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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단상] 인연의 꽃
기후 스님(정법사 회주) | 승인 2019.09.05 14:33

인연이란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줄임말이다. 이 세계의 모든 현상적 결과와 우리 삶의 행, 불행도 그 모두가 인연의 원리에서 나와졌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물질세계에선 인은 종자며 연은 토양적  조건이다. 좋은 씨앗을 거름을 넉넉하게 넣고 그 때 그 때 잘 보살펴 주면 많은 수확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런 이치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상식적인 법칙으로 받아 들인다.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고 경험적으로도 느낀 사실이기 때문. 
반면에 인간의 삶에 있어서의 인의 종자는 한 생각이며 연의 내용은 어떤 생각을 어떻게 가꾸며 살아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문제는 인간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형성된 고등 동물이라 인연의  가닥도 다양하고 그에 따른 변수도 복잡미묘해서 인연의 법칙에 대해서 순응하지 않으려는 기운이 상당히 심하다. 탐욕과 감정 등등의 지혜롭지 못한 무지의 충동력으로 인해서 헝클어져 있는 실타래처럼 비비 꼬이기가 십상이다. 그렇듯 깊은 존재의 윈리인 인연법을 잘 이해해서 우리 가정이나 사회에도 적용시켜 실천한다면 우리 주변이 한결 더 밝고 온화해지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참으로 안타깝다. 

인연이란 말이 가장 많이 해당되는 것이 사람끼리의 만남이다. 특히 젊은 남녀간, 즉 결혼 적령기일 때 쯤 두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인연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전혀 모르고 지냈던 두 사람이 어느날 어떤 장소에서 처음 만나서 평생을 함께 지내는 관계야 말로 실로 지중(至重)한 인연이 아닐 수가 없다. 
그것이 우연일까? 필연일까? 노사연은 우연이 아니라고 노래했고 불교 논리에도 필연으로 서술한다. 금생에 부부연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미 전생에 심어둔 인의 종자가 발아해서 현생의 부부됨의 결실로 이뤄졌다는 논리다. 그러니 피하지 말고 잘 받아 들여서 선연(善緣)은 더 잘 가꿀 것이며 악연(惡緣)은 피차가 참회하고 서로를 용서해서 금생에 얽혔던 모든 앙금을 훌훌 털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자녀를 두게 된다. 그들 역시 처음 부모를 만나서 평생을 함께 하니 큰 인연이 아닐 수가 없다. 그들 역시 전생의 부모나 친척, 친구 등등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중에 자식과 부모의 관계로 태어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이 사회를 형성하는 기초 단위가 되고 그 원동력은 사랑이라고 하는 이름의 한 생각의 에너지이다. 

그 가족 중에서도 모녀간의 애뜻한 사랑의 교감은 정말로 눈물겨울 정도이다. 아마도 출산과 육아, 시집살이라고 하는 그 어떤 공감대의 형성층이 하나로 연결된 그 생명의 탯줄에서 나와진 자연스런 정의(情宜)의 표출이 아닐까? 
본인의 어릴 적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동네는 70 여 호의 초가집이 와룡산 아래 좁은 골짝 작은 동산이 약간 높게 솟아 있었고 큰 소나무가 듬성듬성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위치가 그렇다 보니 초롱불을 들고 장 마중도 그 곳에서 기다렸고 손님 배웅도 솔청에서 손을 놓고 헤어졌다. 자유당 때라 힘없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소 달구지에 큰 배터리와 마이크를 싣고 와서 “ 친애하는 동민 여러분! ” 하고 울분을 토하던 곳도 그 곳이었다. 또한 권력에 눈이 멀어 도 의원에 출마해서 떨어지고 난 뒤에 정신이 약간 이상해져서 이른 아침 동네 주민들을 향해서 열변을  토해냈던 경웅이 아버지의 연설도 그 솔청에서 이뤄졌다. 어느날 막내 고모가 친정에 왔다가 시댁으로 가는 날 할머니는 이구석 저구석에서 이것 저것을 잘도 찾아 내어 크고 작은 보따리 여러 개를 만들었다. 나도 가벼운 것 몇 개를 들고 솔청까지 따라 갔다. 그곳에서 헤어지면서도 할머니는 뒤돌아 서질 않았다. 저 멀리 모퉁이를 돌아 고모가 다시 보이면 말없이 손을 길게  뻗어 내친다. 어서 잘 가라는 손 신호다. 그러면 고모는 다시 머리에 인 보따리를 길 위에 내려놓고 두 손을 흔들며 얼른 들어 가시라고 손짓을 했다. 결국은 고개 너머로 온전히 안 보이는 곳으로 갔을 때에 비로소 발걸음을 집으로 되돌렸다. 그렇듯 모녀간의 애정의 끈은 생명의 밑바닥에서 자라난 여린 생명의 탯줄처럼 길고도 끈끈하다. 
지난 8월 중순경에 축서사 신도 38명이 관광차 이곳을 방문했다. 대부분이 아는 분들이라 4일간 동행하며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날 호주 특산품 가게에 들렸을 때 또 하나의 모녀간의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대학생인 딸이 맘에 드는 물건을 사다보니 카드가 바닥이 났다고 엄마에게 징징거렸다. “ 엄마,엄마, 엄마 카드 좀 빌려줘 ” “ 얘는 안돼. 내가 한국서 올 때 너한테 카드 안 빌려 주기로 작정하고 왔어 ” 하면서 저 쪽으로 가버렸다. 다시 뒤 따라간 딸이 몸을 비비 꼬면서 애교를 떨며 말했다. “ 엄마, 엄마 한 번만 봐줘 “ 엄마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쥔 딸이 다시 속삭이듯 말했다. “ 우리 엄마 최고야. 한 번만 봐주는 거지 “  “ 그래, 알았다. 이게 마지막이야. 알았지? “ 하면서 지갑을 열고 카드를 꺼내 주면서 엷은 미소와 함께 눈을 흘기며 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딸이 저만큼 사라지자 주변인들을 바라보면서 “ 딸한테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네요” 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옛부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누구나 다 알지만 딸 이기는 엄마 없다는 말도 새겨 들을만 하다. 눈을 흘기면서도 입가에 번져있는 잔잔한 사랑의 미소,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 보면서 인연됨의 꽃송이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부부됨의 인연을 원수로 가꾸지 말고 평생의 반려자로 바라보는 지혜의 안목을 키우고 자녀들을 빚쟁이로 응수하는 부담으로 느끼지 않고 사랑의 꽃으로 맞이할 수 있는 향기로운 가정으로 가꿀순 없을까? 청산에 바람자고 구름 한점 없는 날 할 일 없는 한 사문(沙門)이 망상 한 톨 뛰워 본다. 

기후 스님(정법사 회주)  info@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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