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는 경치 좋은 해안도로를 자주 운전하게 된다.

수도 웰링턴(Wellington)에서 이틀 지낸 후 왕가누이(Whanganui)라는 동네로 향한다. 뉴질랜드의 지명은 기억하기 어렵다. 원주민 말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발음도 내 나름대로 하고 있지만, 원주민의 발음은 다를 것이다. 그리고 지명마다 특별한 뜻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아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내를 벗어나 북쪽으로 향한다. 조금 지나니 뉴질랜드 특유의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지나칠 수 없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에 담는다. 빗방울이 오락가락한다. 바람이 심하다. 파도가 높다. 궂은 날씨에 바라보는 풍경은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다시 자동차에 올라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높고 낮은 구릉을 오르내리는 해변 도로를 운전한다. 

해변 도로를 벗어났다. 남섬에서 보았던 숲이 우거진 산들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조금은 황량하게 보이는 너른 들판뿐이다. 호주에 살면서 자주 다니던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다. 뉴질랜드에 있다는 것을 잠시 잊을 정도로 차창 밖 풍경이 호주 시골과 흡사하다.

아이들이 네덜란드 의상을 입어볼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다.

작은 동네를 지나치며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대형 풍차가 보인다. 네덜란드를 소개하는 사진에 나오는 풍차와 다름없다. 오래 운전했으니 쉴 때도 되었다. 풍차가 있는 동네로 들어섰다. 폭스톤(Foxton)이라는 지명을 가진 작은 동네다. 뉴질랜드 오지에서 뜻하지 않게 네덜란드의 풍차를 마주한다.

네덜란드 풍차가 관광객의 발길을 끈다

풍차는 규모가 크다. 풍차 내부는 관광안내소를 겸한 가게로 사용하고 있다. 네덜란드 국기가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풍차 안에 들어가 본다. 네덜란드 음식과 상품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옆에 있는 건물에는 네덜란드 오븐이라는 간판이 붙은 카페도 있다. 뉴질랜드에서 만난 네덜란드, 이해하기 어려운 분위기에 조금 혼란해진다. 

풍차 옆에는 도서관을 겸한 박물관이 있다. 작은 동네에 걸맞지 않은 도서관 그리고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크게 쓰인 건물이다. 뉴질랜드 국기와 네덜란드 국기도 함께 걸려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 작품 전시회가 열린다는 포스터가 입구에 붙어 있다.

특이한 환경에서 책을 읽도록 배려한 공간이 눈길을 끈다.

건물에 들어서니 전시관 같은 분위기다. 동네 역사를 소개하는 사진을 비롯해 오래된 물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자전거도 전시되어 있다. 물론 도서도 많다. 그러나 책상은 많지 않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설이 대부분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네덜란드의 문화를 알려주는 전시관이다. 뉴질랜드에 정착한 네덜란드 사람들의 사진, 물품 등이 설명과 함께 잘 전시되어 있다. 심지어는 네덜란드 의상을 입으며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까지 마련되어 있다.      

렘브란트 전시관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렘브란트의 유명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인구 3,000명 정도의 작은 동네에서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유명한 화가의 대형 작품에 압도되는 경험을 갖는다.  

왕가뉴이(Whanganui)에 도착했다. 큰 강이 도시 복판을 지나고 있는 제법 큰 도시다. 동네 한복판을 조금 벗어나 강을 마주하고 있는 캠핑장에 도착했다. 자리를 잡고 옆을 보니 사과나무가 많다. 나무에는 보통 사과보다 2배 이상으로 큰 사과가 많이 달려있다. 오리들이 주위에 떨어져 뒹구는 사과를 먹지도 못하면서 쪼아대고 있다. 

아내가 사과 맛을 보더니 조금 시지만 먹을 만 하다고 한다. 몇 개 따서 캠핑카에 싣는다. 얼마 전 과수원이 있는 민박집에 머물며 납작 복숭아와 비싼 오이를 실컷 먹은 기억이 떠오른다. 

캠핑장 주위를 둘러본다. 수영장에는 원주민 가족들이 싸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물놀이 하느라 시끄럽다. 강에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카누를 열심히 젓고 있다. 캠핑카를 세워두고 나이 지긋한 부부가 의자에 앉아 강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주위에는 오리가 떼를 지어 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있다.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걱정 근심이 보이지 않는다. 낙원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행복의 추구란 투쟁과 좌절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쾌락과 부를 위한 노력은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도 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내려놓는 삶’을 생각한다. 진리를 아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는 자유로운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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