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키티카(Hokitika) 해변 전시관(?) 입구

차창 밖으로 뉴질랜드 특유의 경치에 시선을 빼앗기며 남섬 북서해안 호키티카(Hokitika)에 도착했다. 서해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동네다. 숙소에 도착하니 주인이 밝은 웃음으로 맞는다. 은퇴한 이후 심심풀이로 농장을 돌보며 방을 빌려준다고 한다. 숙소를 찾는 손님이 많아 바쁘다며 싫지 않은 기분을 내보이기도 한다. 숙소 뒤에 있는 들판에서는 양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도 해가 지려면 시간이 있다. 호키티가 동네가 자랑하는 석양을 보려고 숙소를 나선다. 동네 한복판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크다. 대형 교회가 보인다. 오래된 동네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고풍을 자랑하는 건물들도 보인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선물 가게를 비롯해 식당이 늘어선 거리를 천천히 운전하며 바닷가로 향한다. 

깊은 계곡의 주변과 어울려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도러시 폭포(Dorothy Falls)

석양을 보러 온 사람이 많다. 주차장에는 캠핑카를 비롯해 관광객이 빌린 자동차가 대부분이다. 해안에는 바다에서 떠밀려온 나뭇가지를 이용해 사람들이 만든 특이한 형상이 즐비하다. 나뭇 가지위에 운동화 한 짝을 매달아 놓은 작품 아닌 작품도 있다. 모래사장에 있는 작은 전시관에 들른 기분이다. 여행하면서도 이런저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여유와 유머를 즐기는 사람이 부럽다.

카니에레 호수(Lake Kaniere)에서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들

구름이 적당히 널려있는 서해안이다. 평소보다 큰 태양이 구름 사이로 서서히 가라앉는다. 구름 색깔도 시시각각 변한다. 많은 사람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순간을 찾아다니는 전문 사진사들은 삼각대에 큼지막한 카메라를 걸쳐 놓고 석양을 담는다. 느긋하게 해가 떨어진 이후의 석양까지 즐긴 후 해안을 떠난다.  

근처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다. 빛을 발하는 벌레가 있다는 장소다. 숲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음습한 곳이다. 조금 걸어 숲속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습기를 머금고 있는 이끼가 뒤덮은 바위에서 작은 초록색 불빛이 반짝인다. 그러나 반딧불처럼 점멸 하지는 않는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30km 떨어진 카니에레 호수(Lake Kaniere)를 찾아 나선다. 시야가 넓게 펼쳐진 시골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남다르다. 한참 운전하니 숲이 우거진 곳에 작은 마을이 보인다. 조금 더 들어가 막다른 길에 있는 호수에 도착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큰 호수다. 엄마와 함께 온 어린 아이는 일찌감치 호수에 몸을 담그며 물장난이 열심이다. 호수 한가운데 배도 떠있다. 낚시를 하는 것 같다. 빠른 속도로 달리며 스피드를 즐기는 작은 보트도 멀리 보인다.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에서 나름대로의 삶을 즐기는 모습, 보기 좋다.  

주차장 옆에는 카히카티(Kahikatea)라는 이름을 가진 짧은 산책길 표지판이 있다. 원주민이 지은 이름일 것이다. 뉴질랜드에는 원주민 말로 지은 지명이 많다. 뉴질랜드를 방문하는 외국 정상들이 원주민 식으로 환영을 받는 것도 텔레비전을 통해 자주 보았다. 원주민의 입김이 호주보다 크다는 생각이 든다.  
     

석양이 유난히 아름다운 호키티카

짧은 산책로는 고사리를 비롯해 습지 식물로 뒤덮여 있다. 뿌리에 가까운 부분은 이끼로 둘러싸여 있는 거목도 많다. 제법 넓은 시냇물도 흐른다. 습도 높은 산책길을 걸으며 각가지 다른 모습의 이끼를 보는 재미가 있다. 이끼 종류가 많다는 것을 새삼 알아차린다. 

산책로를 나와 큰 호수 주위를 자동차로 돌아본다. 호수를 앞에 두고 10여 채의 집이 가지런히 있다. 잘 지은 큰 집들이다. 보트가 있는 집도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네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몇 채의 집을 지나 숲으로 난 도로를 따라 들어간다. 

조금 들어가 폭포가 보이는 작은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도러시 폭포(Dorothy Falls)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작지 않은 바위와 이끼가 가득한 골짜기에서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다. 떨어진 물줄기는 큼지막한 바위와 자갈 사이를 흘러가며 흥얼거린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다정히 서로 어깨를 감싸고 폭포 앞에 서 있다. 산과 폭포 그리고 다정한 남녀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호키티가(Hokitika)에서 석양을 즐기는 관광객들

폭포 물줄기를 따라 만든 작은 오솔길을 걷는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자갈을 헤치고 호수와 합류한다. 자갈이 많은 호수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작은 돌멩이를 물위에 던져본다. 서너 번 물위를 퉁기다 가라앉는다. 인간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자연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다.

높은 산 어디에선가 시작해서 수많은 계곡을 지나온 물이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며 폭포를 만들기도 하면서 넓은 호수까지 왔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노자가 이야기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생각한다.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도 다투지 않고, 끊임없이 낮은 곳에 자신을 두는 물과 같은 삶이 최고의 삶이라고 한다. 
‘상선약수’ 다시 한 번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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