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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명호 칼럼] 호주 선거 제도의 역사
하명호(자유기고가) | 승인 2019.03.21 14:49

지난 주에 톰 로저스(Tom Rogers) 호주선거관리위원장은 “지난 2010 선거의 투표참가율이 96.3%였다. 이는 호주투표 역사상 가장 높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높은 투표참가율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들다.  

영국은 2017년 투표등록 인원의 68.7%가 선거에 참가했다고 과시한다.   미국은 2016년 총선에서 58.1% 참가했다고 자랑한다. 

호주도 이런 때가 있었다. 1901년 1월 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 정부의 허가를 받았다. 1903년 첫 연방의회 총선이 있었다. 투표자는 영국 시민권자나 영연방시민권자만으로 제한됐다. 호주 시민을 정한 것은 1980년대 이후였다. 그 당시는 경찰과 우편배달부들이 넓은 대륙에 흩어져 있는 유권자를 방문해서 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투표율은 43.36%였다. 투표율이 저조해지자  1911년 노동당의 앤드류 피셔(Andrew Fisher) 정부가 의무투표 제도를 제정하고 1924년부터 실시했다. 그 결과 91.3%로 높아졌다. 40% 이상 투표율이 급증했다. 그후 계속 90%가 넘어서 호주 정부는 다수 국민 참석자들의 투표로 의해 굳건히 세워졌다. 
의무 투표로 인해 투표일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나 빈곤층이나 부자나 노인이나 젊은이들이 모두 참석해서 굳건한 민주정부를 마련해 왔다. 호주의 무상 국민보건제도인 ‘메디케어(Medicare) 제도’를 자유-국민 연립 정부는 없애거나 대대적으로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무상 보건제도를 적극 찬성하는 국민 다수의 반대로 연립의 의도가 무산된 것을 우리는 지난 선거를 통해 기억하고 있다. 

선거 결과는 호주가 평등사회(egalitarian society)를 이루게 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투표를 기권하는 힘없는 국민들은 정부의 지지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의무투표가 아닌 한국에서는 투표율이 높으면 젊은층이 많아 진보세력이 우세하고 투표율이 낮으면 노인들이 많이 투표해서 보수층에게 유리하다는 말도 있다.

유권자 모두 참석해서 자기 의사를 충분히 나타내야만 자기 주장이 반영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이다. 호주 투표일은 언제나 토요일이다. 미국은 주중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무투표의 단점도 있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 투표를 하지 않는 다는 결정도 일종의 정치 행위인데 왜 투표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나?  
연방 총선에 불참하면 벌금이 $20이고 NSW 주선거에 불참하면 $55불이라고 한다. 투표하기 싫은 사람이 벌금을 내기 싫어 투표장에 가서 장난으로 '기호 1번'만 찍어버린다든가 하면 다수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호주, 브라질, 스위스 등 32개국이 의무투표를 채택했다. 

호주에 영국 함대가 도착한 1788년 1월 26일부터 55년동안 영국에서 임명한 총독과 영국 군대에 의해 NSW 정부가 운영됐다. 그러나 이민자도 늘어나고 죄수들의 후손들이 농촌에 상당한 땅(경작지)을 허가 받아 부를 누리게 됐다. 특히 1776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전쟁은 영국 정부에게 호주도 빨리 자치권을 부여해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를 원했다.  

그 당시 호주를 대표하는 총독의 자문기관(Legislative Council, 현재 NSW 상원)의 위원은 이제껏 총독이 임명한 사람만 가능했다. 그러나 1843년부터  일부 자문위원을 주민들의 투표로 선출토록 했다. 투표할 수 있는 사람을 정부가 임명했는데 농토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에 한 해서였다.  
영국 정부는 호주의 헌법과 자체 정착인들의 선거에 의해 의회를 구성하고  주총리를 선출토록 했다.  그러나  NSW주 하나로는 힘이 강해질 수가 있어  NSW주를 나누기 시작했다. 첫째 남호주와 타즈마니아주를 1856년에 독립시켰고 빅토리아주는 1855년, 퀸즐랜드주는 1859년 독립시켜 자체 지방 정부를 만들어 NSW주에서 분할됐다. 

남호주는 죄수들이 아닌 순수 이민자들만의 정부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1856년 주선거에 21세 성인 중 영국시민권자, 영연방 시민권자들에게 전원 투표를 허용했다. 이 제도는 1857-1896년 호주 전역에 적용됐다. 

영국 정부는 한 발 더 양보해서 1901년 1월 1일 호주 연방정부(Commonwealth Government of Australia)를 세우도록 허용했다. 다만 국방과 외교는 아직도 영국이 장악하고 있었다. 자부심을 가진 남호주 주정부는 1894년 여자도 21세 이상이면 투표를 허용했는데 세계에서 최초의 여성 참정권이 됐다. 이 제도를 호주 전체가 적용하는데 9년(1899-1908년) 걸렸다. 선거 연령이 21세부터 18세로 내려간 것은 1973년이다.  

원주민들의 투표 참여를 보면 1949년 주의회 선거에만 참여가 허용됐다. 대신 군대 징집 의무가 부여됐다. 그러나 퀸즐랜드, 서호주는 이법을 무시하고  1960년대가 돼서 허용했다. 1984년 연방 투표가 허용됐다. 지금은 물론 원주민도 상원이나 하원의원까지 될 수 있다. 영국인, 영연방인의 투표를 제한하고 호주 시민만 투표를 하게 된 것은 1984년부터였다. 영국인들이 과거는 권한이 많았지만 지금은 일반 이민자들과 다름이 없어지고 있다. 당연한 변화일 것이다.  

하명호(자유기고가)  milperr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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