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날의 타임지를 받았다. 표지의 주인공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제목하여 “나의 온 인생은 하나의 베팅(bet)이다.” 그의 원대한 베팅은 이뤄졌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권력에 목마르다. 재선 승리의 베팅을 위하여 이미 6월 12일에 선거캠프가 세웠고,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그런 이유로 만났을 것이다. 지난 1일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찍은 사진 두 장이 신문의 1면을 채웠다. 자세히 봤다. 두 사람의 얼굴은 매우 달랐다. 정확하게는 눈이 달랐다. 트럼프의 얼굴은 포커 페이스다. 그런데 눈은 매의 눈이다. 레이저 광선을 뿜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승부사의 눈이었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눈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진 다 그랬다. 난 생각했다. “이 게임은 끝났다!” 누가 승자가 될지는 확연했다. 물론 깊이 숨겨둔 패를 까봐야 알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봤다. 기대한 만큼 재미있었다. 냄새나는 반 지하에서 사는 인생. 그리고 남들이 모르고, 자신들도 모르는 깊은 지하실을 숨겨 놓고 사는 상류층 가정. 이 둘이 상종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가는 가를 보여준다. 결국은 사방에 피가 튀긴다. 여러 사람의 피가. 그 정도는 해 줘야 칸(Cannes)이 움직인다. 칸은 이 시대를 대변한다. 검은 턱시도와 명품 드레스로 감싼 이 시대 최고의 명사들 속에는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기 피를 뛰게 하기 위해서 남의 피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피는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다.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고귀하게 다뤄줘야 한다. 그런데 그 생명의 피를 우습게 보는 자들이 있다. 자기의 욕망을 채우고, 인생을 도박판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눈은 비정하다. 

영화를 끝내면서 알게 되었다. 나 역시 기생충이라는 사실을.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누군에겐가 기생하며 살았다. 부모에게, 친구에게, 동료들에게, 그리고 아내와 자녀들에게 기생충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돌봄을 받았고, 해 주는 밥 먹었고, 슬플 때 안아 주었던 숙주(宿主/ host)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숙주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 분의 피를 통해 나는 살아났다. 오늘도 여전히 그 분의 고귀한 피를 빨아 먹으며, 그 안에서 기생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 안에 사는 기생충이다. 기생충이 뭔 말을 많이 하겠는가? 조용히 살 뿐이다. 온 세상에 이렇게 외치면서. ‘나는 기생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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