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만남에서 비롯된다. 얼굴을 익히고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는다. 그때에 하나가 되고 그것이 잦으면 우정이 생기고 이해의 폭이 점점 더 넓어지게 된다. 그런 사이를 우린 친구라고 부른다. 살다보면 친구도 층층이며 더 많아지게 된다. 그 중에서도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스런 내용까지도 털어 내어 말해주고 싶은 일등급 친구는 어릴 적에 시골 동네에서 함께 놀던 죽마고우(竹馬故友) 소꿉장난 친구들이다. 

1960년대 전후의 우리 동네에선 혼자서 즐길만한 놀이는 한 가지도 없었다. 자고나면 언제나 함께였다. 학교에 가는 것도 늑대 때문에 무리지어 다녔고 뒷동산에 진달래 꽃을 따러 갈 때도, 소를 먹이려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가 지붕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때에 나무 썰매를 만들어 논두렁에서 얼음을 지치다가 논에 빠져 동상이 걸린 것도 그 때였고 하교 때 냇가에서 피래미나 가재를 잡다가 검정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린 것도 그 시기였다. 

그때마다 또래의 친구들은 늘 함께 였으며 고락도 같이 겪었다. 어쩌다 귀한 껌이 하나 생기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씹을 정도였으니 그 어찌 일등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있으리요? 그 속엔 계산이 전혀 없었고 아파트 평수도, 강남북의 지역 따짐도 모르던 때라 오롯한 하나됨의 즐거운 만남만 있을 뿐이였다. 지금도 그 때의 친구들을 만나면 모두가 어린 때의 세계에 폭 파묻혀 버린다. 머리가 희어지고 틀니가 되어도 마음은 동심으로 돌아가 버린다. 함께 했기에 공감의 폭과 이해도의 넓이가 크다 보니 그저 맞다 맞다 하면서 박장대소를 하면서 옛 얘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순진함과 계산없이 사는 평화로운 마음이 생명의 본성이기에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리라. 

그 이후 점점 더 성장하면서 사회에서 사귄 친구들도 있다. 그 땐 이미 이해 타산도 해야되는 관계 속이다 보니 어릴 때의 시골 친구들과는 그 속결이 좀 다를 수는 있으나 그 모두가 소중한 존재들이다. 난 어릴 때에 같은 동네에서 놀던 친구들은 평생을 같은 곳에서 함께 살 줄 알았다. 세월을 따라 오가다 보니 와룡산 기슭은 고사하고 이 먼 호주까지 와서 살게 되었으니 우선은 살고 볼 일이다. 옛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갈 기회는 많이 줄어 들게 되어 조금은 아쉽지만 좋은 세월로 인해서 소식은 대충 듣고 있다. 나팔을 즐겨 불며 학도호국단장을 했던 김군은 음주 운전을 하다가 저승으로 떠났고 맘보 바지와 쫄쫄이 모자를 쓰고 여학생 뒤를 졸졸 따라 다녔던 박군은 이혼을 당한 채로 아파트 경비원을 하고 있다고 들린다. 저음 가수 남일해 흉내를 내면서 사이다 병을 거꾸로 들고 빨간 구두 아가씨와 고향 무정을 즐겨 부르던 전군은 지금도 대구에서 노래교실을  하고 있다. 그는 배호와 함께 지구 레코드사에서 음반을 취입연습 중 사장이 배호를 발탁해서 사장과 싸우고 나왔다고 은근히 자기 노래 실력을 자랑하고 다닌다. 

이젠 옛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 들고 새 친구를 사귀기도 어정쩡하다. 생각해 낸 것이 취미 생활로 새 친구와 만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원과 손떼기 밭을 돌보면서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면서 잡초를 제거하는 일에 관심을 집중한다. 정성을 받으면서 자라나는 뭇 생명들의 싱싱한 모습을 바라 보노라면 나의 정성도 지속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 나절에 자주 그들과 만난다. 마음이 넉넉하고 행복감이 느껴지며 함께 있음에 대한 고마움이 올라온다. 그 마음속의 깊은 곳에 동심의 친구들과 만나게 되는 정감이 어린다. 자신의 취미를 이어가지 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향수적 위로가 그런 손 놀림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블루 마운틴으로 나의 거처를 옮긴 뒤 그런 나의 취미는 더 활발해졌다. 시내 근처의 땅은 약간만 파도 딱딱한 진흙이 나오는 반면에 이곳엔 경사가 심해서인지 부드러운 흙이 많이 나온다. 나뭇 잎이 썩어서 거름 흙이 켜켜이 나오니 재미가 나서 가로등에 불이 켜질 때까지 호미를 놓기 싫다. 잡초밭이 옥토가 된 그 뒷 모습이 너무나 좋아서이다. 그때마다 한 두마리의 까치가 먹잇감을 찾아 날아온다. 처음엔 한 마리씩 번갈아 오더니 2개월이 지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한 쌍이 동시에 날아 왔고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젠 내가 호미만 들고 나서면 높은 나무에서 날아든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낮 말은 새가 듣고 있다고 했던가? 그들은 나의 땅 파기에서 매우 신선한 식량을 제공 받는다. 지렁이나 굼벵이 등등 그럴듯한 먹잇감이 그 곳에서 생긴다. 처음엔 좀 떨어진 곳에서 나를 경계하며 스스로가 찾아 먹더니 이젠 호미 끝까지 와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졸라댄다. 살겠다고 꼬물거리는 벌레들을 또 다른 생명들의 먹이로 던져 주는 나의 손길이 올바른 것인지 회의를 하면서도 던져준 이후의 변화였다. 어느 땐 꼬리를 까딱거리며 무슨 소리를 내면서 나의 눈을 빤히 쳐다 보며 애교를 떠는 흰 점박이 그들의 태도를 모른 척 하기에도 미안했다. 

이젠 밭 정리가 거의 다 되어서 호미를 들 일이 적어졌다. 내 방에서 바라보니 죽은 나무 가지에 올라 앉아서 밭 쪽을 바라보며 나를 기다리듯 하더니 시간이 지나니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뭇 생명은 자기 일신의 안전적 보신을 위해서 떠돌아 다닌다. 그들은 지금은 어느 곳에서 자신들의 먹잇감을 찾고 있을까? 안 보이니 아쉬운 그들, 그들 역시 나의 친구임에 틀림없다. 그리워 기다리는 것도 친구요, 만나면 반가워서 함께 웃는 것도 또한 친구다. 자신의 하는 일에 갖은 정성을 쏟으며 보람을 느끼는 것도 삶의 동반자요, 나의 곁을 바라보며 함께 하는 모든 생명 역시 우리들의 절친이다. 오랜 가뭄 끝에 약간의 비가 내린 지난 달 중순경 현관 벽돌 위에 그들이 와서 날개짓을 하고 있지 않는가? 비를 피하러 왔을 터지만 나는 나를 만나려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얼른 사진을 찍었다. 좀 더 왔으면 했던 비도 그쳤고 까치들 친구도 떠났다. 이젠 백운을 바라보며 그들의 실체 없음을 응시하고 지나가는 청풍을 느끼면서 열뇌를 식혀주는 새 친구로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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