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시인협회 송년 모임 때의 송석증 시인(2013).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메일을 하나 받았다. “안녕하세요. 송석증(피터송)의 아내입니다. 남편이 지병으로 2018년 11월 10일에 별세했습니다. 그동안 신장병으로 투석을 하다가 지난 9월에 요양병원으로 갔는데 합병증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로 시작되는 부고였다. 답메일을 보내고 며칠 동안 착잡한 마음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근 20년 동안 투석을 하며 목숨을 지탱했는데 그만 별세하고 만 것이었다. 

송석증 시인은 무교회주의자 송두용 목사의 아들로 1945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러니까 해방둥이로서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인데, 생전에 6권의 시집을 낸 미주시단의 대표주자였다. 1983년에 간호사인 아내의 주선으로 미국 LA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더라면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영어학원에라도 몇 년 다니다 미국행을 결행했어야 할 터인데, 37세인 그는 그야말로 무작정 비행기를 탔던 것이고, 미국은 그에게 낯선 언어의 나라였다. 

여기 머문 지 어언 23년 되었습니다
공항에 내리고 다음날부터 문제가 된 혓바닥
뻣뻣한 혀끝 아직도 굳어 있습니다.
(…)
미국 머문 지 오래되어, 너무 오래되어
스스로 파진 구덩이, 내 마음 상한 덫
정말 두렵습니다.
빨간 루게릭 병에 신음하는 민족 앞에
바보들 난투극의 연속극
바보상자만 바라보고 서 있는 내가
- 「미국에서」 부분

데스밸리 여행 중에 들른 노천박물관에서. 최석봉 시인, 송석증 시인, 나.

공항에 내린 다음 날부터 혀가 굳었으니 난감한 일이다. 사방에서 들리는 영어는 알아들을 수 없고 더군다나 혀를 굴리며 영어를 해야지 햄버거 하나라도 먹을 수 있다. 영어선생님을 모셨으니 텔레비전이었다. 아내는 출근하고 남편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이 시에서 “빨간 루게릭 병에 신음하는 민족”은 반공ㆍ빨갱이ㆍ종북세력ㆍ무장간첩ㆍ주사파 등의 말을 쉴새없이 들으며 살았던 한국의 정치상황을 은유하는 말이다. 그런데 미국에 오고 보니 바보상자가 “난투극의 연속극”을 보여준다. 콜롬보니 뭐니 웬 수사 프로가 그리 많은지. 태평양을 건너서 온 나라 미국은 전혀 태평하지 않은 나라였다. 

도시를 질주하는 빨간 자동차
놀라움, 위험함의 전조등이 되었다
번쩍거리는 저것들은 찰나를 정지시킨다
미국 제2의 도시를 불안하게 하는, 
도시 테러분자들의 분신이다
도시의 빨간색은 온통 전율이다

- 「LA시는 빨갛다」 부분

경찰차와 소방차와 앰뷸런스가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도시는 그에게 커다란 공포감을 선물했다. 청소나 배송, 운전 같은 일을 하다가 신장에 병이 생긴 이후 시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몸, 한때는 문학청년이었으니 시를 위해 순교하기로 하자. 

햄버그 먹은 것이 몇 개인가
왜? 아직도 치즈 맛이 역겨운지
K타운 못 떠난 혀, 올림픽街에 머문 내 입맛
허리 쭉 펴고 보무도 당당히 입성했어야 할
주류사회 속, 결단코 무너짐이 없는 백인사회 앞에서
남루한 차림, 맨발의 패잔병 같은 내 삶이
무릎 피딱지 아물지 못하게 변호하고 있다
오금 못 편 혀, 오그라들어 혀짜래기 되고
한때 유학생들 Dog Food을 쇠고기 통조림으로 착각했듯
혼돈과 착각의 사막을 헤매는 내 새우잠이
어젯밤 팜 트리 허리 꺾은 태풍에
꿈과 희망, 시민권과 지긋지긋 영주권을 날려 보냈다
- 「이민 애가」 전반부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후 시인이 겪은 만고풍상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난처한 일을 얼마나 많이 겪었을 것인가. 이 시에서는 “오금 못 편 혀, 오그라들어 혀짜래기 되고”라는 한마디로 처리되어 있지만 그간 겪었을 당혹감과 좌절감이 여기에 다 들어 있다. “결코 무너짐이 없는 백인사회”와 대조되는 것은 “남루한 차림 맨발의 패잔병 같은 내 삶”이다. 주류사회는 견고하게 성을 쌓은 채 시인의 입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간 시인이 성을 오르고자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을 테고, 무릎에 피딱지가 아물지 않는 날이 없는 힘들고 서러운 나날이었을 것이다. “꿈과 희망, 시민권”과 “지긋지긋 영주권”을 태풍에 날려 보냈다는 표현 속에는 이민자의 고충이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 이 둘을 받아야 온전한 미국인이 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두 가지를 받는다는 것은 미국 국적을 갖는다거나 미국으로 귀화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미국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인종차별이나 신분차별의 굴레를 벗고 떳떳하게 미국에서 생활하고 자식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는 뜻이다. 시인은 자신을 향수병자로 간주하면서 탄식하기도 한다. 

인종은 191개국 다 있지만
신분은 서류 한 장이 차별하고 시민권자, 영주권자
영주하는 사람들은 합법과 불법으로 체류되고
미시민권은 누구나 미합중국의 성조기를 흔들게 한다
자유와 평등, 기회는 사내답게 살게 하지만
의무와 차별 막막함 함께 동거하는 사내가 많다
이민은 편리한 세상 풍요로운 나를 관리하지만
창 없는 감옥 속 빈곤한 나를 향수병자로 방치하기도 한다
- 「LAX의 경고」 종반부

미국 거주 한인 이민자의 고충을 대변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에 영주하는 사람들은 일단 합법 체류자와 불법 체류자로 분류된다. 삶의 터전을 허락받은 시민권자에게 미국은 성조기를 흔들게 한다. 미국이란 나라가 ‘자유와 평등’, ‘기회’의 나라임에 틀림없지만 ‘의무와 차별’, ‘막막함’이 늘 따라다닌다. 또한 물질적인 풍요는 미국에 견줄 나라가 없겠지만 묘하게도 그런 미국이 “창 없는 감옥 속 빈곤한 나”로 만든다. 한 가지 예만 들면 미국에서는 술에 취해 밤거리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녔다가는 작은 코를 크게 다친다. 한국과 같이 심야에 영업하는 포장마차가 어디 있으며 여자를 옆에 앉히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룸살롱이 어디 있으며 심야 노래방이 어디 있는가.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간 시인으로서야 자신을 “창 없는 감옥 속 빈곤한 나”로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향수병 환자가 되어 고국을 마냥 그리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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