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전에서 찾아보면 ‘마니아’라는 의미는 어떤 한 가지 일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을 말한다. 6월 한 달을 뒤돌아보면 ‘영화마니아’ 라는 말에 걸맞게 별점을 많이 받았거나 리뷰가 좋은 영화들은 대부분 다 본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날에는 극장에 가서 뒷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느긋하게 앉아서 영화 감상을 즐기는 취미생활도 한 몫을 보태주는 셈이다. 또 하나는 집에서 걸어가도 1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에 마음 놓고 편하게 볼 수 있는 근사한 극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늦은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망설이거나 주저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편리함이 나를 영화마니아로 만들어 준다. 

브리즈번 시내중심가에 엘리자베스 사진극장(The Elizabeth Picture Theatre)이라는 50년대의 허름한 활동사진 영화관의 이름처럼 들리는 극장이 작년에 새롭게 오픈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아일랜드인 술집을 극장으로 개조해서 5성급의 멋진 영화관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편안한 좌석, 붉은 카펫, 고풍스런 실내장식과 세련된 조명은 마치 오페라극장에 온 듯 착각하게 만든다. 영화관 입장료는 오히려 기존의 다른 극장들보다 저렴한 편이며 소셜이벤트가 간혹 열리는 고급 사교장소로도 사용되는 곳이다. 

나는 뮤지컬 영화나 로코(로맨스 코미디)를 즐겨보는 편이다. 그 이유는 마음 편케 머릿속을 훌훌 털어내고 영화가 주는 감동으로 서서히 빠져 들 수 있어서 좋다. 가슴을 설레게 하거나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큰소리로 웃게 만드는 영화를 보고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지난달에 보았던 한 영화가 그랬다. 그룹 퀸의 리더였던 프레디 머큐리의 생애를 영화화 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서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영화가 끝났을 때는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그룹 퀸의 시디를 구해서 계속 들었으며 ‘We are the champion’을 흥얼거리며 한동안 그의 음악에 푹 빠져 지냈다.  

프레디 머큐리의 성공 뒤에는 술과 마약, 여자관계, 성의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 같은 어둠이 존재하지만 음악인으로서의 천재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에이즈에 걸려서 전성기의 젊은 나이에 죽은 그가 안쓰럽기는 하지만 스스로 절제하지 못한 무력함이 그의 삶을 일찍 마감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마치 살아있는 프레디 머큐리의 비디오 영상을 보는 것 같았는데 그의 인간적인 깊은 고뇌를 충분히 표현해 내지 못했다는 비평에는 공감이 갔다. 

비슷한 부류의 영화가 이어서 나왔는데 제목이 ‘로켓맨’이다. 아직 살아있는 전설의 가수, 엘튼 존의 전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살아있을 때 엘튼 존과 절친이었다고 한다. 인기정상에 있었던 두 가수의 지난 삶이 비슷했다는 사실은 두 편의 영화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불행했던 가정환경과 사랑받지 못했던 유년시절, 음악에 대한 갈증, 삶의 고뇌, 마약, 알코올 중독, 성정체성의 혼돈을 겪은 상황들은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하지만 엘튼 존은 그의 실책을 깨닫고 재활해서 지금은 남성 파트너와 함께 런던에서 행복한 노년의 삶을 누리고 있다.   

영화 마니아라면 한국영화에 대한 매력 그 또한 놓칠 수가 없다. 최근에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단연코 화제였다. 지난 6월21일 마이어 이벤트 극장에서 기생충 시사회가 있었다. 칼럼을 쓰는 인연으로 초대받아 갔기에 나름 긴장하며 영화에 집중해서 보았다. 

근데 영화를 보는 2시간 11분 동안 가슴이 너무 답답해져서 목에 감고 있던 스카프를 풀어야만 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지?”하는 의문 부호가 뿅뿅 소리를 내며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블랙코미디 영화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정말 편치 않은 마음이 되었다. 리얼한 연기를 하는 배우들도 대단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를 끝까지 지켜보는 관중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우로 홍수가 나서 반 지하 집이 물에 잠겼고 변기에서는 검정물이 불컥불컥 치솟아 오르는데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변기위에 쪼그리고 앉은 기정, 그 소동 속에서 돌덩어리를 찾아서 챙겨 나가는 기우, 영화가 마치 무거운 돌처럼 내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장면 묘사 하나하나가 사람의 어두운 심리를 건드리며 짜증날만큼 세심하게 만든 영화였다. 숨어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여러 갈래로 예측해본다는 것이 버거운 느낌으로 옥죄어 왔다.
  
나는 ‘칼 구스타프 융’의 “꿈의 상징”을 찾아서 해석을 하는 심리학을 여러 해 동안 공부했었다. 영화에서 배우들이 어두운 지하실로 내려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심리학에서 지하실은 보통 그 사람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해석된다. 봉준호 감독은 사회에서 소외된 신분이 낮은 소수계층의 사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살인을 주저하지 않는 백수가족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면도 있었다. 

디즈니에서 제작한 2019년 ‘알라딘’을 보았다. 가이 리치 감독이 연출을 맡은 ‘알라딘’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스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뮤지컬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A Whole New World’를 비롯해서 주옥같은 명곡들을 들으며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영화였다. 라딘 역을 맡은 ‘메나 마수드’와 자스민 공주역의 ‘나오미 스콧’은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은 배우들이다. 무엇보다 지니를 연기한 윌 스미스의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연기력이 돋보였으며, 원숭이 아부와 매직 카펫의 재미있는 관계가 영화를 보는 내내 웃게 만들었다. 보통사람들은 동화와 같은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을 보기를 원한다. 그런 욕구를 잘 짚어서 만든 영화가 바로 ‘알라딘’이라고 생각한다. 칼럼을 쓰는 지금도 청량한 음색의 자스민 공주가 부르는 ‘어 홀 뉴 월드’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영화는 사람들의 숨겨진 내면세계를 표현해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고 바깥으로 분출시키게 만드는 역할을 해준다. 훌쩍 떠나고 싶거나 생활 속에서 엉킨 실타래를 풀고 싶다면 “영화관에 가서 배우들과의 로망에 빠져보세요.”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도 매직 카펫을 타고 하늘로 날아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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