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섬과 북섬을 오가는 여객선이 정박한 작은 동네, 픽톤(Picton)

어젯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에 새벽에 눈이 떠진다. 밖에는 아직도 비가 오락가락 내리고 있다. 우중충하고 추운 날씨다. 무료로 지낸 캠핑장에서 아침을 먹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설이 너무 빈약하다. 

떠나자. 북섬으로 가는 여객선이 있는 항구 도시 픽톤(Picton)을 향해 캠핑장을 나선다. 세수와 양치질도 하지 않았다. 새벽이지만 도로에는 캠핑카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목적지는 서두를 필요가 없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천천히 주위를 즐기며 운전한다.

가는 길이 멋지다. 도로 왼쪽은 가파른 산등성이가 가로막고 있다. 오른쪽에서는 태평양의 거친 파도가 아우성치고 있다. 흔히 보기 어려운 풍경에 심취하며 해안도로를 운전한다. 경치가 좋아서일까, 중간에 전망대도 심심치 않게 있다. 이른 아침, 붐비지 않는 전망대에서 여유를 가지며 천천히 목적지로 향한다. 

목재 산업이 활발한 뉴질랜드. 목재를 가득 실은 화물선이 정박해 있다.

해안 도로를 벗어나면서 잠시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보인다. 여행객을 위한 수도와 식탁도 있다. 늦었지만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장소다. 가스버너를 켜고 프라이팬을 달구어 빵을 데운다. 커피도 한 잔 끓여 마신다. 양치질까지 하고 나니 이제야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다.   

픽톤에서 가까운 말보(Malboh)라는 제법 큰 동네에 도착했다. 잠시 쉴 겸 관광안내소에 들른다. 시설이 좋은 규모가 큰 관광안내소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것 같다. 동네를 소개하는 관광안내책자를 비롯해 근처 가볼만한 곳을 홍보하는 사진과 포스터도 많다. 그러나 북섬으로 떠나는 여객선을 예약했기에 이곳에서의 관광은 포기한다.  

픽톤(Picton)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 항구도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말보를 뒤로하고 다시 시골길로 접어든다. 지긋지긋하게 내리던 빗줄기는 점점 가늘어지더니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푸른 하늘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픽톤에 도착했다. 일찍 떠났기에 아직 배를 타기에는 이르다. 주위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

작은 산등성이를 굽이굽이 올라가니 동네와 항구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우리가 타고 갈 여객선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회사의 여객선은 사람을 태우고 있다. 많은 자동차가 줄지어 있다. 큰 여객선이다. 이러한 여객선이 자주 다니는 것으로 보아 북섬과 남섬을 오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산등성이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가니 또 다른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화물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가 보인다. 넓은 선착장은 목재로 가득하다. 이렇게 많은 목재를 한 곳에서 본 기억이 없다. 정박한 배에는 목재가 가득 실려 있다. 뉴질랜드에 목재 산업이 활발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는 풍경이다. 

항구가 있는 동네 중심가에 들렸다. 중심가 도로에는 각종 선물 가게와 식당 그리고 카페가 즐비하다. 카페에 들려 간단한 점심을 주문했다. 그러나 손님이 많아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음식이 나온다. 수많은 요트와 여객선이 정박한 바다를 보며 관광객 틈에서 식사한다.

선상에서 한가하게 풍경을 즐기는 관광객

조금 일찍 여객선을 타는 곳으로 갔다. 일찍 왔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많은 자동차가 줄지어 있다. 뒤에서도 계속 자동차가 들어온다. 여행객이 빌린 캠핑차와 승용차가 대부분이다. 뉴질랜드로 여행을 떠나기 전 이웃이 해주던 충고가 생각난다. 뉴질랜드에는 외국에서 온 관광객이 많이 운전하기 때문에 방어 운전을 해야 한다고 한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배에 올랐다. 갑판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으로 붐빈다. 영어가 많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외국에서 온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좁은 해로를 따라 거대한 배는 서서히 움직인다. 외떨어진 산속 바닷가에 집이 한두 채씩 보인다. 이러한 오지에 떨어져 사는 사람은 개성이 강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배가 대양으로 나가면서 파도가 심해진다. 뱃멀미에 도움이 된다면 얼음물과 혹시 토하면 받을 수 있는 종이봉투를 직원들이 나누어 준다. 북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왼쪽으로 보이는 황량한 언덕에는 20여 개의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있다. 웰링턴(Wellington)이 가까워지면서 산등성이에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높은 산 정상에 우뚝 솟은 송신탑도 보인다. 산으로 둘러싸인 해안 도시다. 

캠핑카로 즐비한 여객선. 여객선에는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여객선을 빠져나왔다. 일단 예약한 캠핑장이 있는 로우어 허트(Lower Hutt)라는 동네로 향한다. 웰링턴은 도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뉴질랜드의 수도다. 퇴근 시간이라 4차선 고속도로는 자동차가 넘쳐난다. 그러나 정체될 정도는 아니다. 도로는 바다를 끼고 계속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멋지다.

캠핑장에 도착했다. ‘Top 10'이라는 그룹에 속한 캠핑장이다. 가격이 비싼 고급 캠핑장이다. 하루 지내는데 50불씩 받는다. 그러나 무료 캠핑장과 달리 부엌을 비롯해 샤워장 시설이 완벽하게 구비된 장소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10% 할인해 준다고 한다. 그리고 호주의 캠핑장 그룹 ’Big 4'에서도 쓸 수 있다고 한다. 회원으로 가입했다. 호주에 돌아가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은 시설이 좋은 캠핑장에서 지내는 편안한 여행이 될 것이다. 사실, 고생되더라도 무료 캠핑장에서 지내며 여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젯밤 단 한 번 고생한 후 마음이 바뀌었다.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보아도 생각대로 이루어진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상황에 따라 결정하며 살다 보니 지금의 삶이 된 것이다. 앞으로의 삶도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흘러갈 것이다. 편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음미하며 지내는 삶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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