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껍질이 백사장을 대신한 해변. 바다도 유난히 아름다운 곳이라 캠핑카도 많이 보인다.

어제는 뉴질랜드에서 잘 알려진 관광지인 캐시드럴 코브(Catherdral Cove)에서 많이 걷고 많이 구경했다. 오늘은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았다. 온천수가 나오는 해변에서 빈둥빈둥 지낼 생각이다. 

늦은 아침을 끝내고 느긋하게 가게와 카페가 모여 있는 해변 입구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백사장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는 특이한 경험을 즐기려고 줄지어 걸어간다. 모래를 파서 온천수를 모으려고 작은 부삽을 가지고 가는 사람도 많다. 카페 앞에서는 작은 부삽을 10달러(8,000원)에 빌려준다고 쓰여 있다. 빌려 쓰는 값이라기보다는 사는 가격에 가깝다. 그래도 빌려 가는 사람이 많다.

첫째 날 들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백사장은 두더지가 땅을 파헤쳐 놓은 것처럼 무질서하게 파헤쳐있다. 부삽을 빌리지 않았기에 모래를 발로 파헤쳐 발목까지만 온천수에 적신다. 바다에도 몸을 담근다. 온천수와 섞인 바닷물이지만 따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찬 기운은 없다. 바다에 반쯤 담긴 큰 돌덩이에는 뉴질랜드에서 유명한 초록색이 감도는 홍합으로 덮여있다. 사람들 눈이 없으면 저녁 찬 거리로 따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도로 주변에 펼쳐지는 산으로 둘러싸인 바다 풍경

오랜만에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캠핑장으로 왔다. 저녁 준비할 시간이다. 오늘은 캠핑장 부엌이 유별나게 붐빈다. 초등학생 20여 명이 단체로 와서 선생님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선생으로 보이는 어른 서너 명도 학생들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철없이 마음껏 떠들며 활기차게 움직이는 아이들을 보며 식사한다. 나이 든 사람이 많은 캠핑장에서 조용히 식사하던 분위기와 전혀 다르다. 생기가 넘친다. 

밤이 깊어졌다. 해변으로 나가본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어서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길을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해 걷는다.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을 해변에서 바라본다.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분위기다. 광대한 우주 속에 있는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인간의 왜소함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도로변에서 만난 돌로 뒤덮인 또 다른 해변.

젊은이들로 시끌벅적하고 활기 넘치는 캠핑장에서 아침을 맞는다. 오늘은 뉴질랜드 여행의 종착지 오클랜드(Auckland)로 가는 날이다. 

섬이 많이 보이는 바닷가 도로를 운전한다. 방풍림을 만나기도 한다. 도로변에 일직선으로 길게 늘어선 방풍림이다. 흡사 자동차를 타고 미로(maze)에 들어온 느낌이다. 뉴질랜드에는 방풍림이 유난히 많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일까, 아니면 특별히 바람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작물을 재배하기 때문일까?

해안을 지나고, 산을 돌고 돌아 탬즈(Thames)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꽤 큰 동네다. 오래된 건물이 동네 한복판에 줄지어 있다. 어제 저녁 같은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젊은이가 가볼 만한 관광지로 추천한 피너클(The Pinnacles)이 이곳에서 가깝다. 

관광 안내소에 들려 알아보니 피너클까지는 20km가 넘으며 비포장도로가 중간에 있다고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비포장도로를 운전하기가 꺼려진다. 산속에 있는 관광지 대신 편하게 쉴 수 있는 온천장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가는 중간에 미란다 온천장(Miranda Hot Springs)이 있다. 미란다라는 동네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운전한다. 그러나 동네가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온천장을 지도에서 찾으니 이미 지나쳤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온천장에 도착했다. 집 서너 채 모여 있는 것이 전부인 작은 동네다. 자세히 지도를 보며 운전하지 않으면 지나칠 수밖에 동네다.  

온천장 입구는 한산하다. 젊은 직원이 노인에게는 할인 혜택이 있다며 입장료를 할인해준다. 나이를 묻지도 않는다. 청바지에 배낭 짊어지고 젊은이들처럼 여행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나 보다. 

온천장은 한가하다. 관광객은 보이지 않고 적은 숫자의 동네 사람과 원주민 가족이 온천욕을 하고 있다. 온천장에 특별한 시설은 없으나 규모가 크다. 온천장이라기보다는 야외 수영장에 온 기분이다. 동네 사람으로 보이는 나이 든 사람은 천천히 넓은 온천장을 수영으로 오가고 있다. 온천장은 100년 이상 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온천욕으로 건강을 회복했다는 기록도 있다. 두어 시간 온천물에 몸을 풀며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온천장을 떠나 해안 도로를 운전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캠핑카들이 해변에 줄지어 주차한 것이 보인다. 궁금증이 생겨 해변으로 들어가 본다. 바다색이 특이하게 아름답다. 그야말로 비췻빛이다. 해변을 걷는다. 놀랍게도 해변은 모래가 아닌 조개껍질로 덥혀있다. 조개껍질이 백사장을 대신하고 있다. 아름다운 바다 색깔과 멀리 보이는 산맥 그리고 구름이 어우러진 풍경에 넋을 잃고 잠시 숨을 고른다. 

다시 길을 떠난다. 자주 쉬면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경치가 계속된다. 해안 도로를 벗어나 내륙으로 들어선다. 작은 구릉을 넘기도 하면서 오클랜드 주택가에 도착했다. 멀리 고층 빌딩도 보이기 시작한다. 대도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오클랜드에 도착한 것이다.

여느 대도시와 다름없이 자동차가 붐비는 오클랜드(Auckland)

도로가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도시 한복판에서 길을 잘못 들기도 하면서 캠핑장에 도착했다. 해안 주택가에 있는 캠핑장이다. 여행객으로 붐비는 곳이지만 운 좋게 빈자리가 있다. 뉴질랜드에서 지내는 마지막 캠핑장이다.   

오랜만에 사람으로 붐비는 캠핑장 주변을 걷는다. 비가 흩날리는 해안가 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이 많다. 식당과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도로에 들어섰다. 지금까지 지냈던 시골의 한가한 모습과 대비된다. 자동차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빠르다. 거리에서 주고받는 말소리도 시골보다 크다. 

도시에서 우는 매미는 시골에 사는 매미보다 성량이 몇 배 더 크다고 한다. 인간도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번잡한 도로를 걸으며 맹자의 엄마가 세 번 이사했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선호하는 삶이 있다. 도시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삶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시드니를 떠나 자연과 어울려 지내는 은퇴 생활에 만족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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