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9년 8월15일이다. 이 날짜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특별히 설명을 하지 않아도 ‘광복절’ 이라는 말을 곧장 떠올리게 된다. 광복이란 말은 ‘ 빛이 회복 되었다’ 라는 의미 이다. 어둠의 시대가 지나고 빛이 임했다는 말이다. 한일 합방이 되고 36년의 일본의 압제 하에 있던 나라가 주권을 회복하고 드디어 해방을 맞이 하게 되었고 민족 전체가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의 구 한말의 역사는 부끄러울 만큼 나라와 민족을 지킬 힘이 없었고 정치와 경제, 외교, 안보의 모든 면에서 세계의 변화에 대응할 만한 국가적 준비와 여력이 없었던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나라는 타국의 식민통치를 받아야 하는 수치스런 역사의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독립 운동의 국민적 염원과 처절한 노고가 있었지만 우리의 능력과 성취의 결과로 광복을 쟁취했기 보다는 오히려 연합군의 승리와 일본의 패망에 기반한 타인의 힘에 의해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현실이었다. 우리는 그만큼 힘이 없었고 국제정세에 눈뜨지 못했고 외부의 공격과 압제에 대해 국민을 지킬 국방력과 외교력을 갖지 못했다. 일제 하에 받은 핍박과 억압은 누누히 역사 안에 각인되었고 겪어야 했던 설움과 억울함은 국민의 정서에 늘 반감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해방을 맞이 한지 74년이나 지났지만 우리는 일본과 축구 시합을 하면 더 이상 축구가 아니고 ‘전쟁’ 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다른 약체 국가에게 지는 것은 용납하여도 일본에게 만큼은 질 수 없다는 것이 국민정서이다. 다행히 근면하고 성실한 우리 민족은 잘 살아보자는 하나된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고 이제 세계 경제  11-12 위라는 위상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자랑하며 자랐고, 가난했지만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단순한 소망을 가지고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도 갈라진 남과 북은 핵과 안보의 문제로 남북, 한미, 북미 대화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으며 , 일본과는 일제의 과거사 정리로 경제 보복의 갈등으로  외교적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을 독립전쟁에 비유하며, 정부는 일본에게 다시는 질 수 없다는 도전적인 메세지를 던졌다.   우리는 열정이 있는 민족임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실질적인 실력과 국방력과 외교력을 갖추지 못하면 강대국의 위세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가르친다. 위안부 문제도 북핵의 문제도 사실 모두 우리의 실제적인 힘의 문제에 기인한다. 감정에 호소하고 강국의 호의 만을 막연히 기대하는 내실 없는 점잖은 체면은 온 국민을 어둠과 고통의 결박 가운데로 몰아 넣는 무책임을 포장한 가증한 위선을 감추고 있다. 나라와 주권이 없어 받은 수치스런 설음은 이미 지나간 시대로 족하다. 
호주에 처음 발을 들었던 30년 전 한국을 아는 호주인들은 드물었다. 관심을 일으킬만한  매력이 없고 그들과 상대할 만한 실력과 쌓인 경쟁적 자산이 없었다. 

나라가 없어 유럽의 강대국 사이에 나그네처럼 살던 유대인들은 2차 세계 대전 기간동안 독일과 폴란드를 비롯한 나라들에 의해  6백만명이 생명을 잃었다. 그 중에는 150만명의 어린 아이들의 죽음이 포함되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전후 1948년, 2000년 만에 다시 나라를 얻게 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 Never again..”이라는 슬로건과 더불어, 유대인들의 유대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강한 나라’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그리고 “ 원수를 갚기 보다는 세상을 치유하자”는 세계관을 국민의 마음에 각인 시켰다. 

전쟁의 종결은  식민 국가들이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는 기쁨을 주었다. 그리고 지난 70여년의 세월은 우리에게 도전과 성취의 시간들로 증명되었다. 우리는 많은 독립국가들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정세는 진정한 강한 민족이 되기 위해 체면을 거둬 낸 냉철한 내실로 채워진 경쟁력이 엄중한 숙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있다. 세상의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향한 위상에 걸맞는 품격과 헌신의 실체가 세계가 주목하는 외교와 문화적 시험대에 올랐다. 진정한 자유는 진정한 진리를 기초로 할 때 비로소 취득되는 필수 절차를 거친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던 미국의 독립전쟁을 촉발한 패트릭 헨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민족의 자유에 대한 타는 갈망이 있었다. 예수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알려 주었다. 예수를 붙들어 세운 빌라도는 지식과 권력을 거머쥔 엘리트였지만 그 앞에서도 진리를 알지 못했다.   이데올로기와 사상이 아닌, 생명이 약속된 진리여야 만이 진정한 자유를 담보할 수 있다.  
특별한 숙제가 위중한 2019년에, 어둠이 물러가고 빛의 회복을 기념하는  ‘광복절’에 우리 민족 모두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는 진리의 빛이 비쳐졌으면 좋겠다.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치는 빛이 있었나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요한복음1장9, 14절) 

모든 비 진리의 결박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오직 그에게, 숙제의 해답이 숨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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