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일면 우리 절에서 만드는 두 가지 식품이 있다. 조청과 메주가 그것이다. 태백산 골짝에 혼자 살 때 날씨는 매우 춥고 나무는 많으니 생각해 낸 것이 엿이나 조청을 만드는 일이다. 눈이 쌓여 꼼짝을 못하다 보니 부엌에서 장작불을 때면서 장시간 조청을 고는 일이야 말로 도랑치고 가재잡는 일이다. 잘 익은 늙은 호박 서너 덩어리를 구해서 푸욱 삶아 그 물에 엿기름과 꼬들꼬들한 밥을 5 시간 정도 담가두면 밥이 삭아서 둥둥 뜨게 되며 그 때쯤 꼭 짜서 8 시간 정도 은근하게 졸이면 꿀 정도의 조청이 된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 따뜻한 아랫목에 담요를 덮고 앉아서 몰랑몰랑한 인절미에 꾹꾹 찍어 먹으면 제 맛이 난다. 또 음식물을 만들 때 조금 넣거나 추운 날 밖에서 일을 하다가 출출함을 느낄 때 얼른 방에 들어와서 놋 숫가락으로 두어번 퍼 먹으면 그 맛이 굴뚝 연기처럼 솔솔 올라온다. 꿀은 너무 달아서 금방 질리게 마련인데 호박 조청은 부드럽고 순해서 두 숫가락 먹고 나면 한 술을 더 뜨게 되어 있다. 

그 버릇이 시드니까지 따라와서 겨울 바람이 불게 되면 연례행사처럼 호박이나 도라지, 콩을 삶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선 진일보해서 도라지를 심어서 조청을 만드니 기관지에 좋다며 대환영이다. 올해는 우선 메주부터 만들었다. 오랜 가뭄 끝에 작은 양의 비가 내리는 날에 그 일을 시작했다. 마침 이곳에 큰 가마솥 두개가 있어서 그런 것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요즘엔 무엇이건 매우 편리하게 할 수 있다. 삭이는 것도 큰 전기밥솥에 쉽게 할 수가 있고 다리는 것 역시 이른 저녁에 꼭 짜서 가스불을 적당하게 조절해 놓으면 밤새도록 저절로 잘 익는다. 콩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밤새도록 물렁 물렁하게 잘 삶은 콩을 기계에 찧으니 메주 만들기가 매우 쉽다. 

하나 아쉬움은 이곳에선 볏짚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볏짚엔 바실러스라는 곰팡이균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에 그것으로 메주를 매어 달면 메주가 잘 떠서 된장 맛이 아주 좋다고 하였다. 나일론 끈으로 매어 달아서 인지 정성은 많이 들이는데도 한국에서 만든 것처럼 감칠맛이 나질 않는다. 때문에 어떤 이는 수입을 해서 장을 담가 보지만 그 또한 본토와는 다른 맛을 낸다. 콩과 물, 소금과 공기가 조화로움을 이뤄야 제 맛이 나다 보니 당연한 일이라 치부하면서도 어떨 땐 조금의 허전함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든지 된장, 간장은 늘 챙겨 먹는다. 그만큼 중요한 식품이다 보니 옛 선조들은 된장 담그는 날을 좋은 날로 선택해서 담그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으론 장맛이 좋은 집이 인심도 좋다해서 우리의 마음 씀씀이에 비교할 정도로 된장 맛에 큰 의미를 두었다. 거기에 더해서 된장 오덕을 우리들의 삶의 자세와 연결시킬 정도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 바로 된장과 간장이다. 그 첫번째 덕은 단심(丹心)이다. 일편단심의 준말이다. 된장은 그 어떤 것과 섞어도 그 맛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세나 금력을 따라서 의리를 저버리고 변절하는 마음을 경계하는 뜻이다. 두번째는 항심(恆心)이다. 된장은 상하지 않고 오래도록 보전할 수 있는 식품이다. 소금이 좀 많이 들어야 부패를 예방할 수 있으니 자연과 진리적 참 삶에 귀를 기울이라는 충고적 내용이다. 그 다음이 불심(佛心)이다. 된장은 비린 것이나 기름진 것과는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그런 맛을 없앨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찰 음식에 비유한 뜻으로 맑은 마음으로 살라는 의미다. 네번째는 선심(善心)으로 된장은 매운 맛을 부드럽게 순화시킨다. 오로지 상대방 탓만 하는 악감정을 누그려뜨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된장을 먹으면서 배우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화심(和心)이다. 된장은 어느 음식에 넣어도 조화를 이루며 그 모두를 수용한다. 이렇듯 오덕을 갖춘 된장을 삼시 세끼를 먹으며 살아온 우리 민족이었다. 그땐 그의 덕성을 저절로 닮아서였는지 힘들게 살았어도 인심은 넉넉하였다. 멀리서 온 사돈이 약간의 떡이나 과일을 갖고 오면 울타리 사이로 주고받으며 인정이 오갔다. 그 이후 쌀과 된장의 소비량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인심도 많이 거칠게 변해왔다. 된장 속에 은근하게 배어있는 오덕의 맛을 잃은 탓이리라.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된장 대신에 햄버거나 피자를 찾고 간장보다는 와인을 더 챙겨 먹어서 오장육부가 싱겁고 부패하니 그 속에서 나온 정신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을 고귀하게 생각해서 잘 지키려는 그 뿌리가 탄탄한 나무는 쉽게 바람에 쓰러지지 않지만 현재적 이익과 남의 문화와 정신에 휘둘리는 중심없는 민족은 조그마한 비바람에도 그 가지가 부러지고 심하면 나무 통째로 넘어가고 만다. 이웃 일본과 중국의 문자 표현 하나만 비교해 보자. 일본은 한자와 자국어를 병용해서 쓰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한글만 쓰고 있어서 대등한 것처럼 보이나 조금만 더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건 하늘과 땅 만큼의 큰 차이다. 간판 글자만 한글이지 그 뜻이 영어인지 불어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고급 아파트 일수록 정체불명의 이상한 말들을 갖다 부쳐야 제 값을 받을 수 있다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껍데기만 있고 내용은 빈털터리 우리 국민성과 잘 어울리는 하나의 단면이다. 지금 광화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저마다의 고함 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인간의 오상(五常)과 된장의 오덕(五德)을 함께 잃어버린 군상들이 저마다 정의와 평화를 외치고 있는 난장판의 한국 사회, 싱겁고 부패한 된장을 먹고 정신이 몽롱해진 얼빠진 정치인들을 제거할 그런 묘수는 진정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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