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산맥 중턱에서 박경 선생님과 나는 배낭을 집어 던지고 댓자로 누워 버렸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남쪽 생 장 피에 드 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쪽에 위치한 성 야고보의 시신이 묻혀있는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km길 이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를 제외하면 비유럽인으로는 한국 순례자가 가장 많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수필로, 시로 글을 써 온 시드니 동포 박경과 백경이 다른 일행 2명과 함께 다녀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수 많은 책과 정보들이 있지만 시드니에 사는 두 여인의 눈을 통해 드러날 산티아고 순례길은 기존의 수 많은 산티아고 이야기들과는 '다른 색깔로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교대로 쓰는 '박경과 백경의 산티아고 순례길' 을  3월 8일부터 11월 까지 격주로 연재한다. 백경은 여행길을 사진대신 그림으로 기록했고 그 일부를 백경의 글과 함께 싣는다(편집자주). 

초짜 까미노들은 찬 기운이 올라오는 마룻바닥에서 머리까지 침낭을 뒤집어쓰고 밤의 냉기를 견디며 첫날 밤을 보냈다.
삶을 향한 인간의 모험은 나이가 따로 없고, 그 모험의 과정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일인지를 피레네 언덕을 넘어가고 있는 그를 통해 보았다.

둘째 날,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을 나서려는데 비가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담벼락에 기댄 채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꼭 입만 동동 뜬 물고기들 같았다.

스페인 이룬(Irun) 역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 지점인 생 장 피에 드 포르(Saint Jean Pied de Port)로 가는 길에는 노란 화살표가 없었다. 프랑스 기차 파업으로 나를 포함, 박경 선생 부부, 친구 S, 그리고 한국에서 온 J가 순례길의 출발지점인 생 장 피에 드 포르(이하 생장)에 도착한 것은 2018년 5월 9일. 예정보다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일행은 순례자 협회 사무실이 문을 닫기 전에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언덕을 급히 뛰어 올라갔다. 사무실에서는 평균 70세가 넘어 보이는 자원봉사자 서너 분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까미노(Camino. 원래 길이라는 뜻이지만 보통 순례자를 의미)들에게 순례자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자원 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순례자 여권 발급에 필요한 신청서를 작성했다. 아주 작은 신청서 한 켠에 적힌 질문 하나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당신은 왜 산티아고에 가십니까? 

갑자기 던져진 질문 앞에서 주춤했다. 내가 이 곳까지 온 이유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보았으나 이렇다 할 대답을 찾지 못한 채 호주 여권과 접수비 2유로를 건네주고 순례자 여권을 발급 받았다. 드디어 손에 쥐어진 ‘순례자 여권’(Credencial), 천 년간 순례자들의 무수한 발자국들 위에 겹쳐질, 신발 사이즈 6.5의 내 작은 발자국! 나도 꿈에 그리던 까미노가 된 것인가?

어느 새 사위가 어두워지고 상점들도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한다. 순례자 여권을 받은 우리도 여행 첫 날의 긴장과 길고 긴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 줄 숙소, 알베르게(숙소)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성수기에 접어든 생장의 알베르게에는 늦게 도착한 순례자들을 재워 줄 여유분의 침대가 없었다. 기차 파업에 이어 두 번째의 시련이 닥쳐온 것이다. 

피레네 산을 내려와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 마을 조금 못미쳐 비를 만났다.

설마 첫날부터 노숙이야 하겠냐며 서로를 다독이면서도 발걸음은 어느새 알베르게 간판이 걸린 골목길을 서성였다. 그 때 우왕좌왕 하고 있는 우리를 지켜보던 인상 좋고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한 자원봉사자가 다가와, 마지막 순례자들이 도착하는 10시까지 기다려보라며 안심시켜 주었다. 밤 늦게 도착한 까미노 10여 명과 우리 일행은 자원봉사자의 손 전등을 따라 10여 분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 제법 큰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텅 빈 체육관, 샤워시설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공용 화장실 1개, 배수가 잘 되지 않는 세면대 하나가 전부였다. 일행은 거의 3일 동안을 씻지 못했지만 일찌감치 문명인이기를 포기한 채 각자 침낭을 펴고 잠을 청했다. 다른 까미노들도 씻기를 포기한 듯, 입었던 옷 그대로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체육관은 일시에 소등이 되었다.  초짜 까미노들은 찬 기운이 올라오는 마룻바닥에서 머리까지 침낭을 뒤집어쓰고 번데기처럼 누워 밤의 냉기를 견디며 그렇게 첫날밤을 보냈다.

산티아고까지 800km의 여정이 시작되는 첫 날 이른 아침, 우리는 숙소 앞에서 둥그렇게 서서 서로 손을 잡았다. 종교도 갖지 않은 박경 선생님이 우리를 대표해 무사히 이 길을 완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30여 일 동안 펼쳐질 ‘희로애락’, 어떤 모양으로 각자의 가슴에 새겨질까? 적잖은 나이에 오른 여정이라 다들 건강이 걱정이 되었다. 나는 속으로 희로애락 중에서 ‘희’와 ‘락’만 허락해 주십사 하고 가당치 않은 기도를 올리다가 마음을 바꾸어 “그저 살아서 이 길을 완주만 하게 해 주세요” 라고 신께 엄숙한 기도를 올렸다. 산티아고까지의 800km 여정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가장 험난하다는 피레네 산맥 1450고지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오르막길 초입에 표시된 노란 화살표를 따라 나폴레옹이 포르투갈 정복을 위해 넘어갔다는 길을 택했다.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 24.8km중 20km가 오르막 길이다. 

  순례의 첫날이어서인지 앞뒤로 걷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서로에게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즉, 평안한 순례의 길 되시길’이라는 인사를 건네며 멋진 순례길이 되기를 빌어 준다. 연신 들려오는 부엔 까미노!.. 밝은 인사를 건네며 걸어가는 발걸음에서 웃음소리가 피어난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다가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이 마주침이 마지막일 수도 있지만.......

피레네 산맥을 오르던 순례자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일본 할아버지가 있다. 여든을 훌쩍 넘긴 그는 이 순례길이 자신의 버킷 리스트에 오래 전부터 들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지팡이도 없이 씩씩한 걸음으로 우리를 앞장 서 갔다. 삶을 향한 인간의 모험은 나이가 따로 없고, 그 모험의 과정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일인지를 피레네 언덕을 넘어가는 그를 통해 보았다.  
  
배낭 무게가 양쪽 겨드랑이를 짓누른다. 출발지로부터 8km 지점에 위치한, 오리손(Orisson) 산장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배낭을 내리고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바람에 발을 말리며 산장 커피를 시켜 마셨다. 철제 의자에 앉아 커피 향을 맡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 그늘에 포위된 오래된 마을이 보인다. 지붕을 타고 올라온 햇볕이 내려앉은 자리마다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짧은 휴식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이 배낭의 무게를 가중시키며 발걸음을 부여잡는다. 그러다가도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대 자연의 아름다움이 마치 진통제처럼 순간순간 고통을 잊게 해준다. “부엔 카미노!” 인사를 건네며 뒤에서 오던 순례자가 나를 앞질러 간다. 이렇게 계속 뒤처지다간 혹 론세스바예스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조급해지다가도 경쟁하지 말고 내 속도로 걷자고 스스로를 다시 다독인다. “그래 힘을 내자.”

친구 S는 지치지도 않는지 피레네 산맥을 넘는 내내 앞장 서 걸어가고 있다

피레네 산맥 정상 조금 못 미쳐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가르는 지점에 위치한 ‘롤랑의 샘(Fontaine de Roland) ‘부근에서 조그만 돌멩이 하나를 발견했다. 예사롭지 않게 생긴 돌멩이에 푸른 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다. 문득 배낭 안에 든 돌멩이 5개가 생각났다. 순례길 중 철 십자가를 만나게 되면 놓아달라고 지인들로부터 부탁받은 것이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내 것은 빼놓고 왔는데 돌멩이를 보는 순간 마음이 흔들린다. 비우는 일이 채우는 일보다 어려운 일임을 입증이나 하듯이 나는 돌멩이를 배낭 안으로 쑤욱 밀어 넣는다. 

 언덕의 정상에서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길, 배낭이 나를 끌고 가듯하여 겨우겨우 도착한 1450고지, 사방에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눈 아래로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저 아래 너도밤나무가 심겨진 급경사의 숲길을 1시간 여 걸어 내려가면 오늘의 목적지다!

온 몸이 땀범벅이 된 채 등산화에 진흙까지 달고 도착한 론세스바예스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였지만 다행히도 수도원 지하에서 하룻 밤 의탁할 침대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길 위에선 먹고 자고 걷고 하는 생존 본능을 잘 충족시키려면 다른 사람보다 일찍 길을 나서야 한다. 먼저 알베르게를 확보하기 위해 일찍 침낭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걷는 인간, ‘호모 비아트로(•Homo Viatro)’의 하루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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