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군대엘 가면 ‘고문관’이라 불리는 인물들이 있게 마련이다. 군대에서 일사 분란하게 명령체계에 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왠지 못 알아듣고 어딘가 어설퍼서 늘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군대에서는 흔히 ‘고문관’ 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한국이 일제 후 미국 군정기와 전쟁을 거치며 한국 군대에 주둔하던 미국인 군사 고문관들이 파견되었는데, 이 때 그들이 한국 말과 실정에 서툴다 보니 어리숙하게 보이는 것을 희화한 것에 기인한다고 한다. 그들이 우리 언어에 익숙하지 못하니 얏잡아 본 조롱의 단어인 셈이다. 이렇게 쓰여진 ‘고문관’은 지금도 군대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 곳곳에서, 심지어 순진 무구한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도 집단 왕따로 발전된 학교 폭력의 깊은 고민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대의 왕따는 사회 부적응자나 따돌림을 받고 고립된 사고 속에 살아가는 언어 뿐만 아니라  실제 폭력으로 상처입은 많은 젊은 세대를  배출시켰다. 

며칠 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한 달 전에 시집 온 30살의 젊은 이민자가 30대 중반의 한국 남편에게 말을 못알아 듣는다며 무차별 하게 두둘겨 맞고 그 남편이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크게 보도됐다. 그는 주먹으로,손바닥으로 얼굴을 가차없이 때리고, 옆구리를 발로차고  손에 잡히는 병으로 닥치는 대로 머리건 복부를 상관없이 두 세시간 폭행을 퍼 부었다.  갈비뼈가 4개나 부러지고 두살배기 아들이 공포에 떨며 부르짖는 모습이 생생히 화면에 잡히고, 매일 매로 시달리던 아내가 몰래 동영상을 찍어 SNS에 올리며 경찰에 신고되어 겨우 매질을 멈추게 되었다. 그의 폭력의 이유는 “한국말이 어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건으로 ‘박항서’ 축구 감독이 베트남에서 영웅 대접을 받으며 한국의 위상을 올려 놓았던 것과는 너무 나도 다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혼하고 베트남으로 돌아와라’ ‘ 한국 사람들이 모두 박항서 감독 같은게 아니다’ .. 우리 네티즌들도 ‘저런 몰상식한 사람이 있다니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다’, ‘ 전세계를 향해 나라 망신시킨 매국노다’ ‘영상을 보고 눈물이 났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등의 애절함을 쏟아냈다.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굼뜬 행동과 말을 어눌하게 하는 것에 분노한 매질은 아무리 변호를 하려해도 감정과 이성이 설득 되지 않는다. 단지 ‘고문관’ 같은 행동과 말이 극악한 남편의  잔인한 폭행의 이유가 되었다.  

호주에서 살아가는 영어 잘 하지 못하는 이민 1세는 그런 면에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다분히 ‘고문관’으로 보이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도 그다지 홀대를 받거나 매를 맞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키작고 검은 머리칼에 변변히 영어를 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해도, 대부분 기다려주고, 면전에서 심한 짜증을 내는 행패를 부리지는 않는다. 정부 (Social Security)에서 돈을 줘가며 영어를 가르치고 그들의 언어와 다른 문화에도 그다지 까탈스럽게 조소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 비하면 우리는 호주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면서 이 나라를 위해서 참으로 인색할 정도로 우리끼리 살아가고 있다는 부끄러운 자성이 슬며시 깨달아진다. 

성경에도 ‘고문관’ 같은 인물이 있었다. 그는 선지자였는데도 하나님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원수의 나라에 가서 재앙을 피하도록 전하라고 하니까 배를 비싼 값에 빌려서 먼곳으로 도망가다가 큰 물고기 속에 삼켜들어가자 간신히 잘못했다고 빌고서야 그 나라에가서 억지로 축복을 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나라가 재앙을 피하고 축복을 누리게 되자 하나님에게 속이 상하니까 다시, 차라리 자기를 죽이라고 땡깡을 부린 인물이다. 말 잘듣고 순종하는 여느 선지자들에 비해 그는 ‘고문관’ 선지자 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신은 그를 용납하고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성경은  일부러라도 보여주는 신의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원수이지만 손 때 뭍은 신의 창조물을 축복하려는 창조주의 마음을 ‘고문관 선지자’는 알아 들을 수 없었고 그러기도  싫었다. 

우리는 모든 말과 행동이 어눌한 ‘고문관’들 같다. 우린 실제 말이 서툴고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이 땅의 이민자들이다. 한동대의 초대 총장인 김영길 박사가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소식이 전해 지며 그가 남긴 말이 회자 되었다.  그는 늘 “공부해서 남 주자”는 말을 책으로 삶으로 남겼다. 미국 NASA에서 괄목할 연구 성과를 낸 과학자이며 뛰어난 학자 일뿐 아니라 글로벌 시대의 리더로 한국의 미래의 리더들을 배출하는 명문 대학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나만 출세하고 잘 되고자 하는 이민세대에게 마치 다른 경지의 진리인듯 우리의  생각을 멈칫 하게  한다.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악이 바친 남편의 잔혹한 폭행에는 어눌한 이민자 아내에 대한 배려를 찾을 수 없다. 호주의 이기심 가득한 한인 이민자들에게도 국민 이라는 이유로 베푸는 나라의 자상한 배려는 이제 남을 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반성을 촉구한다. 

악인의 형통도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게된 철없는  ‘고문관 선지자’의 땡깡어린 억지 짓을 통해서도  어눌한 ‘고문관’으로 가득한 세상은 오늘도 창조주의 자비로운 축복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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