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 병원 가는 횟수가 잦아진다. 지난 5년 동안 GP(일반의), 전문의, 이미징센터(검사소)를 많이 찾아 다녔다. 호주에서 반평생을 살았으니 여기 의료제도의 대강은 안다. 영어로 How the Australian medical system works?다. 그러나 문제를 만나 현장에서의 대처와 사전 준비를 위한 정보와 지식은 그와 다르다. 그건 제도가 아니라 실전 (實戰)이다.
 
한국에서 살았다면 병원장, 원무과장, 과거 개인 병원을 했거나 현재 하고 있는 친구와 친척 한 둘은 있어 밖에서 느긋하게 대화를 하는 게 가능해서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호주는 정보 자유에 따라 많은 정보가 흘러 다닌다지만 그렇다.
 
많은 환자가 대기하는 한인 진료실에서야 물론, 밖에서 한인 의사를 만나 깊이 대화하는 기회도 쉽지 않다. 수술을 하겠다면 어떤 선택이 가능하고, 어떤 비용을 고려해야 하는가는 한 가지 그런 정보의 예다. 그 외에도 같은 서비스인데도 무료인 경우와 아닌 경우, 덜 비싸게 할 수 있는 방법,  밖에서 의사와의 간단한 소통을 하려고 할 때 호주의 관행은 어떤가는 또 다른 사례다. 자기 업무만 해도 벅차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은 그런 총체적 정보를 마련해 놓고 있지 않다고 본다. 

건강정보도 홍수 시대
이런 사항들은 3주 전 리드콤에서 열린 ‘제2회 한인건강엑스포(Korean Health Expo 2019)’가 내건 테마였던 ‘Awareness and Accessibility’ 중 후자, 즉 접근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연이지만, 이 건강엑스포 행사를 주최한 호주한인의사협회의 회장은 작년 후반부터 나의 소화기 관련 전문의인 권창모(Sebastian Kwon)씨다.
 
나는 처음 그와의 면접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특히 보기 드물게 커뮤니티 이슈에 깊은 관심을 갖는 전도유망한 젊은 메디컬 닥터로 보였다. 진료 상담 후에도 거의 한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실은 그 대화와 한인사회에 이런 좋은 단체가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  
 
건강 정보 또한 홍수 시대인 요즘, 병에 대하여 전혀 문맹인 사람은 드물다. 특히 우리 노인 가운데는 이른바 ‘건강 박사’가 많다. 나는 작년에는 CT촬영을 두 번 받았다.   한번 촬영은 엑스레이 300장의 방사선 피폭과 맞먹어 인체 피해가 크다고 해서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미국의 존홉킨스대학병원 의사들이 마련한 자료만 해도 잔글씨로 장장 10여 페이지가 넘는다. 각 병에 대한 증상, 예방과 치료 방법에 대하여도 TV, 인터넷과 유트브를 보면 전문의들이 영어와 한국어로 썼거나 강의하는 자세한 정보가 엄청나게 많다. 
 
없는 것은 현 의료 서비스의 효과적 활용이다. 닥터 권과의 대화에서 내가 이민자 환자로서 경험한 여러 애로를 피력했었다. 이번 행사에 그런 게 반영된 것 같지는 않다. 짧은 준비 기간에 그게 어려웠을 것이다. 아래는 차기 한인건강엑스포 준비를 위한 아이디어와 한인 의사커뮤니티와 환자들의 관심 이슈가 될 만하다고 생각한 몇 가지다. 
 
(1) 나는 작년에 CT촬영을 두 번, 금년에는 MRI 한번을 받았다. 소화기 계통에 나타난 작은 뭔가는 암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 당분간은 안심이다. 고령자 자격 때문인지 CT는 무료였지만 MRI는 아니다. 전문의 편지(referral letter)를 가지고 검사소 네 곳을 가봤다. 세 곳은 $600에서 $700을 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다른 곳에 가니 염색 부분에 불가피한 $250만 내면 된다고 해서 거기서 했다. 발품을 판 보람이 있었던 셈이다.
 
이 차이는 무엇인가? 가입 보험사인 메디뱅크에 물어보니 MRI는 메디케어에 아이템 넘버가 없어 커버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때 아이템 넘버는 무엇인가? 어느 공공병원의 이미징(imaging)센터에 가보니 어떤 부위 MRI 촬영은 돈을 안 받는다고 고시해 놓았다. 대부분 GP 의사들은 이런 사항들을 설명할만큼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하다. 
 
(2) 호주에서 돈 없으면 퍼블릭병원(공공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퍼블릭과 프라이빗(개인병원)간 이용의 차이는 뭣인가? 전자의 경우 대개 오래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있음을 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의료의 질적 차이인데 보통 들리는 말에 의하면 퍼블릭의 수술은 수련의들이 주로 맡아 할 정도로 열악하다는 데 얼마나 사실이거나 신화(myth)일까?   
 
(3) 약을 먹는 나의 혈압은 정상이다. 그러나 부정맥(palpitation)이라는 게 가끔 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몇 시간 맥박이 불규칙적으로 뛸 때는 서 있을 수 없거나 걷지 못하는 증상이다. 심혈관 전문의를 만나 검사와 진료를 여러 번 받았으나 심장에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한다. 급할 때는 앰블런스를 부르라고 한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아직은 그래 본 적이 없다(병원에 실려 가면 적어도 이틀은 못 나온다). 
 
약 2년 전 스트라스필드에서 걷다가 그게 생겼다. 얼마나 심각한가(대개는 혈압과 맥박수 체크다)를 급히 알아보려고 근처 GP병원에 들어가 집사람이 접수자에게 의사를 긴급히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그녀의 대답은 순서대로 해야 한다며 앰블런스를 부르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게 호주의 관행인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어떤 GP병원에서는 급한 환자는 먼저 말해달라고 공고문을 붙여 놓고 있다. 어느 GP클리닉을 가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의료인 간에 토의가 필요하고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4) 또 다른 의구심은 진료실 밖에서의 의사와의 소통이다. 거의 20년 전의 경험인데 가정의(family doctor)로 선정한 모 한인 GP진료실에 전화해서 의사를 바꿔 줄 수 있나 물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것처럼 비서 왈 의사는 진료 중이란다. 시간 나는 대로 회신 해줄 것을 부탁했으나 오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웬만해서 의사에게 전화 시도를 안하고 있다. 
 
나의 경우 전문의 진료 상담은 대개 1년 단위, GP와는 약 처방과 기타 자문을 위해 한 달 단위가 되고 있다.  그런데 상담을 하고 나서 다음 기회까지 기다리지 않고 간단하게 얼른 체크하고 싶을 때는 고민이다. 요즘에는 이메일이나 카카오톡으로 접촉을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잘 될 지 궁금하다. 벌써 1, 2년 전 일이다. 장 내시경 검사를 받고 결과를 듣기 위해 의사를 만났다. 프라이빗이라 그 검사와 면담은 각각 유료다. 면담 때 물었어야 할 한 가지 사항을 빠뜨려 뒤로 전화를 했다. 
 
역시 의사는 상담 중이라는 비서의 대답이었다.  다시 내가 전화하는 것보다는 의사의 형편을 봐서 리턴콜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 후 이메일을 두 번인가를 보낸 다음 오래만에 의사 본인이 아니라 의사를 대신한 비서의 메시지가 왔었다. 이건 치과, 안과 대개 같은 것 같다. 외국인과 한인 모두 변호사들은 편지 끝에 ‘의문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물으세요’(If you have any question, please don’t hesitate to ask.)란 한마디를 빼놓지 않고 붙인다. 분야가 다르긴 해도 의사로부터는 그건 유토피아일까.
 
마지막 한가지와 결론이다. 의료에는 문화적 차원이 크다. 한인 환자들이 한인 의사를 더 찾는 이유가 그것이다. 현지에서 자란 2세와 1.5세 의사와도 같은 한국어를 쓸 수 있어 충분한 소통이 가능하고, 한국식 예우와 매너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 한인 환자들은 그런 혜택을 많이 누리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매너에 대하여는 관행이 각각이다. 
 
내 영어 성명(姓名)은 머큠-라이샤워 방식에 따라 Sam-o Kim이다. 하이픈을 쓰는 이유는 한국의 이름(퍼스트 네임)은 대개 두 한자로 되어 있는 점을 확실히 하고, 성과 명을 구별 못해 가끔 순서를 뒤집어 놓는 서양인들을 위해서다. 
 
퍼스트 네임
 
한국에서 외신에 글을 기고할 때 일관되게 쓴 이름이라 지금도 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처음 한국 정부가 여권에 성명을 Sam O Kim으로 해놓았고, 그 후 일부 호주 기관들은 한 수 떠 O를 중간 이름(한국 성명에 Middle Name은 없다)으로 오인, Sam Kim으로 해놓았다. 나의 메디케어 카드에 올라 있는 성명도 그렇게 되어 있다.        

어쨌든 외국인들이 나를 Sam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건 대체적으 친근함의 호주식 표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한인 의사가 내 차례를 알리느라 진료실 입구에서 '쌤 김'하고 소리 내어 부를 때는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외가 있으나 대부분 한인 진료실의 환자는 아마도 80%가 동족이다. 그리고 진료실 분위기도 호주가 아니다. 한 예로 비서는 고용인인 의사를 거의 예외 없이 원장님, 원장 선생님, 교수님 등으로 부른다.

환자 중에는 나이와 사회 경륜으로 봐 젊은 의사 못지 않는 예우를 받아야 할 사람이 있을 텐데, 왜 한쪽은 원장 선생님이고 다른 한쪽은 아무개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 호칭에 대한 절대적인 원칙은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같은 잣대로 불러 주는 보편타당성이 중요하다.  나는 한인의 경우 직함과 관계 없이 나이가 비슷하거나 위인 사람에게는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를 제안한다. 선생님은 누가 들어도 좋은 우리말이다.

결론이다. 이때까지 써본 여러 의료 정보 필요를 보건엑스포는 물론, 어떤 다른 한 자리에서 한번에 해결할 수는 없겠다. 한인보건협회가 한인사회 안 여러 보건 및 복지 단체들과 제휴하여 2-3년만에 업데이트가 가능한 한인의료요람, 심지어 한인의료백과라고 불릴 만한 풍부한 현장 정보를 담은 책자를 발간하기를 제안해본다.  꿈꾸는 이야기란 핀잔을 듣게 십상이다. 하지만 그간 수백권의 시집, 수필집, 설교집이 나와 있는 이 사회에서 그게 허튼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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