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남반부에 위치한 호주의 7월은 따사로운 햇살이 그리운 겨울이다. 
올림픽 종목에 리듬 체조라는 종목이 있어 요정처럼 깜찍한 소녀들이 음악에 맞추어 현란한 율동으로 묘기를 뽐내 인기를 모은다. 우리의 일상도 나름의 리듬에 맞추어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비록 화려한 연기는 아니지만 새벽, 오전, 오후, 저녁을 맞이하면서 하루의 생로병사 리듬에 따라 삶을 이어간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앉아 있을 때 앉아 있고, 일어설 때 일어서고, 걸어갈 때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과거는 따르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간 것은 이미 버려진 것이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결국 ‘지금’, ‘여기’를 열심히 살면 된다.

과거는 ‘부도수표’이고 미래는 ‘약속어음’이며 현재는 ‘현찰’이라고 강조하던 친지인 서민금고 S사장의 지적에 공감이 간다.
왜냐하면 부도수표는 무용지물이고 약속어음은 부도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참으로 복잡다단한 만물의 영장이다.
인간은 이성적인가하면 본능적이고 본능적이면서 감성적이고
감성적이면서 영성적이고 영성적인가하면 이기적이다.

성경 창세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아 하나님이 남자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 갈빗대로 여자 하와를 창조 하셨다고 한다.

여성의 지위가 남성의 부속물처럼 여겨져 중세 유럽의 ‘암흑시대 
(Dark Age)‘에 여성이 수난을 당한 역사가 있다.

남자는 흙으로 빚었으니 '토기(土器)'이고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 즉 뼈로 만들었으니  '본 차이나(bone china)'이므로 여자의 가치가 남자를 압도한다고 주장하던 친구 Y군의 농담아닌 진담(?)이 생각난다.

그래서 부부는 동심일체라고 선현들이 정의를 내렸나 보다.
일부일처의 습성을 가진 동물은 무작위로 짝짓기하는 종보다 뇌가 큰데 그 이유는 배우자의 생각에 맞추고 서로 행동을 조화시키는데 그 만큼 힘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의 뇌가 이렇게 커 졌나 보다.

일상 생활에서 부부의 싸움을 흔히 ‘칼로 물 베기’라고 규정한다.
물을 칼로 벨 수 없지만 얼마나 자주 물 베는 행위를 했으면 이런 속담이 내려 왔을까?

부부는 마주 보는 것 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부 말싸움은 생활에 녹이 쓴 머리를 씻어 내는 과정임을 인식 할 필요가 있다.

부부 싸움을 하되 유능한 프로레슬러처럼 행동해야 탈이 안 난다.
아마추어 레슬러를 보면 양쪽 귀가 비틀려 있는 경우가 많다. 지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부상을 입기 십상이다.
그러나 프로레슬러는 상대방 손이 자기 귀에 닿자마자 넘어가주니 멀쩡하듯이 부부도 서로 져 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진리를 터득하기를 권장한다.

특히 아내는 잔소리를 해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니 남편은 돈 들이지 않고 보약을 주는 셈이니 오히려 아내에게 잔소리를 부탁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아내의 건강이 나빠지면 잔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까..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였던 스티브 호킹은 인류의 미래를 전망하면서 인공지능(AI)의 위험성을 강력히 경고했다. AI는 인류 문명사에 최악의 사건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류가 AI를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신 마비 상태로 천체 물리학을 연구해 온 불세출의 과학자인 호킹은 “인간은 항상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당신이 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격려 했다.

해외를 여행 할 때, 시간차이가 심하면 생체 리듬이 엉켜 몽롱한 
정신으로 생활하게 된다. 삶의 리듬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책의 작가임을 자각하자.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다지 않는가? 공자님도 못 읽는 글자가 있고 부처님도 못 외는 염불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연습하고 힘들게 사는 이웃을 도우면서 삶의 리듬을 설계하자.

인생과 사업의 남태평양에서 당당하게 헤엄치자. 
잔잔한 바다는 노련한 사공을 만들지 않는다.

내가 만들지 않는 인생은 없다.
다만 행복한 이는 행복하기를, 불행한 이는 불행하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All history is contempo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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