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서의 국제문학심포지엄을 마치고.

앞으로 1년 예정으로 단국대학교 박덕규 교수와 중앙대학교 이승하 교수가 교대로 재외한인문학의 면면을 살펴보는 글을 연재할 것입니다. 연재를 시작하는 이승하 교수는 시를 중심으로, 박덕규 교수는 소설과 수필을 중심으로 쓸 예정입니다. 2017~2019년 한호일보 주최 문예창작교실에서 특강을 했던 두 분 교수의 연재에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 드립니다.

한국문예창작학회에서는 2019년 하계 국제문학 심포지엄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가졌다. 해외에 사는 교민을 찾아가 이민생활의 애환을 들어보고 그들의 창작품을 살펴보고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기획의 결과였다. 미국의 LA, 호주 시드니, 미국 알래스카에 이어 네 번째 교민들과의 만남이었는데 그간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2012년 최영식 목사가 한국어 문학반을 모집해 문학 공부와 창작 실기를 병행하면서 오스트리아에 창작의 열기가 움트기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강의가 이루어졌고 최 목사 귀국 이후 백충관 목사가 바통을 건네받아 7년째 해오고 있다. 

그런데 두 분은 아마추어 문사로서 강의의 한계를 느끼자 박덕규 교수를 초청했고 박 교수는 작년 여름과 겨울방학에 가서 각각 4일, 6일씩 특강을 했다. 

  작은 결실이 이루어졌다. 황병진 씨가 주축이 되어 ‘오스트리아한인문우회’가 만들어졌고 그녀의 주선으로 3권의 동인지를 냈다. 계간『한계레 문학』창간호 발간 이전에 SNS를 통한 작품공모가 있자 홍진순 씨가 투고, 당선이 되었다. 심사평의 일부를 보자.

동인지 제2집과 3집의 표지. 한국의 출판사에 맡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제작한다.

홍진순 씨는 독일로 취업이민을 떠나 오스트리아에 정착한 지 이제 40년이 다 되어 간다. 독일인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니 자연히 시어머니는 벽안의 독일인이다. 나이 서른 살 차이가 나는 시어머니와 화자가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 있다. 시어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화자는 한국전쟁을 겪었다. 두 나라가 겪은 당시의 전쟁 상황이 회상조의 글 속에 잘 묘사되고 있다. 시어머니는 전쟁의 공포와 전쟁이 가져 다준 가난을 잘 알고 있기에 보스니아 난민을 헌신적으로 도와준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괴물은 사람을 늙게 하고 병들게 한다. 검은 머리카락의 며느리는 금발머리를 두 갈래로 땋고서 지나가면 나치 군인들이 “하이, 도이치 소녀!”하며 팔을 흔들었다는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두 나라의 해묵은 상처를 들춰낸다. 한국전쟁 시 딸을 버렸던 피난길, 나치의 집권을 열렬히 환영했던 독일인, 유대인 학살을 독일인 다수가 몰랐다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 것들이다. 무려 75년 전 유럽과 70년 전 한반도의 일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전쟁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이 수준 높은 수필은 󰡔한겨레문학󰡕의 제1회 당선작으로 삼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독일-오스트리아-한국이 이렇게 연결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충무로 카페에서의 시상식장에 홍진순 씨가 직접 와서 상을 받았고 최영식 목사의 감격어린 축사가 있었다. 

  7월 1일, 비엔나에서의 국제문학심포지엄에서는 비엔나대학 국제어학원 교수인 윤선영 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윤 교수는 오스트리아에서 행해지고 있는 한국학과 한국어 교육의 실태를 알려주었다. 한류바람이 유럽 전역에 불었다고 하던데 오스트리아를 빗겨가지 않아서 반갑고 놀라웠다. 제4회 한국어말하기대회에 참석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교 한 학생의 원고를 소개해주었다. 아래는 그 일부.

  (상략) 오늘 저는 ‘위안부’란 용어와 그 의미에 대해 제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어로 번역해서 쓸 때는 ‘comfort women’으로 쓰는데 사실 한국어의 ‘위안’이라는 말도 영어의 ‘comfort’란 말도 참 좋은 말입니다. 위안이란 말에는 강제성이 없고 매우 개인적이며 그다지 부정적인 이미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쓰기 시작한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표현을 부드럽게 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왜 이 말을 피해자인 한국에서 쓰고 있는지 저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를 위안해 주었습니까? (중략) 한국여성이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다는 것이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불편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진실은 불편합니다. 그 불편한 마음을 이겨야만 진실을 밝혀낼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그 진실을 알릴 수 있습니다. (하략)

이런 글이 대한민국의 대학생이 아니라 한국과 한글을 공부한 슬로베니아의 대학생이 쓰고 발표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전쟁은 아무도 위안해주지 않으며 아무도 위안받지 못합니다.”로 웅변이 끝났을 때 한국인이라면 자책감을 아프게 느꼈을 것이다. 그곳에 간 문창학회의 모든 회원들이 고개를 떨어뜨렸듯이. 

동인지의 제목이 아주 겸손하게도 ‘도나우 담소’였다. 교민들과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눠보았다. 홍진순 씨 같은 경우도 있었고 유학을 갔다가 정착한 경우도 있었다. 남편의 사업 동행차 왔다가, 공관원의 아내로 왔다가, 유학생 뒷바라지하다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교민회관도 만들었다. 교민회관 벽에는 기부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한국문예창작학회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고국을 떠난 지 다들 15년, 20년이 넘어 잊어버린 모국어를 되살려내는 것이 문제였다. 독일어로 먼저 문장을 만들고 그것을 한글로 번역하는 식이었다. 낱말도 안 쓰니 까먹게 되는 것이었다. 똘똘 뭉쳐 공부하며 글을 썼다. 

머나먼 이국 땅 하늘 아래
오늘도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
정처 없이 걷고 있는 나에게
찾아온 손님
하얀 눈송이 홀씨 꽃!

고향생각 가져다주고
두고 온 딸 생각나게 하는
반갑고도 야속하기만 한
5월에 찾아온 손님
어깨 위에 내려앉아 쉬고 있네

길 가장자리 소복이 쌓여
정말 눈인 양 살포시 웃고 있지만
너도 나처럼 이방인이라네
나는 너와 친구 되어
5월에 내리는 눈이 되고 싶다

딸아이가 있는 마당으로
지난봄에 가꿔놓은 화단으로
가족들 둘러앉은 평상 위로
웃음 지으며 살며시 다가가고 싶네
너와 같이 하얀 눈 되어
-「5월에 내리는 눈」 전문  

오스트리아에는 눈이 잘 내리지 않는가. 5월에 비엔나 거리에 날리는 하얀 꽃가루를 보고 신경옥 씨는 한국의 눈 내리는 광경을 떠올렸다. 그곳의 그 어떤 사물이 비슷한 게 있으면 고국에서의 나날을 떠올리게 한다. 

신경옥 씨의 경우 딸이 한국에 있다고 한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 그리움이 펜을 들게 하였다.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우리 교민의 수가 750만이다. 그들 중 글을 쓰는 이가 적지 않다. 모국어로 쓴 그들 작품의 수준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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