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사람은 기쁨과 희망 그리고 행복을 만끽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들은 하느님으로부터 ‘한 처음’에 원순수, 원기쁨, 원행복을 살도록 초대되었다. 그런데 옛날 교리서에서는 인간은 삼구(三仇 세 가지 원수들인 육신, 세속, 마귀)를 바라보고 유혹에 빠져 인간 안에 하느님과 멀어지는 틈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 틈이 죄이다. 그래서일까 죄로 인해 죽음이 시작되었다고 성경은 고백한다. 

하지만 우리가 죄는 지어도 인간의 본성은 죄가 아니다. 다만 먼지가 쌓여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 틈이 생길뿐이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아무리 구겨져도 은행에 가면 새 돈으로 교환해 주는 것처럼, 우리에게 영적인 은행은 성당이다. 그곳에서 헌 마음을 새 마음으로 바꾸어 갈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본래 지녔던 한 처음의 ‘원순수’와 ‘원행복’으로 돌아가 회복하려면 주체인 하느님과 주체인 내가 만나야 된다. 그렇지 않고 주체와 대상이 만나면 관계는 소원해진다. 그러면 모두가 왜 주체가 되어야 할까? 주체들 사이 그 안에는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주체와 상대 사이에는 사랑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서로서로 주종의 관계로 형성된 모습을 살게 된다. 
이처럼 서로가 주체들의 관계가 아닌 경우에는 어떤 짝들과 부부들도 도저히 살지 못하겠다며 관계가 멀어진다. 혼인을 위해 그런 짝들 그리고 부부들은 이런 어려움을 가지고 상담해 온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무엇이 틀어지고 관계가 얽혀서 잘못한 것인지 한 마디를 말하지 못한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자신의 비즈니스, 직업을 위해 대학교, 인턴, 실전 경험들을 최소한 10여 년 동안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경험하며 준비하였다. 또 혼인에 앞서 자기들 앞에 펼쳐지고 놓여 질 것들, 눈에 보이는 것들 곧 결혼 후 살림집, 미래의 가족계획, 취미 생활, 자동차에 관해 함께 선택할 것을 말하고,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일까?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나는 누구일까?’ ‘혼인이란 무엇일까?’ ‘사랑하는 상대는 누구일까?’에 관해 얼마나 준비하고 이야기 했을까? 최소한 지금까지 보이는 미래를 위해 10여년의 반, 아니 1/3의 시간을 들여서라도 과연 그것을 준비하고 공부를 했을까? 한 마디로 오늘날의 혼인에 있어서 어려움은 “보이지 않는 나와 너에 대한 이해와 준비부족”이다. 

상담을 하면서 젊은이들의 짝들과 부부들에게 서로의 관계 안에서 여러분들이 서로에게 잘한 것은 무엇일까요?하고 물어보니, 남자는 먹을 거 사주고, 옷사주고, 운전해주고, 부인은 밥해주고, 애기를 양육하고... 그런데 이런 일들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 일들은 파출부의 도움으로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사랑하는 아내인가? 고맙게 도움을 주는 파출부인가?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그걸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요?라는 대답을 한다. 

바로 주체와 상대로 살아갔기에 그런 것인 듯싶다. 주체와 상대 사이에는 일과 의무 그리고 책임만 있지, 과연 이미 둘 사이에 존재한 사랑을 느낄까? 주체와 주체가 살아가는 것은 사랑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지금 깨닫고 이렇게 고백한다. 
“결혼을 너무 잘했다”는 고백을 이제야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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