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그림 같은 집. 창문이 인상적이다.

어제는 유명한 관광지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에서 바쁜 하루를 보냈다. 많은 곳을 보려는 욕심이 과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피곤한 아침을 맞는다. 오늘은 숙소가 있는 마나포우리(Manapouri) 주변을 둘러보며 한가한 하루를 보낸다. 내일 페어리(Fairlie)라는 동네로 떠날 준비도 해야 한다. 

숙소를 옮기는 아침이다. 페어리는 내륙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관광객이 찾는 동네는 아니다. 그러나 만년설과 화산으로 유명한 마운트 쿡(Mt. Cook)이라는 관광지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길을 떠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낮은 구릉과 양 떼들이 뉴질랜드에 와 있음을 알려준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경사진 도로를 타고 작은 언덕에 오르니 탄성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 나온다. 호수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흔히 볼 수 있는 호수가 아니다. 물감을 잔뜩 풀어놓은 것 같은 청록색 호수다. 호수가 내려 보이는 공터에 잠시 자동차를 세운다. 물론 카메라부터 챙긴다.

옆에는 숙식이 가능하도록 개조한 허름한 봉고차(밴)가 주차해 있다. 봉고차를 타고 온 서양 청년과 아시안 여성이 다정하게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앳된 끼가 가시지 않은 젊은이다. 나의 젊은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남녀의 여행이다. 함께 여행하면서 생각이 달라 부딪히기도 하겠지만 부딪힘을 통해 성숙한 관계로 발전할 것이다. 결혼하기 전에 배낭여행을 함께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혼율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사진을 찍고 조금 내려오니 큼지막한 주차장이 나온다. 호수를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만든 장소다. 관광버스를 비롯해 많은 자동차가 주차해 있다. 넓은 주차장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관광안내소와 함께 호수를 소개하는 안내관도 따로 설치되어 있다. 자본주의 시대다. 이러한 호수를 관광지로 개발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청록색을 띤 푸카키(Pukaki) 호수를 찾아온 중국인 관광객들

관광객 사이를 서성이며 호수를 사진에 담는다. 주차장에는 관광버스를 타고 온 중국인들이 많다. 주위에 신경 쓰지 않고 떠들썩하게 사진을 찍는다.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도 예전에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 관광객들이 호텔에서 잠옷 바람으로 다녔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중국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다. 

뉴질랜드 특유의 시골 도로, 캠핑카가 많이 보인다.

주차장에 있는 관광안내소 앞에는 동상이 있다. 멋진 뿔을 자랑하는 산악에 사는 영양(Tahr) 동상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라 영양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냥을 많이 해서 멸종위기라고 한다. 당연히 지금은 보호하는 동물이 되었다. 

빙하가 녹아내린 호수가 많은 이곳에는 연어도 서식하고 있다. 안내소 안에서도 연어를 팔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가게는 대체로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한 청록색 호수를 따라 운전하고, 낮은 구릉을 지나기도 하면서 숙소에 도착했다. 작지만 아름다운 동네다. 정원을 잘 꾸민 집이 보인다. 오래된 교회도 있다. 전형적인 뉴질랜드 시골 동네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밤 거미가 드리우는 동네를 걷는다. 호주 시골 동네와 마찬가지로 가게들은 문을 닫았지만, 맥줏집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술집에 들어섰다. 서너 명의 청년이 당구를 치고 있다. 우리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는 중년 남자와 말을 섞는다. 술집 주인이다. 농업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한다고 한다. 선생이 주업인지, 사업이 주업인지 헷갈리는 삶을 즐기는 사람이다.    

천문대에서 바라본 테카포(Tekapo) 마을

낯선 동네에서 맞는 아침이다. 오늘은 숙소에서 가까운 마을, 테카포(Tekapo)를 찾았다. 테카포라는 이름을 가진 큰 호숫가에 있는 마을이다. 오래전에 돌로 건축한 아담한 교회가 있다. 초창기에 정착한 사람들이 지은 교회다. 옥색이 짙게 깔린 호수를 가로지르는 멋진 다리도 있다. 스피드 보트가 물거품을 내며 달리는 모습도 보인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동네다. 한국 사람이 타고 온 관광버스도 보일 정도다. 

이 작은 마을에는 아름다운 호수와 함께 유명한 천문대가 있다. 대낮에 별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어 천문대를 찾았다. 가파른 도로를 따라 천문대가 있는 정상에 도착했다. 싸늘하고 심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은 하나의 그림이다. 호수와 동네가 발아래 펼쳐진다. 

정상에 있는 산책로를 걸으며 풍경에 빠져든다. 멀리 내려 보이는 동네 모습이 인상적이다. 장난감처럼 작은 자동차들이 움직인다. 작은 집들이 숲에 둘러싸여 있다. 청록색을 띤 호수가 동네 깊숙이 들어가 앉아 있다. 조금 전 동네를 거닐며 보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동화 속에 나오는 동네를 연상케 한다.  

삶도 가끔 거리를 두고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와 다른 삶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은 더 사랑스러운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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