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토끼(도시 지지층)’ 지키면서  ‘산토끼(지방 블루칼러계층)’ 잡아야 하는 과제
“논쟁보다 해결책 마련 중요” 이탈한 부동층 지지 회복 관건   

앤소니 알바니즈 신임 야당대표

'알보(Albo)' 별명의 앤소니 알바니즈(Anthony Albanese, 56)가 마침내 연방 야당대표가 됐다. 노동당내 좌파 계보(Labor left faction)의 수장인 그는 ‘블루칼러’ 계층을 대변한 정당으로 불렸던 노동당의 색채에 가장 어울리는 정치 중진이다. 

그가 언젠가는 노동당 대표로 선출될 것이란 예측이 많았지만 6년 전 당권 경쟁에서 빌 쇼튼 전 야당대표에게 패배해 늦추어졌다. 당시 경선에서 당원들의 지지표는 쇼튼보다 더 많이 받았다. 그만큼 대중적인 인지도는 앞섰지만 당내 좌파의 수장이란 한계로 의원과 당직자들은 우파가 내세운 쇼튼을 선호했다. 

노조 지도자 출신의 쇼튼은 노동당의 두 현직 총리들의 퇴출(당내 쿠데타)에 크게 관여한 막후 정치 실력자다. 그러나 ‘질 수 없던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두 번의 기회를 놓친 쇼튼은 ‘노동당 정치역학의 달인(mastery of Labor politics)’이었지만 정작 이끌고 싶은 국가에 대한 이해가 서툴렀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019 총선에서 노동당이 3연속 충격패를 당하면서 쇼튼이 물러났고 이제 노동당은 선택의 여지없이 알바니즈를 당대표로 뽑았다. 몇몇 중진들의 당권 경쟁 참여설이 있었지만 결국 경선없이 무투표 추대 모양새가 됐다. 빌 쇼튼이 두 번 졌으니 알바니즈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명분이 대세가 된 것이다. 

노동당은 당의 분위기를 일신해 3연속 패배의 늪에서 벗어나 집권당이 되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지상과제다. 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블루칼러 계층이 많은 대도시 외곽 선거구에서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했다. 시드니 서부 펜리스 지역의 린지(Lindsay) 선거구 패배가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노동당 텃밭’이던 지역구의 수성에 실패했다. 특히 퀸즐랜드에서는 30석 중 6석 당선에 그쳐 2019년 총선 패배의 최대 원인이 됐다. 

29일 S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알바니즈 신임 야당대표는 “우선 총선 패배의 원인을 분석할 것이고 유권자들의 여론을 청취해 반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전 장관 시절) 나는 도로, 교량, 신공항, 인프라스트럭쳐 건설에 주력했다. 이제 호주 국민들과 관계 건설에 주력할 것이다. 국민들은 논쟁보다 해결책 제시를 원한다.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기위해 나는 야당대표로서 경청하고 반응(respond)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집권하려면 ‘중도 성향으로 복귀해야 한다(Labor must move back to the centre)’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노조 지도자 출신인 빌 쇼튼이 야당대표 시절, 노동당은 계층을 선별하는 좌파 정책에 치우쳤다는 비난을 받았다. 네거티브기어링 제한 정책도 많은 투자자들의 등을 돌리는 실책으로 평가받는다. 퇴직자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은 주가배당금 세제혜택(franking credits) 폐지도 과욕이었다. 이같은 분배정의 차원의 조세 정책(redistributionist tax policies)에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2019 총선을 ‘기후변화선거(climate change election)’ 구도로 몰아간 것도 패착이었다. 특히 퀸즐랜드와 타즈마니아 유권자들, 석탄광산업 종사자들로부터 일자리 위협이란 거센 반발을 초래하면서 노동당의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다. 

승리가 예상됐던 총선에서 진 노동당은 이젠 정책 실수를 바로잡고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알바니즈 신임 야당대표는 ‘노동당은 호주 녹색당의 2중대(Labor is a paler shade of the Australian Greens.)’라는 인식도 바꿔야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점은 약 30% 이상의 유권자들이 더 이상 연립 또는 노동당 고정표가 아니며 녹색당 고정표는 6-8%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총 유권자의 약 1/3 가량이 대규모 부동층이다. 선호도 배분에서 녹색당 지지표가 노동당에게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부동층(swinging voters)이 녹색당보다 중요하다. 노동당이 항상 녹색당과 선호도를 교환하는 점도 이번 기회에 심각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정당의 정책 또는 선거 캠페인에대해 세밀하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을 진지하게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념, 종교적 가치관 등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유권자들은 정당이 그들의 필요성을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는 편이다.
 
오늘 노동당의 문제는 기후변화 정책의 지나친 몰두, 석탄개발에 대한 의구심, 유권자 분리 세제정책 등으로 인해 상당수 유권자들이 거부감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이런 배경에서 노동당은 중도노선 강화로 부동층의 지지를 시급히 복구할 필요가 있다. 

모리슨 ‘조용한 호주인들’ 지지 유도 성공 

스콧 모리슨 총리는 불쾌감을 주지 않는 자유당 지도자라는 점을 자유당 지지 성향의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확실하게 전달하면서 ‘조용한(침묵하는) 호주인들(quiet Australians)’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알바니즈 신임 야당대표도 노동당 지지 성향의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같은 입장이 되어야 한다.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편을 가르는 정치(identity politics)가 아니라 지역 경제를 살리며 융합하는 정책에 치중해야 한다. 

노동당의 고민은 대도시 도심 주변 유권자들(inner-city voter)과 주로 지방이나 도시 외곽에 거주하는 전통적 블루칼러 지지자들의 이해관계를 조화롭게 융합하는 것이다. 알바니즈 야당대표는 지역구가 시드니 이너 시티인 그레인들러(Grayndler)이지만 노동당이 이 유권자들만을 위한 정당이 아님을 블루칼러 유권자들에게 각인시켜야한다. ‘집토끼(도시 지지층)’를 지켜면서 ‘산토끼(노동당을 떠난 지방의 불루칼러 유권자들)’의 지지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가 노동당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politics is the art of compromise)이라고 하니 알바니즈가 계층간 이해관계 융합에 어떤 능력을 발휘할지 궁금하다. 

‘노동당 좌파 수장’ 앤소니 알바니즈는 누구?

앤소니 알바니즈 신임 야당대표는 ‘노동당에 가장 어울리는 정치인’으로 불린다. 싱글 마더의 보호 아래 정부 주택에서 자라며 어릴적 가난을 경험했고 15살 때 청년 노동당원으로 가입해 사회활동을 했으며 당내 좌파계보의 수장으로 올라선건 개인적인 배경 때문이다.  1963년 시드니에서 출생한 그는 10대 중반까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말을 듣고 성장했는데 청소년 때 출생의 비하인드 스토리(이탈리아계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가 크루즈 여행선에서 만났고 바로 헤어졌다는 것)를 알게 됐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어머니 메리앤은 아들 앤소니에게 가톨릭교회, 사우스 시드니 풋볼클럽(래비토), 노동당이라는 ‘3가지 위대한 믿음(three great faiths)’을 가르치면서 아들의 인생관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고교 졸업 후 시드니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 노동당에서 정책 연구원, 의원 보좌관 등으로 일했다. 

1996년 시드니 이너 시티 지역구인 그레인들러(Division of Grayndler) 지역구의 공천을 받아 당선되며 연방 정계에 입문했다. 2007-13년 케빈 러드와 줄리아 길러드 총리 시절 장관(인프라스트럭쳐, 교통, 지방 개발부 등)을 역임했고 노동당 부대표, 부총리를 지냈다. 
노동당 좌파 계보의 수장인 알바니즈의 아내는 카멜 테벗(Carmel Tebbutt) 전 NSW 부주총리였고 슬하에 아들이 한 명 있다. 이 부부는 2019년 별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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