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박물관의 난민 전시관; 난민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틀 전에 지냈던 무료 캠핑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유료 캠핑장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인터넷과 관광안내책자 등을 뒤적이며 말로만 들어왔던 웰링턴(Wellington) 관광을 나섰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캠핑카를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익숙하지 않은 도로를 달린다. 일단, 시내 한복판에 있는 국립 박물관을 나선다. 뉴질랜드 수도답게 도로는 자동차로 붐빈다. 

국립 박물관 근처에는 무료 주차장이 보이지 않는다. 유료 주차장에 주차했다. 다행히 주차비는 시드니와 비교해 저렴하다. 박물관에 들어선다. 단체 관광객이 많다. 유명한 관광지에 갈 때마다 중국 사람으로 붐볐으나, 이곳에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박물관의 모든 안내문은 원주민 언어와 영어가 함께 쓰여 있다. 원주민에 대한 전시관이 별도로 크게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뉴질랜드는 호주 원주민보다 마오리 원주민의 입김이 세다는 생각이 든다. 

박물관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전쟁 전시관이다. 뉴질랜드가 세계 1차 대전에 참여한 안작데이(ANZAC Day) 전시관이다. 호기심을 갖고 들어가 본다. 세심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놓았다. 규모의 웅장함과 음악 등 전시 효과에 압도된다. 마치 전쟁터에서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현장감을 살려 놓았다.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호주와 뉴질랜드는 군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이곳 박물관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난민 전시관이다. 전시관 입구에 ‘피난민은 자국의 핍박을 피해 새로운 땅을 찾아온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 매년 1,000명 정도의 피난민이 뉴질랜드에 정착한다는 문장도 있다. 인구 5백만 정도의 나라에서 세계의 골칫거리인 난민 문제에 동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적은 숫자의 난민(예맨인 약 500명)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시끄러웠던 뉴스가 생각난다.  

웰링턴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산에 세워진 원주민 조각품

박물관을 구경한 후 웰링턴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산봉우리를 찾아간다. 서울의 남산과 같은 곳이다. 올라가는 도로변에 규모가 큰 교회가 있다. 시내에서도 보이는 산등성이에 있는 오래된 교회다. 교회를 지나 비좁은 2차선 도로를 계속 올라간다. 비좁은 도로변에 주차된 자동차도 많다. 앞에서 오는 자동차를 만나면 양보하기 어려울 정도다.    

정상에 도착했다. 웰링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국제공항이 보인다. 그러나 한 나라의 수도치고는 비행기가 자주 뜨고 내리지는 않는다. 항구에는 여객선이 정박해 있다. 여객선 항구 옆에는 화물선이 오가는 또 다른 항구가 있다. 선착장에는 목재가 널려 있다. 전망대에서 관광객과 뒤섞여 사진을 찍은 후 시내로 내려간다. 

시내 중심가에는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거리를 만났다. 도시의 삶을 즐기는 사람과 섞여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를 활보한다. 극장(Theater)을 비롯해 오래된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도로에 있는 무지개 건널목(Wellington's rainbow crossing)이라는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동성애, 성전환자 등 소수자에 대한 ‘다름’을 존중하는 뜻에서 2008년도에 건널목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있다. 좋고 나쁨을 떠나 ‘다름’을 인정하는 개방된 국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시내 한복판 보행자를 위한 거리; 한국 식당도 많이 보인다.

먹자골목도 있다. 한국 식당도 자주 마주친다. 심지어는 한국말로 ‘가라오케’라 쓴 식당도 있다. 스시집도 셀 수 없이 많다. 아마도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집이 대부분일 것이다. 한국 사람이 많은 사는 시드니, 스트라스필드(Strathfield)에 온 기분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공원(Botanic Park)도 찾아보았다. 산책로가 많다. 심지어는 케이블카가 있을 정도로 큰 공원이다. 안내소는 5시가 조금 지나 문이 닫혀있다. 그러나 안내소 주위에 난간을 설치해 주위 풍경을 볼 수 있게 배려해 놓았다. 공원 건너편에 동양 냄새가 나는 큰 중국인 교회가 보인다. 교회를 중심으로 산 중턱 경치 좋은 곳에는 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웰링턴 보타닉 공원

여느 공원과 다름없이 각가지 꽃이 나름의 향과 색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자기만의 색을 마음껏 자랑하는 여러 종류의 꽃이 모여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흔히 뉴질랜드를 다문화 국가라고 한다. 각자의 문화를 마음껏 펼칠 기회를 제공하는 국가라는 뜻이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 생각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도 같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회, 하나의 색깔 아래 모여 사는 사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각자의 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일 것이다. 
나는 무슨 색깔을 가지고 있을까,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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