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는 일본을 가본 적도 없다. 런던에서 1900년 ‘나비부인(Madame Butterfly)’이란 연극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작곡한 것이다. 

나비부인은 어떻게 일본 색채를 그렇게 음악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지 나는 푸치니에게 놀란다. 푸치니는 일본 음악이라고는 가부키 공연을 한번 본 것뿐이었다. 일본인들은 100년이 지났는데도 푸치니 만큼 자신들의 모습을 음악으로 이렇게 큰 규모로 아름답게 표현을 못하고 있다. 

이야기는 일본의 참담했던 1900년대 초 나가사키 항구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제국주의에 의해 짓밟히는 일본 여인의 비극을 주제로 하는 오페라이다. 

핑커튼이라는 미국 해군이 15살이 된 초초상(Cio-Cio-San)이란 게이샤와 결혼식까지 하고 데리고 놀다가 버리는데 일본여인은 진정으로 온 맘과 몸을 바쳐서 핑커튼을 사랑한다. 핑커튼이 떠나간 후 그의 아들을 낳아 기르며 기다리는데 결국은 미국 여자와 결혼해서 나타나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자 나비부인 초초상은 자살한다는 비극 오페라이다. 

이 오페라는 동양여자들의 일부종사, 남성 우월주의에 순응하는 문화가 미화 되면서 동양여자들에 대한 아련한 신비와 성적 환상을 만들어왔다. 

나비부인에 나타난 미국 군인은  전리품처럼 일본여성을 농락하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비하되고, 일본의 처참한 꼴이 다 드러나는 오페라로 회자된다.

만약 우리나라가 이런 식으로 오페라에서 다루어지면 국민들과 정부가 어떻게 반응을 보였을까? 당장 그 오페라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데모를 하고 난리를 쳤을까? 

일본은 행여 이런 점들 때문에 여성단체가 들고 나오든지 공연의 횟수가 줄어들까봐 전전긍긍하며 오페라에서.표현되는 초초상의 매혹적인 면을 더욱 부각시킨다. 푸치니가 일본을 음악으로 포착하여 세계를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 전역에서 독립기념 폭죽이 터지고 있을 7월 4일 저녁에 나비 부인을 보러 갔다. 시드니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나비부인은 정통 연출이 아닌 디지털 영상 처리를 주로 하는 현대판이었다. 

한국계 성악가 마리아나 홍이 이날 주인공 나비부인이었다. 푸치니의 백미는 목소리의 미학이고 특히 고음을 시원하게 지르는 발성의 미학이다. 그런데 비교적 목소리가 가느다란 소프라노가 고음마다 안 지르던지 숨이 짧아 그냥 끊어져버리던지 하여 아주 답답했다. 

첫 장면에서도 초초상이 결혼식 하러가면서 아련하게 올리는 고음을 한 옥타 낮게 처리하더니 제일 유명한 아리아 어떤 개인 날(Un bel di) 마지막 장면 야스페토(I’aspetto!)에 숨이 모자라 너무 짧게 끝내는 바람에 듣는 청중에게 전혀 카타르시스를 못 주었다. 

푸치니 아리아는 중간에 점점 클라이막스로 가면서 뒷부분을 시원스럽게 질러대는 맛이 일미인데 여기선 그것도 전혀 기대에 못 미쳤다. 북한 김정은과 비슷하게 생긴 핑커튼 역의 테너는 목소리는 릴리코지만 발성도 괜찮고 아리아도 잘 처리했다. 조역 미국 영사역 바리톤은 소리가 허해서 답답했다. 

표 한장에 3백 달러를 주고 갔던 나의 기대에 오페라 나비부인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오페라 극장 음식점에 갔는데 내부장식도 좋고 서비스도 좋았으나  특별요리는 맛이 없어서 뒷맛이 답답했다고나 할까? 비싼 표를 사서 간 오페라도 뒤끝이 찝찝했다. 누가 나에게 카라 손(Karah Son)이 하는 건 다르니까 가 보라고 한다. 이 오페라는 8월 중순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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