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은 교육선교회 로뎀나무아래 김석원 목사의 강의로 시드니 영락교회에서 열렸던 ‘21세기 기독교가정의 신앙교육방향’ 세미나 내용이다. 최근 일반 교육계의 전반적인 고민을 바탕으로, 기독교인 가정에 필요한 신앙교육 방향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호주의 역사적 상황과 보편적 교육문제를 같이 참고했다는 점에서, 비기독교인가정에도 가치관 교육의 방향에 대한 건전한 논의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2.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4) 

호주의 경우
호주도 단순 유형지에서 벗어나 장기 정착 식민지로 정비되기 시작한19세기부터 ‘세속화’ 가 지배적이었다. 캠브리지와 옥스퍼드에서 교육을 받고 파견된 식민지 운영자들은 본국의 계몽주의 영향을 그대로 가져왔다. 국교회 전통이란 틀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여전히 남아있던 본국보다도, 새로운 신생 식민지에서 더 열심히 계몽주의 이상을 실천하고 싶어했다. 덕분에 호주는 처음부터 기독교를 가능한 더 많이 배제하는 방향으로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먼저 대학부터 당시로선 당연시되던 목사의 교직과 이사직 참여를 못하게 함으로써 결국 교회와  교육이 완전히 분리된 의무 공교육 체계를 만들었다. 물론 기성교단들이 일찍부터 세운 사립학교들이 있었지만, 정부 지원이 끊어지면서 비싼 학비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면서 이들은 부자와 특권층을 위한 학교로 더 굳어졌다. 기독교적 가치는 ‘학교 로고’안에서만 남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와 대학 교육의 분리는, 호주 주류 신학이 다른 영국과 대륙의 신학처럼 계몽주의, 이성주의에 지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정통신학을 잘 이어가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들이 주류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더 적어져갔고, 사회 복지와 물질적 풍요가 이어지면서 기독교 종교생활에 대한 관심도 줄어갔다. 회중 교회 목사들도 호주 연방 수상까지 올라선 봅 호크의 말대로 기독교는 고려할 필요가 없는 옵션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불씨는 의외의 자리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2차세계대전으로 인한 유럽의 파괴와 네덜란드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독립으로 약 5만 정도의 네덜란드 인들이 호주로 이민을 오게된다. 처음에는 신학적으로 형제라고 할 수 있던 호주 장로교회에 집단적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도 한국인들처럼 이민자들의 문화와 가치를 따로 챙길 수 있는 교회와 교단을 따로 만들 필요를 느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문화 전수 이상의 목표가 있었다. 처음부터 카이퍼의 정신에 따라 기독교 세계관을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화란 이민자 자녀뿐 아니라 호주전체를 대상으로 기독교 가치관을 적용하고 가르칠 기독교 대학교를 세우려고 했다. 이를 위해 당시 몇 개 되지도 않는 개혁교회들은 엄청난 자원을 동원해 학교를 세웠고, 목사 교육 뿐만 아니라 기독교 대학의 비전으로 개혁 신학 칼리지(Reformed Theological College. RTC)를 당시 빅토리아주 제 2의 도시인 질롱에 세운다. 이런 배경에서 RTC는 당시에는 호주에 존재하지 않았던 기독교 교육 과목을 따로 개설해 기독교 교육자들을 키워내기 시작했다. 졸업자들은 곧 호주 기독교 학교 운동의 중추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민간이 대학 교육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기독교 대학운동은 벽에 부딪힌다. 덕분에 대학 대신 초등, 중고등학교급의 기독교 학교 설립 운동으로 에너지가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때 기독교 학교 운동은 두가지 흐름으로 나눠졌다. 

하나는 교사로서 기존 학교에 들어가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하자는 그룹이었다. 이들은 일반학교틀 안에서 교사들을 통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학교 종교교육시간 SRE등을 활용해 신앙교육을 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분별의 파라다임’에 가장 가까웠던 이 방법은, 안타깝게도 큰 힘을 얻지 못한다. 이 싸움에는 건강한 교회와 가정의 지원이 간절했지만, 호주 교계의 전반적인 쇠퇴 속에 교회는 자기 앞가름을 하기에도 급급한 실정이었다. 지금도 종교 교육시간 SRE는 지역 교회가 강한 지역외에는 명맥도 유지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또 하나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모든 과목을 가르치고 운영하는 독립 학교를 만들자는 운동이었다. 기존의 공립 학교 시스템을 활용하기에는 이들이 너무 기독교 가치와 거리가 멀어졌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그룹은 기존 교단설립 사립학교들도 기독교를 종교나 형식적으로만 가르칠 뿐, 제대로 된 기독교 세계관을 교육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완전히 다른 기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가정이 기독교 교육의 중심임을 강조하고, 이를 돕는 장치로 학교를 이해했다. 이런 류의 학교들을 ‘학부모 통제학교’라고 부른다. 학교의 보다 구체적인 교육 방향과 철학에 학부모들의 목소리와 신앙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도록 운영하는 구조다.

최근 들어 후자 학교들은 보수 정부의 재정적 지원속에서, 급격한 규모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학교들이 신자들만의 도피처가 될 위험이 있고, 이를 통해 세상의 도전과 현실을 감당하기 힘든 ‘너무 연약한’ 기독교인이나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백인부모들이 자신들의 기존문화와 기독교를 동일시 하며, 백인문화를 지키는 도구로 이들을 사용하려는 움직임도 없지 않다. 그러나 공교육의 붕괴와 사회의 윤리적 혼란에 우려하는 부모들의 입학서를 든 행렬은 이들 학교 정문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기독교 학교 운동외에도 자녀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심어주고자 하는 운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존재했다. 세속주의적인 일반대학에서도 EU같은 대학생 선교단체들들의 전도와 제자화 훈련사역이 이어졌고, 일부 기독교 학자들은 일반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기독교 대학의 비전을 부분적으로 이루려고 시도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맥콰리대의 기독교연구소는 일반 교양 과목으로 기독교세계관 과목을 제공해 왔다. 동시에 독립적인 기독교 대학 설립운동을 다시 추친하는 그룹도 생겨났다. 원래 순복음계열의 신학교였던 파라마타의 알파크루시스 대학교는 신학뿐 아니라, 교육, 음악, 상담 경영부분까지 기독교 가치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종합 사립대학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김석원 목사
- 로뎀나무아래 디렉터, 
- 전 호주동아 논설주간, 
- 한호일보 편집 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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