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쓴 것인지, 원전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지만 ‘나이 많은 아이’라는 시가 불현듯 떠오른다.

'어른은 없다, 단지 아이로써 나이를 한살씩 먹을 뿐,
우리는 너 나 없이 모두 아이들이다. 
수염난 아이 , 주름 있는 아이, 허리 굽은 아이,
오직 아이들이 어른으로, 노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어른은 없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와서 사라진 것이 아닐까? 가부장 가족제도가 박물관에 입관(入棺)되고 핵가족이 등장함으로써 사회 제도와 가정에 지각 변동이 일어난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과거 조선 시대에는 유교 경전에 있는 <삼종지도(三從之道)>가 조선 여인들의 가정 규범이었다. 첫째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 말을, 둘째 결혼해서는 남편의 말을, 셋째 나이 들어서는 아들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 현대에 와서는 이 삼종지도의 주어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어머니로, 남편이 아내로, 아들이 딸로 탈바꿈되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 하는 이가 드물다. 첫째 어릴 때 엄마 말을 잘 들어야 대학가고, 
둘째 결혼해서는 아내에게 통장을 맡겨야 재산이 늘어난다. 셋째 나이 들어서 딸과 친해야 외롭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고려시대 학자 우 탁의 ‘탄로가(嘆老歌)’가 무릎을 치게 한다.

"한손에 막대 잡고 또 한손에 가시 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호주 동포사회에서는 실버족이라 통칭하는 노인들은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retire)하여 호주 정부가 보장하는 노인 백수가 되어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인인 S씨는 팔십 고령에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 그분은 고국을 떠나 이민 올 때 이미 리타이어(retire)를 했는데 은퇴라는 단어는 자신의 사전에는 없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은퇴는 하늘나라에 가는 날이라는 말과 함께...

일제 강점기인 1927년 아동문학가 윤석중은 ‘반달’이라는 동요를 작사하여 현재명 작곡으로 조선에 널리 퍼졌다.

고국에서 국민학교를 다녔던 대부분의 동포들은  ‘반달’ 동요를 애창했을 것이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
치마끈에 달랑 달랑 채워 줬으면"

밤에 제 역할을 하는 달이, 그것도 반달이 태양이 빛나는 대낮에 떠 있으니, 그나마 보일듯 말듯 희미하게.이는 일제에 점령당한 조선 민족의 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어린이들에게 조국이 따로 있다는 진실을 알리기 위한 애국 동요로 필자는 해석한다.

그 당시의 동요에 나오는 낮에 나온 반달이 현대 노인의 위상을 표현하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하늘을 쳐다보아야 겨우 보이는 낮에 나온 반달이 달밤에 등장하려면 노인들이 어른의 갑옷을 벗고 어린이가 되어보면 어떨까?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암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는 일찍이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다. 성경에도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거기에 들어가지 못 할 것(마가복음)이라고 적시해 놓았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집에서 하는 말을 바깥에서 말한다. 어린이는 부모의 행위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쓸데없이 노력하고, 화내고, 아무거나 욕심을 내면서 사는 것을 보면 어리석은 어린이와 같기도 하다.
노인들의 함정은 주제 파악과 분수지키는 데에 서툴다. 인생의 연극 무대에서 내려와 배우에서 관객으로 역할이 변경되었는데도 무대 위로 올라와 연극에 끼어든다. 

완전히 가라앉은 배는 항해하는 다른 선박에 장애가 되지 않지만 절반쯤 가라앉은 배는 다른 배의 항해에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리고 싶다.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최근에 필자가 경험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J 교회에 출석한 어느 날  <프리스쿨>에 다니는 S군이 귀여워서 "야 임마, 안녕?"하며 머리를 쓰다듬자 S군이 갑자기 절을 하면서 악수를 요청하며 "저는 야 임마가 아니라 아무개라고 합니다"라고 이름을 말하며 정식으로 인사를 해서 몹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인간의 두뇌구조는 6세 이전에 완성된다는 탈무드의 진단이 맞나보다. 집안에 애들이 없는 것은 지구에 태양이 없는 것과 같다. (A house having no child is like the earth having no sun.) 영국 속담을 보니 어린이의 가치는 동서양이 차이가 없다.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