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일어난 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복구가 끝나지 않은 교회 건물

뉴질랜드로 여행을 떠난다. 호주에 오래 살았지만 바로 이웃 나라, 뉴질랜드 방문은 처음이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미루다 보니 몇십 년이 지난 이제야 뉴질랜드를 방문한다.   

가방을 꾸린다. 꼭 필요한 것만 챙기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짐이 적을수록 여행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다. 인생도 짐이 적을수록 자유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짐’은 말 그대로 '짐'이기 때문이다.

떠나는 날이다. 시골에 살기에 시드니 공항까지는 4시간 정도 자동차로 가야 한다. 그러나 밤 비행기이기 때문에 느긋하게 집을 나선다. 오랜만에 시드니에 사는 지인과 점심도 같이 하기로 했다. 여행의 설렘을 만끽하며 고속도로를 달린다.

지진으로 파괴된 교회가 아직 수리를 하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다.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했다. 먼 하늘이 먹물을 뿌려놓은 듯이 검다. 비구름이다. 비가 한차례 내릴 모양이다. 공항에서 두어 시간 지났을까, 예상했던 대로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공항 대합실 방송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있다. 내가 타려고 했던 비행기도 연착이라고 한다. 뉴스에서 이런 일은 많이 보았지만 직접 경험하기는 처음이다.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서너 시간 늦어서야 탑승이 시작된다. 힘들게 여행길을 떠난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으로 나뉘어 있다. 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 도착했다. 예정 시각을 한참 넘긴 새벽 3시다. 다행히 렌터카 직원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공항 근처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해 자동차를 인수한다.

크라이스트처치 시티 전경

낯선 나라에서 칠흑 같은 밤에 숙소를 찾아 가야 한다. GPS가 없었다면 숙소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자동차에 앉아 GPS에 숙소 주소를 입력한다. 그러나 몇 번 시도해도 주소를 찾지 못한다. 직원이 왔지만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결국 다른 것으로 바꾸고 나서야 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 숙소가 있는 곳은 새로 조성된 동네라 찾지 못했던 것이다. 마음은 급한데 30분 이상 시간을 소비했다. 

우여곡절 끝에 거의 새벽녘이 되어서야 민박집(에어비앤비)에 도착했다. 주인이 알려준 대로 비밀 번호를 입력해 집에 들어선다. 새집이다. 깨끗하다. 새벽잠을 청하며 뉴질랜드에서의 첫 날을 시작한다.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피곤한 잠을 잤기 때문일 것이다. 

늦게 일어나 베란다에서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습을 대한다. 뉴질랜드는 추운 나라라고 알고 있는데 (2월초) 생각보다 따듯하다. 새로 조성된 주택가에는 새로 지은 아담한 집들이 즐비하다. 근체에는 집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민박하는 주인 여자가 찾아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뉴질랜드에 10년째 산다고 한다. 필리핀계 사람이지만 항공 엔지니어인 남편 따라 이주했다고 한다. 뉴질랜드 생활에 만족한다며 웃음을 보낸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고 자동차를 타고 나간다.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게 시내는 자동차로 붐빈다. 그러나 시드니와 같은 대도시와 비교하면 한산한 편이다. 도로와 교통 표지판이 호주와 흡사해 운전하는데 불편함이 없어 좋다. 호주에서 많이 보던 상점 이름도 눈에 뜨인다. 호주의 다른 도시에 온 느낌이 들 정도다. 

눈에 들어오는 쇼핑몰에 주차한다. 쇼핑몰에 있는 푸드 코트를 찾았다. 일식집이 있다. 큼지막한 장소에 직원도 많은 편이다. 한국 사람이 경영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예감이 맞았다. 손님 맞느라 바쁜 주인과 몇 마디 나누며 한국의 정을 나눈다. 

지진으로 무너진 교회 앞 광장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도심 한복판을 찾아 나선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남섬에서 가장 큰 도시다. 그러나 2011년에 일어난 큰 지진으로 1500여개의 빌딩이 파괴되고 120여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큰 피해를 끼친 지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신축 공사 현장을 비롯해 파괴된 건물도 보인다.

지진의 흔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건물은 교회 건물이다. 크라이스트처치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1864년에 착공해 1904년에 완공한 건물이다. 지진에 잘려나간 건물은 흉측한 모습을 드러낸 채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일반인의 통행을 막은 공사 가름막 앞에는 큰 십자가도 있다.

교회 앞에 있는 광장에는 관광객이 많다. 교회 주위를 돌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가름막 너머로 교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박스도 있다. 지진의 아픈 상처를 보여주는 조형물도 광장에 있다.

신을 위한 교회가 참담하게 부서져 있다. 큼지막한 돌덩이로 건축한 성전(聖殿)이다. 그러나 지진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교회가 파괴된 것을 보니 조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진은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자연스럽게 물러났을 뿐이다. 세상만사가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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