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개천이 산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

뉴질랜드를 다녀온 지인들은 한결같이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를 꼭 가보아야 할 곳으로 추천한다. 오늘은 말로만 듣던 밀포드 사운드를 가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비를 뿌릴 것 같은 구름이 낮게 깔려 있다. 목적지까지는 100km가 훌쩍 넘는 거리다. 경치 좋은 곳을 만나 사진이라도 찍는다면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유람선도 타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운전대에 앉았다.

만년설을 가득 간직한 산봉우리

호수를 따라가던 도로가 산으로 들어선다. 도로변 숲은 갈수록 울창하고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는 높아만 간다. 도로는 잘 포장되어 있지만 2차선 좁은 도로다.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길이다. 얼마쯤 지났을까, 산등성이 아래로 넓은 초원이 나타났다. 도로변 주차장에는 많은 자동차와 관광버스들도 주차해 있다.

자동차를 세우고 관광객들과 하나가 된다. 이른 아침의 찬 공기와 함께 낮은 구름이 근처 산봉우리에 가득 걸려 있다. 만년설이 덮여 있는 산봉우리도 멀리 보인다. 많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바쁘게 움직인다. 중국 젊은이들이 각가지 묘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중년의 한국 관광객들은 떠들썩하게 모여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가는 길에는 볼만한 곳이 수두룩하다. 산책로가 있다는 안내판도 자주 나온다. 거울 호수(Mirror Lake)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 잠시 들려본다. 자그마한 호수가 주위 풍경을 거울과 같이 투명한 물에 간직하고 있다. 안내판에는 호수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물개들이 관광객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즐기고 있다.

구경할 곳이 많지만 시간이 없다. 돌아가는 길에 시간이 있으면 들리기로 하고 길을 재촉한다. 제한된 시간에 모든 것을 둘러보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바쁘게 돌아다니며 많은 곳을 보는 여행도 좋지만, 한곳에 머물며 한가하게 지내는 관광(?)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파른 산길을 만났다. 정상에 오르니 유명한 호머 터널(Homer Tunnel)이 나온다. 1953년에 완공된 길이가 1.2km 되는 터널이다. 단단한 바위와 터널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 때문에 거의 20여 년에 걸쳐 완공했다. 터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뱃길을 이용해서 밀포드 사운드를 갔다고 한다.

바다가 보인다.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했다. 일찍 왔다고 생각했지만 넓은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다. 가까스로 주차하고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터미널로 향한다. 터미널은 사람으로 붐빈다. 유람선 떠나는 시간표를 보니 아직 여유가 있다. 선착장 주위를 천천히 걸어본다.

바다라고 하지만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거대한 강을 연상시킨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높은 산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며 물거품을 일으키고 있다. 관광객을 태운 헬리콥터가 높은 산 주위를 맴돌고 있다. 크고 작은 유람선들도 바쁘게 선착장을 드나들고 있다.

유람선에 올랐다. 제법 큰 유람선이다. 유람선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바다로 천천히 들어간다. 높은 산들이 수직으로 줄 서 있다. 산에서는 크고 작은 폭포가 물을 쏟아내고 있다. 흡사 수많은 실개천을 수직으로 세워 놓은 것 같다. 높은 곳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떨어뜨리는 폭포도 지나친다. 

유람선에서 보는 주위 경치도 빼어나다. 폭포가 있는 수많은 산 사이로 산봉우리가 하얗게 만년설로 덥혀 있는 높은 산이 보인다. 바다로 떨어지는 셀 수 없는 많은 물줄기는 이곳 아니면 볼 수 없을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최고의 관광지로 소문난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수로를 따라 대해가 보이는 곳까지 유람선이 나갔다. 앞에 보이는 큰 바다를 건너면 호주에 도달할 것이다. 유람선은 선체를 돌려 천천히 되돌아간다. 유람선은 한가하게 바위에서 태양을 즐기는 물개들 주위에 잠시 멈춘다. 큰 배가 주위에 있어도 눈 한번 주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물개가 귀엽다.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를 오가는 유람선

유람선에서 경고 방송이 나온다. 조금 후에 큰 폭포를 지나가는데 물에 젖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뱃머리에 있던 나는 몇몇 관광객들과 함께 대충 젖을 각오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배가 속도를 서서히 줄이더니 절벽과 폭포 사이로 들어선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물이 몸을 적신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웃음이 가득한 즐거운 비명이다.  

중간에 심해의 생태계를 볼 수 있는 곳에 들른 후 선착장에 도착했다. 수많은 관광객과 섞여 출구로 향한다. 앞을 보니 작은 매점이 있다. 매점에는 한국어도 쓰여 있고 한국 사람이 근무하고 있다. 

한국 뉴스를 보면 경제가 엉망이라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관광지에 가면 한국 사람으로 항상 북적 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호주로 건너와 살면서 한국 경제가 좋았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경제를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배에서 내려 근처에 있는 협곡(The Chasm)에 들려본다. 주차장이 있는 입구부터 사람이 많다. 단체로 온 한국 사람들도 보인다. 유명한 관광지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숲길을 조금 걸으니 물소리가 웅장하게 들린다. 수많은 세월에 걸쳐 자연이 조각한 거대한 바위들이 일품이다. 엄청난 양의 물이 조각품 사이를 헤집으며 떨어지는 광경을 다리 위에서 내려 본다. 최고의 전시관에서 최고의 작품을 감상한다. 

아름다운 물줄기를 자랑하는 폭포.

왔던 길을 되돌아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 동안 본 폭포가 몇 개가 될까?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았던 폭포보다 더 많은 폭포를 본 것 같다.

아직도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에 든다. 꿈에서 오늘 본 풍경을 다시 만나고 싶다. 깨고 나면 아쉬운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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