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공식 사죄 받아야 죽을 때 존엄 있게 떠날 수 있을 것”
27일 애들레이드에서 거행, 시소추 회원, 한인 동포 등 200여명 조문 

19일 타계한 故 잰 오헌 할머니의 장례식이 27일 애들레이드의 킹스우드 돌로스 성당에서 열렸다.

남호주 애들레이드 도심에서 약 20분정도 떨어진 킹스우드 돌로스 성모성당(Our Lady of Dolours Church, Kingswood). 서양인으로 유일하게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증언한 네덜란드계 잰 러프 오헌(Jan Ruff—O’Herne) 할머니의 장례식이 27일(화) 오전 11시 엄숙하게 거행됐다.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On Wings of Song)가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6명의 신부들이 집전하는 장례 미사에 그녀의 가족과 성당 교우, 지인, 시드니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 (이하 시소추) 관계자들과 멜번, 애들레이드에서 참석한 한인 포함 약 2백여명이 함께 했다.

마이클 브렌난 몬시뇰 신부가 집전한 미사에서 결혼 사진, 일본군 만행을 기록한 회고록 <50년의 침묵>, 십자가, 묵주 등 그녀의 유품이 가족들에 의해 성전에 봉헌됐다. 고인의 딸 에일린과 캐럴의 추도사, 한국의 정의기억연대가 기증한 촛불을 할머니의 증손자 알렉산더가 밝혔다.

큰 딸 에일린은 “나는 어머니의 딸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어머니의 인생을 통해 그녀가 달성한 모든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잔혹한 경험에 대한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정한 것은 그녀의 운명을 바꾸었다. 그 전까지 우리 누구도 고통스러운 비밀을 알지 못했다. 이제 어머니는 아버지 톰 곁에서 평화롭게 잠들 것”이라고 말했다.

딸 캐럴이 조사를 읽었다

둘째 딸 캐럴은 "어머니의 손은 작았다. 그 작은 손으로 어머니는 일본 군인들과 싸웠다. 일본인들이 빼앗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는 내 모든 것을 빼앗아도 예수님을 향한 내 믿음을 빼앗을 수 없다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브래넌 몬시뇰 신부는 강론에서 “위안부로 고통을 당할 때 그녀는 "하느님 도대체 어디에 계신가요?"를 외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신뢰했다. 가장 어두운 삶 속에서 가장 밝은 모습으로 살다갔다”고 말했다.

2016년 한호일보와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모습(왼쪽부터) 외손녀 챌린저 감독, 오헌 할머니, 박은덕 변호사, 송애나 씨.

"일본군들, 내 믿음은 뺏을 수 없었다”

피오나라는 이름의 50대 여성은 미사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쟌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녀를 안다. 오래 전 우리 아이들의 학교 교사였다. 애들레이드 지역신문을 보고 장례식을 찾았다"면서 “오늘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한국인들이 이렇게 많이 여기까지 와주었는데 참으로 귀한 발걸음을 했다”고 고마워했다. 

시소추 대표로 장례식에 참석한 신준식 박사(노동운동가)는 “여성 인권, 평화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오헌 할머니의 가는 길에 함께 하고자 참석했다. 오늘 다시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평화를 향한 우리의 마음을 다지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헌 할머니는 “난 일본의 공식 사죄를, 사는 동안 받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그 사죄를 받을 때라야 우리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은 죽는 그 순간, 존엄성을 갖추고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대사관과 시드니 총영사관이 보낸 화환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신과 나(You & I)>라는 할머니가 작곡하고 부른 노래를 들으며 참배객들은 성당을 떠났다. 한인들은 장지까지 함께 했다. 

장례식에 참가한 한인들.

장례식에서는 유족들에게 정의기억연대, 뉴질랜드 단체, 송애나, 필리핀 단체, 독일거주 네덜란드 목사의 조문과 조의금, 시드니 동포 이회정 회계사의 할머니 사진이 담긴 화첩 등이 전달됐다. 시소추는 24일(토) 시드니 스트라스필드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식을 가졌다. 

장례식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k1RKJypJ7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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