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꾸면 나이가 줄어든다. 줄어든 나이를 의식한 탓일까?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토로한다.

철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 자체는 늘 존재한다.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을 뿐이다. 시간 속에 사는 우리들이 변해가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면, 특히 고국의 가을 들녘에 고개 숙인 벼 이삭이 출렁거리며 아침 햇살을 받는 광경을 상상할 때 문득 고국이 그리워진다.
특히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친구들과 뛰어놀던 추억 보관소가 있는 고향이, 가슴 저리는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중상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전 세계를 풍미하면서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며 변칙적인 언행으로 정상에 올라선 정치인이 세계 강대국에 돌출하고 있는 현실이 예사롭지 않다.

국제적인 감각보다는 자국의 국민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인이 많을수록 위기가 다가온다. 그들은 죽은 적도 없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줄기차게 말한다.
이러다가 따뜻한 가정은 사라지고 차디찬 가옥만 남지 않을까 염려 된다.

19세기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은 대표작 ‘백경 
(Moby Dick)‘의 첫 문단에서 네레이터 이스마엘은 자기가 바다를 가는 이유를 설명한다.

"내 입 주위에서 우울한 빛이 떠돌 때,
관을 쌓아두는 창고 앞에서 저절로 발길이 멈춰 질 때,
내 영혼에 축축하게 가랑비 오는 11월이 올 때,
그럴 때면 나는 빨리 바다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필자는 소설 속의 ‘바다’를 현실에서 ‘고국’으로 대치하고 싶다.

이국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고국은 삶의 비전을 준다.
길 잃은 자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는 고국이 용기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전기를 마련해 준다.

바닥에 엎드려 있으면 넘어질 일이 없지만 걷는 자만이 앞으로 간다는 신념으로 이민을 결행한 우리가 아닌가?
물질에 대한 열망, 출세에 대한 타오르는 불길과 기적에 대한 갈구를 향해 달려 왔다.

고국과 타국에서 번갈아 살아오면서 두 나라의 온도차로 인해서
우리의 가슴에 이슬이 맺히고 얼룩이 지는 ‘결로(結露)현상’을 겪으며 살아왔다.

이런 현상을 치유 하는데 고국 방문이 차도가 있다.
내 마음 쉬어 갈 수 있는 곳이 고향이 아니던가 ?
또한 고국과 타국에서의 생활 감각에 균형을 맞추어 준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 사진이 있듯이 물속에 있으면서도 목말라 하는 갈증을 해소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마음의 아토피를 치료해 주는 마음의 면역력을 길러준다.

필자는 최근 KBS TV 8.15 특집 ‘헤로니모 임(Jeronimo Lim Kim, 한국명 : 임은조, 1926-2006)’을 시청했다.
일제 강점 5년 전인 1905년 멕시코 농장에 취업하러 간 1천여명중 임천택 씨는 쿠바 농장에서 일했다. 그의 장남인 헤로니모 임씨는 아바나 법대 재학 중 카스트로 쿠바 수상과 함께 혁명에 가담하여 혁명 정부에서 남미 혁명의 대부 체게바라 산업부 장관과 함께 차관으로 재직했던 쿠바 국가 원로였으며 광복 50주년 기념 한민족 축전에 초대됐다.

헤로니모 임 씨의 자녀들은 "쿠바 한인사회는 이제 3대에서 6대까지 700여명으로 쿠바 사회에 온전히 융화되었습니다. 우리와 그들은 하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꿀 수 없으며, 언제나 존재할 것 입니다"라고 말했다.
‘고향의 봄’의 배경 음악이 긴 여운을 남겼다.

망향,
인간 도처에 청산이 있다 하되,
고국산천 그리움이 그칠 줄 있을까?

19세기 독일 본에서 출생한 불세출의 세계적인 작곡가 베토벤이 57년의 생애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1500여곡을 작곡했던 놀라운 감성은 망향의 영향이 배어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고향이여, 아름다운 땅이여,
내가 이 세상의 빛을 처음 본 그 나라는 나의 눈앞에 떠올라 
항상 아름답고 선명히 보여준다.
내가 그 곳을 떠나온 그 날의 그 모습 그대로.."라고 그의 고향을 그리는 심경을 읊었다.

‘고향이 따로있나, 정들면 고향이지.’라는 우스개 소리가 전해오지만 잎사귀도, 나무껍질도, 뿌리도 없는데 스스로를 계속 나무라고 우길 수 있는가? 하지만 고향을 떠나 있는 자만이 망향을 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고국의 추석이 가까이 오고 있다.
고국 방문이 너그럽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이해심 많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
올 추석에는 모국 방문 길에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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