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지서 200여 조문객 참석, 시소추 회원 및 현지 동포들 동참
"역경 속에서도 예수님을 향한 내 믿음 뺏을 수 없다” 딸 캐럴 회고

조사를 하는 둘째 딸 캐럴

남호주에 거주한 위안부 피해자인 잰 러프 오헌(Jan Ruff—O’Herne) 할머니의 장례식이 27일(화) 오전 11시 애들레이드 킹스우드 돌로스 성모성당(Our Lady of Dolours Church, Kingswood)에서 엄숙하게 거행됐다. 

19일(월) 향년 96세로 별세한 오헌 할머니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4년(21세)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군에 납치돼 스마랑에 설치된 ’칠해정 위안소'에서 강간과 폭행 등 성노예로 고초를 당했다. 

일본군의 기록 말살로 정확한 통계를 찾을 수 없지만 한국인은 약 8-20만여명, 중국인, 대만인, 인도네시아인 등 많은 아시아계 여성들이 희생을 당했다. 유럽계 중 네덜란드인들 피해자는 약 2백여명으로 추산된다.

오헌 할머니는 1992년 서구 여성 중 유일하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고백했다. 한 해 전 한국인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TV 공개 회견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19일 타계한 故 잰 오헌 할머니의 장례식이 27일 애들레이드의 킹스우드 돌로스 성당에서 열렸다

할머니는 “일본이 공식 사과할 때까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준엄하게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했다. 장례식은 살아남은 자들이 완수해야 할, ‘떠난 자가 남기고 간 역사의 숙제’ 앞에서 비장함이 슬픔을 압도했다. 

딸 에일린과 캐럴(Carol)을 포함한 유가족, 남호주 종교계 인사들, 수십 년 동고동락했던 가톨릭성당 신자 등 약 200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신준식 박사 등 시드니 소녀상 추진위원회(이하 시소추, 대표 염종영) 회원들과 애들레이드 한인들도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딸 캐럴은 "어머니의 손은 작았다. 그 작은 손으로 어머니는  가족을 위한 요리를 하고 피아노와 플루트를 연주했다.  모험심이 강한 그녀는 그 작은 손으로 일본 군인들과 싸웠다. 일본인들이 빼앗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는 내 모든 것을 빼앗아도 예수님을 향한 내 믿음을 빼앗을 수 없다고 하셨다. 일단 어머니가 세상을 향해 말하기 시작할 때 그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자신을  결코  희생자로 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할머니 영화 ‘데일리 브레드’를 제작한 외손녀 루비 챌린저 감독

캐럴의 딸인 외손녀 루비 챌린저(Ruby Challenger)는 할머니의 수용소 생활을 기록한 <데일리 브레드(Daily Bread)>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챌린저 감독은 “할머니가 수용소에서 같이 성폭행을 당한 친구들의 이름을 새긴 손수건(현재 캔버라 전쟁박물관 소장)을 소재로 한 차기 작을 준비 중에 있다”고 밝혔다.  

장례식에 함께 한 신준식 박사는 “여성 인권, 평화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오헌 할머니의 가는 길에 함께 하고자 참석했다”면서 “오늘 다시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평화를 향한 우리의 마음을 다지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는 희망했다.

할머니의 회고록 <50년의 침묵(50 Years of Silence)>에 따르면 당시 200여명의 네덜란드계 여성들이 일본군 성노예로 고초를 겪은 것으로 파악되지만 전후 커밍아웃은 오헌 할머니가 유일했다. 

오헌 할머니는 “내가 죽더라도 가족이 끝까지 싸울 것”는 유언을 남겼다, 그녀의 유언을 이루어야 할 책임은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됐다.

성당 교우인 메리 그레이브와 엘리자베스 모리슨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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