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법 적용 비공개 재판 진행 우려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전 대통령이 동티모르 정부청사 도청 의혹을 폭로한 호주 비밀정보부(ASIS) 출신 내부고발자 ‘증인 K(Witness K)’와 변호사 버나드 콜리어리를 위해 직접 증언하겠다고 나섰다.

26일 사나나 구스마오는 호주 ABC방송 시사프로그램 ‘포 코너스’(Four Corners)에서 2004년 티모르해 조약을 둘러싼 호주의 도청 의혹과 관련해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다며 “재판이 공개로 진행될 경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말하겠다”고 밝혔다. 

증인 K는 2004년 도청 작전에 관여한 전직 정보요원, 콜리어리는 그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다. 이 두 사람은 호주 정보수집 활동과 관련한 기밀정보를 동티모르 정부에 누설한 혐의로 기소됐다. 콜리어리는 보안 당국으로부터 자택 급습을 당한 후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린 데 대해 4건의 추가 혐의가 부과됐다.

한편 이들 재판이 국가보안법(NSI Act)에 따라 비공개 재판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NSI법은 군사기밀 등 국가안보와 관련된 민감한 정보를 다루기 위해 2004년 도입됐다. 주로 테러 범죄에 사용돼 온 것으로 이 법이 적용되면 재판이 비공개로 이루어진다.

2006년 NSI법이 최초로 적용된 칼리드 로드히 테러 사건을 맡았던 앤서니 윌리 전 재판관은 “내부고발자, 언론인 등과 관련된 사건을 위해 고안된 법이 아니다”라며 도청사건 NSI법 사용 여부에 의문을 제기했다.

스티븐 찰스 전 빅토리아 고법 판사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비공개 재판 진행에 대해 어떠한 정당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신문을 읽는 모든 사람이 ASIS 요원이 동티모르 정부청사를 도청했다는 것, 이로 인해 호주가 티모르해 협상에서 부당한 이득을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호주인이 정부의 책임 여부를 따지길 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크리스찬 포터 법무장관은 이 스캔들과 관련해 법정에서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정보와 증거의 공개를 제한하는 ‘비밀증명서’(secret certificate)를 발행했다.

공개 법정에서 증거 채택은 전적으로 판사에게 달려있으나 콜리어리는 이미 NSI법이 그의 증언과 변호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법정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소된 지 18개월이 지나서야 변호사와 면담할 수 있게 됐는데 벌써 대화 내용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포터 법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나는 호주 사법 절차를 굳게 신뢰하고 있다”며 “국가안보 보호의 필요성과 투명한 공개재판의 원칙 간 올바른 균형이 유지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어떠한 법적 절차도 공개 법정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증인 K와 콜리어리 변호사 기소 건은 사전에 법무장관의 동의가 있었어야 했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다른 형사 재판 사례와는 다르다. 호주 비밀정보부에 대한 기밀 규정을 위반한 혐의 관련이기 때문이다.

조지 브랜디스 전 법무장관(현 영국 주재 호주 대사)은 이 사건과 관련해 연방검찰청(CDPP)으로부터 최초 기소 요청을 받았으나 2년 3개월 동안 동의하지 않았다. 반면 포터 현 법무장관은 취임 6개월만인 지난해 5월 기소를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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