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인근 동네에서 30년 가까이 지내다가 이곳 블루 마운틴에 들어온지 2개월이 지났다. 

처음 시드니를 방문하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오페라 하우스요 두번째가 블루 마운틴이다. 그 때 생각에 이런 산속에 수행처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냈었고 틈틈이 사람들과 함께 산행을 할 때도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일어나곤 했다. 우선은 공기가 맑고 조용하며 시드니에서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서 여러 가지로 적합한 장소로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생각에만 맴돌고 여건이 되지 않아 뉴카슬 인근과 고스포드를 훑어 보았고 타스마니아의 마리아 섬 등 몇 곳을 수차례 방문했으며 멀리 뉴질랜드 남북섬과 특히 오클랜드에서 비행기로 50분 거리에 있는 캐리캐리라는 곳까지 두리번 거려 보았으나 마음에 쏙 드는 곳이 아니었다. 뭔가 한두 가지가 부족하여 멀리가는 것은 포기하고 있던 중 블루 마운틴 법보사와 인연이 된 것이다. 

30여년 가까이 초심속에 점지되어 있었던 그 생각의 종자가 드디어 결실을 하게 된 것이다. 수년 전 KBS 2에서 방영된 ‘마음이란 무엇인가? ‘ 에 대한 심층분석에 따르면 세계적인 과학자, 의학 생물학, 물리학, 심리학자 등의 최고의 권위자들이 공통으로 내놓은 대답은 “마음이란 그 무엇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그 어떤 것” 이라는 것이었다. 실험적 현상으로 드러내 표현할 수 있는 메카니즘으론 한 생각을 일으키면  뇌 피질에 있는 수백억의 미세한 시냅스 중 그 어떤 부분에 전파가 발생되고 그 생각이 지속되면 그 전파가 희망하는 목적을 따라 계속 따라가게 된다는 사실만은 확인했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결국은 불교의 핵심 원리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것이다. 선악간 그 어떤 사회 현상도 모두가 우리 개개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일념의 그림자라는 것이다. 절 집안에서 들먹이는 색즉시공(色即是空)이 바로 그를 두고 한 말이다. 물질이 바로 비물질인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자신이 만들어 놓은 탐(貪), 진(瞋), 치(癡)의 삼독(三毒)의 그물에 걸려서 허덕거리고 있으면서 도리어 남탓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고 일러주는 이들이 바로 성현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런 어진이의 말씀을 눈치 채고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고 자비심을 북돋우는 데는 청산이 최고다. 산속에 혼자 살면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스스로의 마음이 어떤 에너지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눈여겨 볼 수 있는 시공간이 생긴다. 

대부분은 말한다. “ 자신을 바라보니 도리어 따분하고 서글퍼지더라. 적당하게 즐기며 재미있게 살면서 힘되면 여행이나 하고 맛있는 것이나 많이 먹고 살면 되는 것이지. 인생 살아 보니 별 것 아니더라 ” 고. 그 말에 고개를 가로지를 용기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모든 생명은 고통을 싫어한다.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보면 그것을 줄일 수 있는 묘수가 그 속에서 나온다. 산속에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본다. 산도 사람도 말이 없다. 그저 하나가 되어 적정 속으로 빠져든다. 이런 분위기를 옛 어른들은 산여인무어(山與人無語)라고 멋스럽게 표현했다. 한참동안 청산과 창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한 점의 백운이 생기더니 그것이 점점 크기를 더해간다. 없었던 구름이 어디에서 왔을까? 나란 생명체가 어떤 인연으로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먼 호주까지 와서 이렇게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구름이 홀연히 나타난 것에 비춰서 생각해 보는 것도 산중에 사는 사람의 하나의 즐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덩치 커진 백운이 정처없이 떠다닐 때 두어 마리의 새들이 짝을 지어 구름을 따라 덩달아 날아간다. 그들은 얼마나 날아가야 백운과 함께 벗할 수 있을까? 이러한 한가한 하늘의 정경을 바라 보면서 운수조공비(雲隨鳥共飛)라고 한 수 읊는다. 그러다가 지척에 있는 냇가를 내려다 본다. 맑은 물이 졸졸졸 소리내며 흘러가는 그곳 주변엔 철쭉 꽃 등등이 활짝 피어 벌 나비를 부른다. 사람도 함께 그들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다 모두를 평화의 세계로 인도하는 그들은 물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니 물도 꽃도 함께 소중한 존재로 알게 하는 힘이 또한 산속에서 나온다. 

이런 정경(情景)을 수류화발처(水流花發處)라고 했다. 창공엔 백운을 따라 새가 날아가고 발 아래엔 물과 함께 꽃들이 만발하는 블루 마운틴, 그래서 산 속에 오래산 이들은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적요의 평화가 깃들고 있음을 수시로 느끼고 뿌리와 가지가 본래는 하나라는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을 수 있는 지혜력이 생기게 되어 어디 가도 환영받을 수 있으니 어찌 그곳을 떠날 수 있으랴? 또한 청산은 사람을 불러 들인다. 

30일(화요일) 오전 10시경 잠시 들리겠다던 지인 두 내외가 방문했다. 등산객 차림의 그들은 웬트워스 폴로 산행을 가는 길이란다. 매주 화요일 오전 8시 31분에 스트라스필드에서 기차를 두번 째 칸에 타면 한인 30 ~ 40명이 그곳에 모인단다. 카툼바가 가까워 오면 각자의 그룹으로 나눠져서 이곳 저곳의 산행을 즐긴다고 했다. 그중엔 94세의 어른도 있다고 하였다. 이 얼마나 좋은 모습인가? 함께 하며 담소하고 평생을 걸어온 인생의 외길을 청산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걸으며 즐길 수 있는 노후의 여백, 튀지도 녹슬지도 않는 은은한 은빛이 주는 의미를 이제야 알 듯하다. 산행을 하는 대부분은 건강을 위해서 너무 좋다고들 한다. 맞는 말씀이다. 거기에 덤으로 배울 것이 하나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높음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버타운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제일 맹점 중의 하나가 왕년의 자신을 떠 받치고 싶은 자기 과시욕의 자가당착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들은 선전을 해야 사람이 모이지만 은빛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이 내가 시드니에 온지 얼마나 된 사람이라고 거들먹거리게 되면 곁에 있던 이들도 도리어 떠나고 만다. 사람의 인격이란 그곳에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하는 시간이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언행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가 평가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청산에 사는 사람, 그 산을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들 만큼은 산 높음을 자랑하지 않는 블루 마운틴의 정기(正氣)를 꼭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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