혁주의적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때 등장하는 주요 기독교 세게관 운동 지도자로는 여러분도 들어본 적이 있을 라브리 공동체의 프란시스 쉐퍼라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는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완벽하지는 않았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발전하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자기 논리에만 너무 깊이 빠져, 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함정에 빠지기도 했다. 화란 개혁교회가 자리를 잡은 형태가 다른 하나의 이민사회에서 나타났는데 바로 남아프리카이다. ‘아프리카너’라고 불렸던 화란 이민자가 많이 있던 이 곳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남아프리카의 온전한 기독교 문화’를 지킨다는 신학적 논리가 동원되었다. 인간이 복음을 얼마나 자주 이해나 자기 입장대로 바꿔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어쨋든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1980년대 한국에도 전해진다.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던 보수 기독교 청년 일부는, 당시 대학가를 휩쓸던 학생운동에 자극을 받는다. 이들은 혁명적인 정치활동에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신앙이 너무 현실 정치에 무관심하고 교회 활동에만 매여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또한 선교적 관심에서, 교회 외의 다른 분야, 특히 교육과 일반 직장에서도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다양한 기독교 교사운동, 기독교 학술운동, 직장 선교운동 그리고 공정선거 감시 같은 방식으로 정치참여 운동까지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한국의 세계관운동은 주로 학문적, 이론적 성격이 강조되어 일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한국교회 안의 근본주의와 세대주의적 경향은, 이런 철학적 접근에 대해 일반 교인들이 거북스럽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비교적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은 CCM 음악 같은 문화 부분에도, 기존 문화속에서의 변화 운동보다는, 기독교 하부 문화를 만들어 세상과 따로 노는 분위기가 더 주를 이루었다. 

덕분에 현실적으로는 이원론적 사고, 다시 말해 신앙과 일반 삶을 완전히 따로 분리해 취급하여 교회는 열심히 가도 주중에는 ‘일반문화를 즐기는 신자가 계속해서 세상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도록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기독교가 세상의 문화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세상의 문화에 휩쓸려간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더 적합한 표현이다.

다음시간에는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4) 호주의 상황이 이어집니다.

김석원 목사
- 로뎀나무아래 디렉터, 
- 전 호주동아 논설주간, 
- 한호일보 편집 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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