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나라 뉴질랜드에서 불과 1명의 우익 극단주의자(호주 시민권자)가  저지른 총기 테러 참극이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금요일(3월 15일)의 대학살’은 제신다 아던 총리의 표현대로 뉴질랜드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날이다.   

이번 테러는 호주인 28세 극우주의자 브렌튼 타란트의 단독 범행인 것 같다. 2개의 모스크를 겨냥해 금요일 오후 기도를 하던 이슬람 신자들에게 무차별 총기 난사로 순식간에 100여명의 사상자(50명 사망, 50명 중경상)가 발생했다.  

호주 중견 방송인 스탠 그랜트는 “우리 모두는 우리 시대의 전쟁의 잠재적 희생자”라면서 이 테러를 ‘정체성의 전쟁(The war of identity)’이라 불렀다. 이 정체성은 이념, 종교, 인종, 관습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개념이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곳곳에 새로운 장벽을 세운다. 실제로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현대판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국가 지도자는 의회가 관련 예산을 안준다고 나라 행정을 몇 주 동안 마비시키는 행패를 부렸다.   

호주는 어떤가? 국경강화는 국민 다수가 거의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이민, 난민 정책의 근간이 됐다. ‘Stop the Boat(난민선 차단)’이란 캐치프레이즈는 선거 표몰이에 큰 역할을 했다. 
무언가 다르고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방인들(strangers)을 두려워하고 낡은 확실성 안으로 후퇴한 뒤 커뮤니티의 문을 닫아버린 셈이다.  

한국은 지난해 제주도에서 예맨 국적의 난민 사태(561명 입국)로 난리법석을 떨었다. 결국 한국 정부는 2차 심사(481명 신청)에서 난민 허용은 한 명도 없었고 362명에게 인도적 체류허가(1년 후 재심사)를 했다. 나머지는 불인정, 심사 보류 등이었다. 한국의 판정은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고 연간 1만명 이상을 난민으로 받아들이는 호주와 비교하면 유치한 수준이었다.    

세계가 편가르기 전쟁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이슬람 안에서 시아 vs 수니, 기독교 안에서 가톨릭 vs 개신교(Protestants),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힌두 vs 무슬림, 후투 vs 투치 (르완다) 그리고 한국에서 현재 진행형인 진보(촛불 지지자) vs 태극기부대 등등 
대륙별로도 발칸 반도, 한반도(6.25 전쟁), 우크라이나. 캐시미르,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예멘, 수단, 소말리아 등등 정체성, 이념, 종교로 죽고 죽이는 살육전이 계속됐다. 
몇 년 전까지 맹위를 떨쳤던 알카에다(Al Qaeda)와 IS(Islamic State)가 수그러들더니 최근엔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ultra-right white supremacists)이 북미와 유럽에 이어 남반구에서도 들먹거리기 시작했다.  

과거 지상낙원이었던 뉴질랜드가 다문화사회가 된 것을 극도로 증오한 테러범은 불안 속에서 ‘반동 심리’를 가진 모양이다. 그의 편협한 정체성은 엉뚱하게 폭력을 동반한 분노로 폭발했다. 백인 우월주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앙갚음(원수)에 대한 갈망이 무자비한 총기 난사 테러로 표출됐다.

교회와 성당, 시나고그, 모스크 등 종교 기관에서 찬양과 경배, 기도를 하던 평범한 시민들이 테러리스트의 총에 맞아 숨지는 세상이 된지 벌써 여러 해가 됐다. 호주나 뉴질랜드에 사는 우리 모두는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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