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레옹의 카페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남쪽 생 장 피에 드 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쪽에 위치한 성 야고보의 시신이 묻혀있는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km길 이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를 제외하면 비유럽인으로는 한국 순례자가 가장 많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수필로, 시로 글을 써 온 시드니 동포 박경과 백경이 다른 일행 2명과 함께 다녀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수 많은 책과 정보들이 있지만 시드니에 사는 두 여인의 눈을 통해 드러날 산티아고 순례길은 기존의 수 많은 산티아고 이야기들과는 '다른 색깔로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교대로 쓰는 '박경과 백경의 산티아고 순례길' 을  3월 8일부터 11월까지 격주로 연재한다. 백경은 여행길을 사진 대신 그림으로 기록했고 그 일부를 백경의 글과 함께 싣는다(편집자 주).

새벽부터 굵은 비가 내린다. 유리창에 매달린 빗방울을 보자 남편은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 올리며 좀 더 잔다고 한다. 나 혼자 나가라는 뜻이다. 스페인의 아름다운 도시 레옹(Leon)을  안보고 잠을 자다니…. 새벽잠이 없는 나와 새벽잠이 많은 그와의 30년이다. 처음에는 늦게 일어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수면 스타일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20년이라는 천문학적인 시간이 걸렸다. 그 20년 동안 받은 실망과 좌절이 지금은 굳은 살이 되었지만 비가 오는 날이나 날씨가 꾸믈대면 아직도 근질거릴 때가 있다.

메세타의 길, 하늘 그리고 들판

커피를 혼자 마신다. 커피숍 유리창에 다닥다닥 빗방울이 걸려있다. 빗방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일어선다. 흥건히 젖은 레옹의 광장을 걷는다. 오늘이 아니면 레옹의 빗방울이 다시 나에게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무작정 빗속을 걷다 보니 대성당 앞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창 밖으로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바라본다. 저들은 왜 여기에 왔을까. 그때 성당의 종소리가 울린다. 하나 둘….. 열 번이다. 오전 10시. 아직도 자고 있을 남편이 생각나 카페의 문을 밀고 나온다. 비에 젖은 카페의 의자들을 지나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Gaudi)가 젊은 시절 지었다는 건물 앞에 선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덥석 안는다. 희라다. 

희라가 자신의 나이를 40이라고 했을 때 난 그녀의 등을 툭 치며 눈을 흘겼다. 거짓말! 얼마나  얼굴이 아이처럼 맑은지…. 난 그녀가 소녀인 줄 알았다. 그녀의 큰 눈을 바라보면 나의 모습이 그녀의 눈 속에 비쳐 보인다. 희라와 우리는 서로 걷는 속도가 비슷한지 길 위에서 자주 만나곤 한다. 어떤 날은 오랜 시간을 함께 걷기도 하지만 그녀는 가끔 아침 일찍 다른 사람과 떠나 버리기도 한다. 아마 그 때는 우리 사이에 지루함이라는 공기가 끼어들 때이다. 그녀는 아사미와 함께 이곳 레옹에서 이틀을 더 머문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레옹은 환한 햇볕에 포위된 도시다. 오늘의 목적지는  22km 거리에 있는 마사리페(Villa De Mazarife). 레옹의 도심을 지나 시골로 접어드니 끝없이 펼쳐진 포도 밭이 길 양쪽에 들어온다. 터져 나온 연초록 새순. 늙은 포도나무 검은 등걸에서 저토록 새파란 이파리가 나오는구나! 나무는 뒤틀리고 거칠었지만 붉은 황토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를 박고 있을까? 아기 손바닥만한 포도 잎을 왕관처럼 머리에 쓰고 6월의 햇살을 빨아들이고 있는 모습에서 빈 젖을 물리던 할머니가 보인다. 포도 나무의 키라고 해야 내 무릎뼈 근처에나 오려나. 그래도 포도알이 굵어지고 단물이 찰 때까지 버텨주는 늙은 나무. 포도를 따버리면 저 굽은 등걸만 남기고 포도를 달고 있던 가지는 다 쳐버린다고 한다. 작년에 잘려 나간 손이며 팔뚝이 포도밭 끄트머리 돌담 옆에 쌓여있다. 이 순례길 위로 가을 바람이 불고 흰 눈이 길바닥을 덮을 때 갈라시아 스프를 데우기 위해 흙으로 만든 오븐에 불쏘시개로 쓰일 가지들. 

레옹에 있는 가우디가 설계한 건물과 그 건물을 바라보는 그의 동상

어떤 이는 이 포도밭을 사막이라고 부른다. 포도나무는 그냥 모래일 뿐 . 뜨거운 태양을 피할 나무 그늘 하나 없는 길.  이곳은 스페인의 메세타(Meseta: 고원)가 아닌가. 하늘과 들판과 구불거리는 순례길이 전부인 세상. 그늘 하나 없이 펼쳐진 고도의 고원 지대다. 불타는 태양을 피해 키 작은 포도 나무 아래로 기어들 수도 없고 출렁이는 밀밭 속으로 걸어갈 수도 없는 이곳 메세타. 남편은 멀리 뒤에서 남처럼 걸어오고 있다. 이 적막의 길을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꿈꾸는 일. 지팡이로 땅 바닥을 찍으며 사막을 나는 독수리를 부르고 또 지팡이를 찍으며   모래가 모여들고 사라지는 소리도 들어본다. 그리고 푸른 하늘 전체에 사막의 열사들이 부르는  사랑 노랫소리를 풀어 놓으며 걷다 보면 도착지가 보인다. 

마사리페 알베르게의 넓은 잔디 밭에 빨래를 마친 순례자들이 맥주를 마시며 오후를 즐기고 있다. 저녁을 먹었는데도 하늘은 아직 파랗다. 알베르게 대문 앞으로 양들이 지나간다. 온 종일 풀을 뜯고 이제 집으로 가는 걸까. 순례자들이 우르르 달려가 양들을 구경한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스페인 남자가 말 위에 앉아 양들을 몰고 간다. 양들의 등에 찍힌 빨간 페인트가 실룩거린다. 

희라는 어느 마을에서 짐을 풀고 있을까. 그곳에서도 독신 예찬의 열변을 토하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을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결혼을 한 것이 슬그머니 후회되곤 한다. 

그녀는 결혼은 ‘개인의 죽음’이라고 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가정의 평화와 성공이라는 것을 위해 파멸되어가는 독창성에 대해 말할 때 나도 속으로 함성을 보낸다. 

그때마다 남편은 희라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그녀는 40살인데도  푸르른 이파리에 휘감긴 청포도처럼 시원하다.

개미가 파놓은 모래성

희라를 처음 만난 곳은 카리온(Carrion)의 알베르게다. 영어가 잘 안 통한다며 알베르게 직원이 그녀를 내게 데리고 왔다. 그녀의 짧은 머리와 동그란 얼굴을 보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도니스가 떠 올랐다. 그녀는 배낭을 운송했는데 카리온 알베르게에 도착하지 않았다며 불안해 했다. 전날 묵었던 알베르게에 전화를 해보니 배낭이 아직도 그곳에 있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어제 잠을 잤던 알베르게에서 가방을 찾아왔다. 그렇게 알게 된 그날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고 쉬다가 순례자들이 모이는 로비에서 만나기로 한다. 알베르게 수녀님들이 순례자를 위해 함께 하는 시간을 마련해 준 것이다. 

로비에 수녀님 세 분과 봉사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편은 피곤하다며 침대에서 쉰다고 한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은 순례자들 틈에서  희라가 싱긋 웃는다. 맞은편에서 일본인 순례자 스즈끼, 아사미, 세이코 그리고 히데미가 손을 흔든다. 한국 사람들도 있는데 다 새로운 얼굴들이다. 수녀님은 우리에게 돌아가면서 자기소개와 함께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를 이야기 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나라 마다 한 명이 대표로 노래 한 곡을 불러 달라고 한다. 

아일랜드에서 온 여인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다. 일본 팀의 차례가 되자 수녀님이 일본말로 인사를 하며 일본 노래 하나를 부르기까지 한다. 전에 일본 수녀님이 있었는데 그 때 배웠다고 한다

일본인의 차례에 19살 젊은 청년이 하모니카를 들고 나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보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며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한다. 하모니카에 붙은 청년의 입술에서 금방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라는 노래와 비슷한 곡조다.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일본 순례자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모니카에 맞추어 심각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른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일본의 순례자들은 고개를 숙이며 답례를 한다. “그다음은 꼬레아”.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나도 물론 손을 들 수가 없다. 나는 노래의 불구자다. 고개를 빼고 제발 누군가 한 곡 불러주면 안 되나 하는 심정으로 둘러보아도 다들 딴 데만 쳐다보고 있었다. 

“꼬레아 플리즈”. 나는 불행하게도  타고난 음치다. 일생에 가장 스트레스받는 장소가 노래방이라면 이해가 갈 것이다. 고등학교 때 음악 점수는  60점 근처. 낙제를 겨우 면한 점수다. 실기만 못 하면 좋은데 필기까지 못해서 늘 평균 점수를 깎아 먹는 악마였다. “한국 사람 없어요?”

그때 이층 계단에서 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언니가 그럼 이 노래 해석 좀 해줘요” 희라는 나를 언니라고 불러준다.  “양희은의 아이라는 노래인데요. 이 사람들이 뜻을 모를 거 아니에요?”. 나는 노래를 번역하면 곡이 끊겨서 멋이 없으니 그냥 부르라고 한다. 이 판국에 뜻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국을 대표해서 누군가가 노래 하나만 부르면 되는 것이다. 

그녀는 이층 층계에서 일어나 난간에 손을 얹고 노래를 부른다. 그녀의 몸은 은하수 아래 노를 젓는 사공처럼 움직인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곡이다. 노래는 길고 단조로웠으나 희라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중간에 노래가 끝난 줄 알고 순례자들이 손뼉을 치자 그녀는 손을 들어 올리며 “아직 안 끝났어요” 하며 계속 부른다 . 아주 긴 노래다.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순례자들은 열광하며 손뼉을 친다. 아마 그때처럼 손바닥이 떨어지라 손뼉을 쳐본 적이 나의 인생에 또 있을까? 

나는 그날 희라에게 독립 유공 훈장을 달아주고 싶었다. 

생장을 떠나온 지 28일 째다. 도착지인 아스토가(Astorga)까지의 거리는 30km. 비가 또 내린다. 

멀리 두 명의 순례자가 포도밭 사이로 난 길에 작은 점처럼 걸어간다. 윌리엄과 나는  더는 할말이 없는 돌멩이처럼 걷는다. 시간이 갈수록 침묵의 시간도 길어진다.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길, 뒤에는 입을 다문 남편이 걸어온다. 가방은 그의 등 아래서 끌려오고 그의 두발은 메세타의 고독 속으로 녹아 세상에 없다. 함께 걸어가는 길이지만 그가 앞서가면 나는 뒤로 가고 내가 앞에 서면 그가 뒤로 가는 것 같은 요즘. 오늘따라 우리 부부가 걷는 길이 자갈밭이다.  발바닥 밑에서 돌멩이들이 아픈 소리를 내고 있다. 

오늘은 발아래 밟히는 것들에 마음을 포개 본다. 땅 바닥에 말라붙은 풀포기, 부서져 버린 달팽이, 개미가 파놓고 간 모래 무덤, 하품하다 멈추어 버린 물구덩이 그리고 하루 종일 내린 빗방울. 산을 삼켜버린 침묵. 부서져버린 돌멩이. 멀리서 아스토가의 모습이 성채처럼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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